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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un 22. 2019

서울국제도서전 <작가의 서랍 展>에 가다.

미래의 베스트셀러 100편에 내 글이 실리다니.


한 권의 책을 출간한 후 글쓰기는 더욱 어렵게 다가왔다. 출간 작가라는 꼬리표는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멋진 타이틀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내게는 무거운 낙인과도 같았다. 사실 책을 출간한 이후로도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하기가 부끄러웠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내가, 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제 아주 조금씩 깨닫고 있는 내가, 감히 누군가에게 스스로를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매일 오전, 아이들을 학교/어린이집으로 보내면 습관처럼 노트북을 켰다. 글을 쓰다, 다시 쓰고, 또다시 쓰는 일상. 특별히 써야 하는 이유가 있거나 정해진 기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느덧 ‘쓰는 삶’은 습관이 되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쓰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일었던 것 같다. 그것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때는 책 한 권만 출간을 하면 인생이 마법처럼 변화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품기도 했다. 아들 넷을 육아하기 위해 십 년 동안 근무한 회사를 퇴사하고 도저히 엄마로서 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발버둥 쳤던 시절, 글쓰기는 다시 말해 책 쓰기는, 엄마로서가 아닌 내 인생을 살게 해 줄 유일한 방법이었다. 불안을 느낄 때마다 글을 썼다. 아이들이 집을 비운 뒤 집안 가득히 내려앉은 숨 막힐 듯이 고요한 정적은 내 몸을 강렬하게 휘감으며 그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다시 나를 찾고 싶었다. 불안감은 어느새 절실함이라는 커다란 파도가 되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러나 책을 출간해도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책이 나오기 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못 할 경험들이 이따금 주어지기도 했지만, 프리랜서의 삶이란 하얀 파도 위에 위태롭게 얹어진 포말처럼 부서질 듯이 연약한 것이었다. 여전히 초라해 보였다. 몇 년 전, 남편에게 작가가 되겠다고 호기롭게 떠들어댔던 나였지만, 여전히 나란 사람은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하기조차 민망한 어느 지점에서 서성대고 있는 불안한 존재일 뿐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지도 못한 공허함이 가슴속에 차오를 때면 나는 습관처럼 책상에 앉았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쓰는 것’뿐이었다.      




과연 잘 쓰고 있는 걸까. 매일 글을 쓴 지도 어느덧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글쓰기 일 년 만에 운이 좋게 출판사와 계약을 해서 일사천리로 책이 출간되었지만, 여전히 내가 쓰고 있는 글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았다.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성은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글을 올리고 라이킷 수를 확인하는 일은 습관이 되었다. 작년 겨울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로 구독자는 (감사하게도) 꾸준히 증가했지만, 라이킷 수가 적은 글을 볼 때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소심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동시에 브런치 메인에 올라오는 라이킷 수가 어마어마한 유명 작가의 글이나 샛별처럼 등장한 신인 작가의 글을 바라보며 부러움과 막막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잘 쓰고 있는 걸까. 이따금씩 머릿속에 불쑥 차오르는 질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나를 짓눌렀다.        




몇 주 전, 브런치가 서울 국제 도서전에 참가한다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미리 열어보는 미래의 베스트셀러 – 작가의 서랍 展>이라는 타이틀로 브런치에 있는 글 중 100편을 선정하여 체험형 전시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지를 보며 올해는 꼭 서울 국제 도서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편에 선정된 글에는 어떤 글들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찰나, 브런치로부터 메일이 왔다는 알람이 울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에 메일함을 열어보니 내 글이 미래의 베스트셀러 100편 중 하나에 선정되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뛸 듯이 기뻤다. 글쓰기에 방황을 겪고 있는 내게 누군가 나타나 위로를 건네주는 것 같았다. 과연 어떤 글이 선정되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메일에는 그 글이 어떤 글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며칠을 설레며 서울 국제 도서전이 개최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행사 당일, 오전부터 코엑스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브런치 부스는 B홀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어두운 실내와 따뜻한 조명이 어우러져 꽤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있었다. 메일을 읽고도 체험형 전시라는 표현이 선뜻 와 닿지 않았는데 2~3명씩 소수만 입장을 받아 큐레이터로부터 설명을 듣는 방식이 꽤나 정성스러워 보였다.      




“두 분 입장하실 게요.”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앞에 서있던 어떤 남자와 나는 나란히 내부로 이동했다. 안에 있던 메인 부스 앞에는 수십 권의 책들이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었다.

관람 방법은 단순했다. 열 가지 키워드 중 한 가지를 큐레이터에게 이야기하면 그 키워드가 위치된 섹션을 이야기해주는데 그쪽에 있는 여러 권의 책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었다. 앞서 입장한 남자가 먼저 글을 선택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수줍게 큐레이터에게 속삭였다.


“실은 제 글이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어떤 글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진작 이야기하시지요. 앗. 바로 이 글이네요!”


앞서 글을 선택한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한 장의 카드에는 지난겨울 브런치에 올렸던 글의 제목이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이 글의 작가님이시군요! 일제히 그곳에 있었던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작가님이라는 표현, 여전히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어색한 단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갑자기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황급히 카드를 받아 구석에 있는 자리에 걸터앉았다. 빠르게 요동쳤던 심장은 잠잠해지고 눈 앞에 글의 제목이 선명히 들어왔다.




<미칠 것 같은 순간, 글쓰기를 만나다>



사실 이 글은 두 번째 책에 담길 원고 중 하나였다. 요즘 퇴고를 한답시고 무거운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다듬어보았지만 이상하게 자신감이 떨어지고 막막한 마음이 일렁거려 제대로 글을 쓸 수 없었다. 퇴고를 하면 할수록 내 글이 형편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였다. 동시에 두 번째 책은 조금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차올라 글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천천히 글을 읽어 보았다. 한 문장, 한 문장, 글을 읽어 내리자 그 글을 처음 썼을 당시의 마음이 떠올랐다. 책 한 권만 내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던 시간들, 그저 쓰는 것만으로도, 내가 다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은 것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잠잠하던 마음에 훈풍이 스며들며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차올랐다. 잊고 있던 초심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글과 마주하게 되어 행복했다. 어쩌면 지금 이 글과 마주하게 된 건 글쓰기에 방황하고 있는 내게 누군가 던져준 작은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간절했던 그날의 기억들을 한참 동안 열어 보았다.







*해당 글 링크

https://brunch.co.kr/@anetmom/15


<미칠 것 같은 순간, 글쓰기를 만나다> 중에서

기저귀 갈고 한 문장, 이유식 먹이고 한 문장, 설거지하고 한 문장, 아이들을 재우면서 한 문장, 하나의 글은 한 문장씩 그렇게 채워졌다. 아마도 그때 채워진 건 글이 아니라 절실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세 쌍둥이가 첫돌을 맞이하면서 아이들을 하루 네 시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겨진 집안은 어색할 만큼 새로웠다.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듯이 같은 공간 내에 철저히 다른 세계가 존재했다. 나는 따뜻한 봄의 세계에서 나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매일 같은 시간 컴퓨터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글을 쓰고 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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