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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Sep 10. 2019

그때 나는 #Me too하지 못했다.

조용히 덮는 게 최선이라고 믿었던 그날의 기억


“정말 미안해요. 어젯밤일은...”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한참동안 입술을 오물거리다 결국 그는 말끝을 흐린 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바닥에 시선을 내리꽂고 고개를 푹 숙인 그의 모습이 환한 커피숍 전등 아래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침을 꼴깍 삼키는 목울대,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썹, 눈의 깜빡임, 나는 멍하니 앉아 그의 작은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도통 입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젯밤 일이 일어난 이후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수없이 떠올렸지만 도무지 뾰족한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한 건 그는 가해자이고 나는 피해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푹 숙인 채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를 마주하니 더욱 마음이 약해졌다.  



    

“잠깐이었지만 아영 씨를 좋아했어요. 제 마음은 진심이었어요. 그것만은 알아주세요.”

그는 유부남이었다. 신입사원 첫 발령을 받았던 발령지에서 함께 일했던 유관 팀 직원이었다. 업무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던 그 팀과 우리 팀은 회식이 잦았다. 그와 나는 자연스럽게 얼굴을 익히게 되었고, 이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그는 이따금씩 업무에 대한 지식을 친절히 가르쳐주기도 했다. 첫 사회생활, 그것도 타지에서 시작했던 긴장감으로 가득 찼던 일상에서 그는 내게 처음으로 다가와준 고마운 선배였다.      




이따금 그는 퇴근 후 술 한 잔을 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선배이기 전에 유부남이었다. 나보다는 고작 두 살 위였지만 이미 애가 셋인 사람이었다. 유부남과 단둘이 만난다는 게 꺼림칙했다. 몇 번을 거절했지만 매번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가 난처했다. 어찌되었든 그는 회사 선배였으니까. 신입사원인 내가 괜히 눈도장이 찍히면 어쩌나하는 순진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 그날 내 머릿속을 스쳤던 안일한 생각이 실수였다면 실수였겠다.     




퇴근 후 그와 나는 사택 앞의 한 호프집으로 걸어들어 갔다. 그와 나는 사택에 살고 있었고 그것도 같은 동에 살며 가끔씩 엘리베이터에서도 오며가며 인사를 나눈 사이기도 했다.

그와의 만남은 며칠간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별스럽지 않았다. 우리는 약 두시간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아홉시 정도 되어 사택으로 향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같은 동에 살고 있었던 그와 나는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갑자기 그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그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를 밀쳐내었고, 당황한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싱겁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내게 그 기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저에게 미안할 게 아니라 댁에 계신 와이프 분께 사죄하세요.”

침묵이 우리를 에워싸자 나는 어렵게 입을 떼었다. 그게 내 진심이기도 했고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바람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스물여섯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날 밤 일은 나에게 결혼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흔들리는 것이 결혼이라면 사람들은 도대체 결혼을 왜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들리는 남자와 그를 세상의 전부처럼 믿고 있을 한 여자, 이 두 사람이 초라하고도 가엾어 보였다. 그는 가해자고 나는 피해자임에 분명했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그를 세상의 전부처럼 믿고 있을 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부탁처럼 그 일을 조용히 지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이후 문득 그날 밤 일을 떠올릴 때마다 이상하게도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단 한 번도 그에게 제대로 화내지 못한 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런 일을 겪고도 이기적으로 내 감정만을 생각하지 못하고, 별것도 아닌 일에 흔들릴지도 모를 한 가정을 걱정하며 그의 말처럼 그 일을 너무나도 쉽게 덮어 두기로 결정했던 내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것도 아닌 일. 사람들은 그 일을 별것도 아닌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그도 차츰 시간이 지나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나를 대했고, 그 일이 일어나기 전처럼 농담을 건네거나 심지어는 태연하게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 일을 덮어두기로 한건 나의 결정이었지만 천연덕스러운 그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이상하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전히 그의 얼굴을 보면 가슴이 세차게 방망이질을 하는 것처럼 분한 마음이 들었다. 엉망이 된 나는 아직도 일상을 찾지 못했지만, 너무나도 쉽게 제자리로 돌아온 그의 모습이 화가 났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한 선배에게 힘겹게 그 일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대답했다.

“괜히 골치 아프게 문제 만들지 마. 이런 일 생기면 여자 쪽 소문이 더 좋지 않게 나는 법이거든. 이제 창창한 신입사원이잖아. 더구나 여직원 소문이 얼마나 무서운데.”

나를 위한답시고 해준 그녀의 위로는 나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 일은 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에게도, 누구에게도, 그 일은 여전히 별것 아닌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별것 아닌 일로 몇 달간을 끙끙 앓았던 나 자신이 정말 유별났던 걸까.      




이따금씩 그날을 되돌아보았다. 과연 나에게 잘못이 있던 걸까. 조심하지 않았던 내게 더 큰 잘못이 있었던 걸까. 왜 나는 조심해야 하고, 그는 조심하지 않아도 될까. 왜 나는 아직도 힘들고 그는 태연하게 일상을 찾은 걸까. 고민을 거듭하면 할수록 내게는 잘못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모두들 그 일을 조용히 덮는 게 현명하다고 이야기했다. 그저 입술이 닿은 것뿐이야.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내 가슴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잊자. 잊자. 없었던 것처럼 흘려보내자.     






과연 그에게 나는 동료였을까. 여직원이었을까. 아님, 여자였을까.


십년이 지난 지금 그 일을 열어본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동료가 아닌 언제든 쉽게 범해도 괜찮은 무력한 여자였음을 깨닫는다. 그 사건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다. 나보다는 스무 살도 족히 많을 이혼 경력이 있는 한 부장도 시도 때도 없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고,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건넸다. 툭하면 자신의 오피스텔에 놀러와 와인을 한잔 하자고 이야기하거나, 심지어는 주말에 데이트를 하자는 말을 장난스럽게 뱉었다. 그러나 그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나는 단 한 번도 화내지 못했다. 그저 끙끙대며 이 말을 어떻게 하면 우회적으로 거절할지 적당한 말을 찾고는 했다. 여전히 나는 내 감정보다는 상대방의 감정이 중요했던 무력한 여자였다. 이제 갓 스물 여섯이 된 사회 초년생은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아이였다.     



 

#Me too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그 기억들은 시퍼런 서슬이 되어 가슴팍을 파고든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얼마나 변화했을까. 어제 발표된 안희정 지사의 유죄판결은 성인지 감수성를 강조하며 피해자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준 모양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사실 남녀 간에 일어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고도 미묘한 영역이기에 #Me too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의 삶에 오명을 씌우거나 악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권력형 성범죄의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던 이 사건을 계기로나마 우리 사회 곳곳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여성 신입사원의 손목을 잡고 다짜고짜 그녀를 호텔로 끌고 간 어느 치킨회사 회장의 이야기나, 회사 선배로서의 위력을 이용해 모텔에서 강간을 저질렀던 이야기들이 점차 우리 사회에서 줄어들었으면 한다.      




피해자는 비단 그 일을 당한 피해자뿐만이 아니다. 가해자의 아내, 가해자의 가족, 피해자의 가족 또한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욕망은 돌이킬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어쩌면 평생 동안 한 가정을 지킨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불과 몇 년 전 배우자의 성매매 사실을 조회해주는 유흥탐정이라는 서비스에 수많은 아내들이 돈을 지불했던 것은 배우자에 대한 의심이 그만큼 크다는 사회적 반증이기도 하다.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가정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떨리는 마음으로 배우자 앞에 섰던 결혼식의 기억처럼,

가정을 소중하게 더욱 책임감 있게 지키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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