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넷맘 Aug 06. 2019

Remember 'KAL 801'

22년 전 오늘을 기억하며.


물놀이 때문인지 아이들은 금세 잠이 들었다. 투몬 비치에 내려앉은 강렬한 태양은 아이들의 얼굴을 새까맣게 태웠다. 시커멓게 그을린 아이들의 이마에는 어느새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다. 머리칼을 한쪽으로 쓸어 올려주니 훤칠한 이마가 반질거린다. 붉게 그을린 콧대와 불그스름하게 상기된 양 볼에는 싱그러운 생명력이 물씬 풍긴다.      




“한 시간은 낮잠 재워야 하니 드라이브하자.”



괌은 두 번째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할 수 있는 해외 관광지는 제한적이기에 이번 여름휴가로 다시 괌을 찾았다. 괌은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비행시간이 네 시간가량으로 길지 않고, 날씨는 따뜻하며, 어디서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섬 전체가 얕은 수심의 해변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이들 물놀이에 적합한 곳이다. 에메랄드 빛깔의 고운 바다에 물안경만 끼고 들어가면 어느 해변이든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는데, 리티디안 비치나 이나라한 자연풀장은 거대한 자연이 선물한 훌륭한 물놀이 포인트다.      




괌 비행을 수십 번 오갔던 남편에게 괌은 친숙한 곳이다. 그래서 처음 괌에 방문했을 때도 여섯 명 대가족이지만 어려움 없이 머물 수 있었다. 괌은 기껏해야 길이 48㎞, 폭 6∼14㎞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의 섬이다. 섬을 한 바퀴 돌아도 한 시간 가량밖에 걸리지 않는다. 해안선을 따라 삼십 분 정도 내려가다 보면 최남단에 위치한 세티 베이 전망대를 만나는데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아름다운 절경을 마주할 수 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차는 그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곳에 가보자. 그동안 한 번 가보려고 했는데, 니미츠 힐이라는 곳이야.”



남쪽 방향으로 달리던 차가 갑자기 내륙으로 방향을 바꾼다. 니미츠 힐이라는 괌 내륙의 밀림으로 뒤덮인 거대한 언덕으로 말이다.



‘왜 갑자기 이런 언덕에 차를 모는 거야?’



영문도 모른 채 나는 니미츠 힐의 정상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바다라고는 보이지 않는 높은 언덕이었다. 괌 공항에서 불과 4㎞ 지점에 위치한 니미츠 힐 아래로는 빽빽한 밀림이 펼쳐져 있었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자 짙은 초록색 녹음(綠陰)이 마치 폭신한 침대처럼 부드럽게 산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곳은 사람이 찾지 않는 고요하고 정적인 곳이었다. 온몸을 휘감는 바람소리마저 평온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평화로만 뒤덮여 있었을 것만 같은 곳, 그래서 어떤 울분이나 슬픔이 젖어들지 않을 것만 같은 곳, 내게 니미츠 힐은 그런 느낌이었다.      




“22년 전이지. 바로 이곳이 KAL 801이 추락한 곳이야.”



순간 온몸이 쭈뼛쭈뼛 달아올랐다. 그토록 평온해 보였던 바로 이 언덕에서 22년 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니. 남편의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두 눈 앞에 펼쳐진 고요한 풍광 위에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충격적인 영상이 오버랩되었다. 여과 없이 공중파를 통해 전달되었던 울창한 숲에 처참히 찢긴 비행기 잔해가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정말 이맘쯤이었다. 연일 방송에서는 구조상황과 생존자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을 보며 가슴 졸이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도 괌 추락 사고는 잊을 수 없는 선명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 강렬한 기억도 세월의 바람 속에 잊혔다. 나는 완전히 그 사건을 기억에서 지워버렸었다.




두 번째 괌 방문이었지만 그 사건을 떠올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의 두 발이 니미츠 힐을 당당히 밟고 있었던 바로 남편의 말을 듣기 직전까지도 이곳에서 그런 참사가 벌어졌다는 것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고즈넉한 풍경이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무지한 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 땅을 밟고 있는 나의 두 발이 초라했다.         




괌에서의 5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니미츠 힐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괌 추락 사건에 대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았다. 갑자기 남편이 주섬주섬 노트북과 TV를 연결하더니 대뜸 영화를 보자고 이야기했다. 알고 보니 남편이 즐겨보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다큐멘터리의 ‘항공사고 수사대’라는 프로그램에서 괌 추락 사건을 다룬 편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항공사고 수사대’를 보았다. 재연배우의 연기와 생존자의 증언을 들으며 그날의 절망스러운 기억이 생생히 전달되는 것 같았다.     





KAL 801편 추락 사고는 22년 전이었던 바로 오늘, 1997년 8월 6일 대한민국 김포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801편이 괌의 앤 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에 착륙 도중 추락하여 승객 237명과, 승무원 17명을 합쳐 총 254명 중 229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이다. 사고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는데, 우선 극심한 폭우가 내려 시계 확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고, 동시에 관제소로부터 활공각 지시기(글라이드 슬롭) 고장으로 인해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활공각 지시기는 야간이나 시계가 나쁠 때 항공기가 일정한 경로를 따라 정확하게 착륙하도록 지향성 전파로 항공기를 유도하여 바르게 진입시켜주는 시설이다. 활공각 지시기는 보조시설일 뿐 이것이 없어도 착륙은 가능하다.)     




당시 콕핏에는 기장과 부기장, 기관사가 함께 타고 있었다. (현재는 기종 발달로 인해 기관사는 동승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공군 출신이었고 비행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었다. 특히, 기장은 사고 몇 개월 전 회사로부터 안전비행으로 표창까지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연일 이어진 장거리 비행으로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해당 기장은 장거리 비행 직후 다른 노선에 투입 예정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으로 괌 노선에 대체 투입되었다고 한다.)      




악천후 속에서 착륙 준비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충돌 6분 57초 전, 갑자기 비행기에 활공각 지시기의 신호가 잡혀 기장과 부기장은 혼란에 빠진다. (사고 이후, 밝혀진 바로는 그 신호는 지상의 다른 장비에서 송출된 것이라고 한다.) 결국 활공각 지시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관제사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그들은 잘못 전파된 신호를 따라 순식간에 하강한다. (보통 기체는 계단 모양으로 하강을 하는데 801편은 1,440ft에서 하강 이후부터는 계단 모양이 나타나지 않고 일직선으로 하강했다고 한다.)      




충돌하기 12초 전에 대지 접근 경보장치(GPWS)에서는 경보가 여러 번 울렸고 부기장도 "접근 실패[missed approach]"를 외쳤지만, 기장은 경보와 부기장이 외치는 말을 무시했다. 충돌 2.3초 전에 가서야 기장은 "고 어라운드(복행)"이라고 말하며 복행 선언을 하지만, 관성의 법칙 상 몇 백 톤의 보잉 747기가 한 번에 급상승할 수는 없기에 801편은 기수가 8도 정도 들린 채 메인 랜딩기어가 송유관을 친 뒤 뒷바퀴부터 니미츠 힐로 추락하게 되었고 주 날개의 연료 탱크와 462L의 면세주에 불이 붙어 8시간이나 타올랐고 추락 후 많은 승객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사고 설명 – 위키백과 참조]     





사고는 대개 여러 가지 실수가 결합한 결과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지식이나 기술로 인한 문제가 아니다.


–당시 악천후가 아니어서 시계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활공각 지시기가 고장 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잘못 전파된 신호를 무시하고 예정대로 착륙 준비절차를 진행했다면?

–기장이 무리한 스케줄로 투입되지 않았다면?

–부기장과 기관사가 기장에게 좀 더 강하게 반대의사를 내비쳤다면?


삶을 살아갈 때도 그런 날이 있다. 실수가 실수를 만들고, 또 다른 실수로 이어져 결국에는 무언가 일이 터져버리는 그런 날. 어쩌면 그날이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모든 악조건들이 실수로 이어지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어 돌아왔다.




2013년, 세계적인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 라이너>라는 그의 저서에서 KAL 801 사고 원인을 우리나라의 문화로 돌렸다. 바로 ‘한국적인 의사소통법’이라는 주장이었는데, 그의 주장은 미국 항공안전국의 조사 결과와도 일치한다고 한다. 당시 콕핏에 있었던 세 명은 모두 같은 군 출신의 선후배 관계였고, 기장 중심의 강력한 위계 문화가 있었다. 침묵은 때로 첨예한 칼이 되어 돌아온다.    



 

사건은 한국 사회에 강력한 트리거가 되었다. 이후로 항공사는 외국인 기장 등용을 활발하게 진행하여 보다 수평적인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왔고, 조종사의 근로 노동시간에 대한 법률이 좀 더 유연한 방향으로 개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끔찍한 항공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KAL 801 추락 사고는 한국 항공산업의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강력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인재(人災)는 언제, 어디서든, 누가 되었든,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22년 전의 그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느 여행지도 그렇지만 괌은 특히 인생 샷이라는 태그를 단 예쁜 스팟들이 많다. 이나라한 자연풀장에서 아이들 물놀이를 시키고 있었는데 예쁜 돌다리 위에서 한국 관광객들이 너도 나도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바다에는 발조차 들여 넣지 않은 채 오직 사진을 찍기위해 머무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니미츠 힐 위에는 사고로 희생된 자들을 위한 추모비가 있다. 그러나 니미츠 힐에 다녀온 블로거의 사진은 찾을 수 없다. 진정한 여행은 잠시 차에서 내려 SNS에 올릴 예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더듬어보며 현재 내가 밟고 있는 자리를 돌아보는 게 아닐까.










괌 추락 사고 추모비




매거진의 이전글 태풍을 지나갈 나의 남편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