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30년 넘는 시간 동안 등록 거주지가 서울특별시에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내게 상반기 6개월 동안 강릉에서 살 기회가 다가왔다. 당시 나는 영 정을 붙이지 못했던 직장을 퇴사하고 봄여름 동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하반기부터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나의 탈출 계획에 함께하는 대신 남편은 자신의 분야에 대해 이번 학년도를 꽉 채운 트레이닝을 강릉의 한 병원에서 받은 뒤 밴쿠버에 합류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렇게 평생을 서울 촌년으로 살아왔던 내가 짧기도 길기도 하였던 6개월 간의 강릉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일 년 동안 한 살배기 아기를 데리고 국제이사를 포함한 두 번의 장거리 이사를 무사히 치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다행히 계획대로 지금은 채 두 돌이 되지 않은 아들과 단 둘이 밴쿠버에 무사히 정착하여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나저나 밴쿠버야 내가 원해서 오게 된 것이라 치더라도, 강릉이라니! 강릉은커녕 영동지방을 통틀어 친구도 친척도 한 명도 없는데. 난 서울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데!
그러나,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6개월의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강릉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싸락눈처럼 어느새 소복이 쌓인 추억들을 떠올리면 따뜻한 이불속에서 감귤을 까먹듯 마음이 훈훈해지는, 그렇게 강릉은 나에게 특별하고 따뜻한 곳이다. 그곳에 머물렀던 시간이 특별한 이유는 비단 강릉이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만은 아니다. 2022년의 봄과 여름은 내 삶의 가치관을 타인이 설정한 기준에서 온전한 나의 것으로 대체하기 위한 여정의 시작점이었다. 타인이 규정한 인생의 주요 이정표 도장깨기에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임해왔지만, 출산과 전임 발령이라는 두 가지 거대 도장깨기의 끝에는 뜻밖에도 분노와 허무 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출산을 한 건가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먹은 건가 싶을 정도로 출산 후의 세상은 출산 전의 세상과 딴판이었다. 쏟아지는 새로운 역할에 압도당해 감정과 사유가 자유를 잃고 좁은 틀에 갇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 같았다. 탈출이 절실했고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 여정의 시작에서 강릉의 탁 트인 하늘과 소나무 숲과 바다와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커피는 모두 나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실제로 살았던 시간이 고작 6개월뿐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을 방문하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 충분히 누렸다. 내가 사랑했던 도시 강릉. 싸락눈이 녹아내리기 전에 그곳의 따뜻했던 기억들을 기록해두려 한다. 아! 강릉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