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묘한 질환은 과연 절망인가
나는 국소성 이긴장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다. 해괴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의미는 간단하다. ‘국소성’이란 특정 부위에 나타남을, ‘이’는 이상함을, ‘긴장’은 말 그대로 긴장을 뜻한다. 한마디로 특정 부위가 이상하게 긴장된다는 얘기다. 이 병명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는 ‘이’다. ‘이’자가 들어간 병을 선고받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몸이 안 좋다. 병원을 찾아가 묻는다.
“선생님, 저 왜 아픈 건가요?”
의사가 답한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
그렇다. 내 병은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다.
장기하, 상관없는 거 아닌가? 중에서
최근 우연히 가수 장기하 씨의 산문집을 통해 그가 국소성이긴장증(focal dystonia)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에세이 <안경과 왼손>에서 그는 질환의 증상을 처음 경험하였던 당시의 절망과, 십여 년의 삶의 궤적을 지나온 지금 그때를 되돌아보았을 때의 소회를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증상 발생 당시 그는 '눈뜨고코베인'이라는 록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프로 드러머 외에는 다른 진로는 상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더 이상 입대를 미룰 수 없게 되었을 때 드럼을 놓지 않기 위해 군악대에 들어가고자 드럼 연습의 강도를 높였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드럼을 칠 때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왼손이 꽉 쥐이는 증상이 시작되었다. 다른 일상적인 생활에서 왼손을 사용할 때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는 결국 드럼을 포기하고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했으며, 증상은 기타를 칠 때도 나타나기 시작해 기타리스트를 새로 영입해야 했으며, 그렇게 무대 위에서의 악기 연주를 포기했고, 이후 두 손이 자유로운 채로 독백 같은 노래를 내뱉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구축했다.
장기하 씨의 증상은 전형적인 'Musician's Dystonia'이다. '뮤지션 근긴장증' 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Musician's Dystonia는 세계적으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의학 용어이며, 그만큼 그 특징이 잘 정립되어 있는 질환이다. 이 질환을 상위 단계에서부터 분류하자면 신경계 질환 > 이상운동질환 (movement disorders) > 근긴장증 (dystonia), > 국소근긴장증 (focal dystonia) > 국소동작특이적근긴장증(focal task-specific dystonia)에 속하는 질환이다. 근긴장증이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비정상적으로 근육이 수축하면서 불수의적으로 힘이 들어가고 자세가 뒤틀리는 현상을 말한다. 국소근긴장증은 그중 국소적인 특정 신체 부위에만 근긴장증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그중에서도 국소동작특이적근긴장증은 참으로 신묘한 질환군이다. 특정한 동작을 할 때만 특정한 부위의 근육이 뒤틀리기 때문이다. 즉 그 특정 동작만 하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다른 신체 부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Musician's Dystonia는 뮤지션이 악기를 연주할 때 발생하는 국소동작특이적근긴장증이다. 다만 한글 의학용어로는 마땅히 정해진 바가 없어 언론이나 환자들 사이에서는 상위분류에 해당하는 근긴장증, 근긴장이상, 이긴장증, 혹은 국소성이긴장증 등의 용어가 혼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만큼은 악기 연주자가 악기를 연주할 때 발생하는 국소동작특이적근긴장증을 뮤지션근긴장증이라고 표기하도록 하겠다.
뮤지션들은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하는 근육을 극도로 섬세하게 조절하는 법을 수만 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사람들이다. 뮤지션근긴장증은 바로 이러한 섬세한 움직임을 할 때 사용되는 근육에 국소적이며 동작특이적인 비자발적 수축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여자보다는 남자에, 오케스트라 연주자나 선생님들 보다는 솔로이스트들에게 잘생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악기 불문, 좌우 불문, 프로 아마추어 여부를 불문하고 발생한다. 악기와 장르에 따라 많이 사용되면서 까다로운 주법에 사용되는 근육 움직임에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피아니스트들의 경우에는 오른손 손가락의 불수의적 굽힘(flexion) 동작이, 바이올리니스트는 왼손 손가락의 불수의적 굽힘 동작이 흔하다. 기타 연주자나 타악기 연주자는 사용하는 주법에 따라 아무 손에나 발생 가능하다. 관악기 연주자는 연주 중에 손가락의 굽힘보다 펴는 (extension) 동작에서 근긴장증이 잘 발생한다. 물론 증상이 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관악기 연주자는 입술과 근처 얼굴 근육의 조절을 저해하는 불수의적 근육수축 증상으로 인해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입술 사이로 섬세하게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앙부셔(embouchere) 조절이 곤란해지는 앙부셔 근긴장증도 발생한다. 심지어 보컬리스트들이 노래를 부를 때 특정 음높이에서 성대의 근긴장증이 발생하는 Singer’s dystonia도 있다.
국소동작특이적근긴장증은 연주자나 음악가뿐 아니라 장시간의 반복적이고 섬세한 동작 훈련을 요하는 모든 직업군에서 발생할 수 있다. 골프 퍼팅 시에 ‘입스’로 알려져 있는 현상도 근긴장증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당구, 야구, 탁구 등 역시 종목 불문 발생한다. 그리고 신경과 의사들 사이에 가장 유명한 질환은 뭐니 뭐니 해도 서경(쓰기경련, Writer’s Cramp)이다. 이 질환은 근긴장증(dystonia)이라는 단어가 의학사에 등장하기도 훨씬 전인 19세기 영국에서 처음 기록되었다. 그 당시 전보가 등장하면서 전보지를 작성하는 사무원 수도 급증하였고 하루 종일 글씨를 쓰는 그들에게서 글씨를 쓸 때 손목 근육의 불수의적인 수축이 발생하는 증상이 눈에 띄게 발생한 것을 당시의 한 의사가 기록한 것이다. 지금 전보는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작가들도 손글씨보다는 타이핑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쓰기경련은 반복적인 손동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지독히 따라간다. 타이핑도 반복되는 손동작인 것은 마찬가지라 타이피스트 경련(typist’s cramp)도 존재한다. 그 외에도 미용사, 요리사 등 고도로 섬세한 반복적인 동작 훈련을 요하는 사실상의 모든 직업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병원에서 환자들은 자신의 증상을 의료진에게 보여주어야 하므로 기타리스트들은 기타를, 플루티스트는 플루트를 가져와 진료실에서 연주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당구선수는 큐대를 가져와 진료실 책상 위에서 공을 치고 헤어디자이너는 가위집을 가져와 좌라락 펼친다. 신체의 기능을 진찰하고 개선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비들만이 진열되어 있는 병원 진료실에서 생뚱맞게 바이올린 연주가 펼쳐진다. 보색대비표만큼이나 생경한 이 예술과 진료실의 불일치가 주는 이 매력은 내가 신경과의 여러 분과 중에서도 이상운동질환을 선택하게 된 많은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질환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전공의 시절에는, 그 특정 동작만 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이걸 질환이라고 정의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스쳤던 적이 있다. 분명히 신체적 기능을 저해하는 변화가 발생하였으므로 질환이 맞긴 맞는데, 자고 일어나 밥 차려 먹고 옷 갈아입고 나가서 말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그 동작과 관계만 없다면 나가서 돈 벌고 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악기 연주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일상생활에 포함되지 않는 동작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아주 거대한 문제가 있다. 바로 그 동작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그들은 인생의 전부를 걸었다는 것. 게다가 이 병은 악독하게도 대체로 연주자들의 커리어의 정점에서 발생한다. 어떤 이들은 이로 인해 결국 음악을 포기한다. 직업을 잃어 경제적으로 곤란해지기도 한다. 깊이 절망하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정서적, 사회적으로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쩌면 직업성질환으로 분류해야 할지도 모르는 병태생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명백한 신경계 질환이다.
[1] Altenmüller, Eckart and Hans-Christian Jabusch. “Focal dystonia in musicians: phenomenology, pathophysiology, triggering factors, and treatment.” Medical problems of performing artists 25 1 (2010):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