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승호 Mar 11. 2024

은퇴 후 "나이 듦"


나이는 세월이 정해주는 것이다.  즉 나이 듦은 자신에게 주어진 필연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의 변화와 육체적인 변화가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나이를 크게 지각하면서 살지 않고, 다만 삶의 변화가 있거나 건강이 좋지 않을 경우 나이 듦을 생각하게 된다.


 나이 듦은 세월의 흐름과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몸의 변화를 가져오므로, 각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된다. 따라서 나이에 맞는 말(마음)과 행동(실행)은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는 기본자세이다.



수긍하고 받아들여야 됨 (1)


  오늘도 나는 침대맡에 앉아 효자손과 보습제를 찾는다. 누워서 손 닿을 수 있는 곳에 항상 있어야 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피부가 건조해서 효자손은 등을 긁을 때 쓰고 보습제는 가려울 때 바르기도 한다. 잠이 들기 전까지는 귀찮은 몸부림이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간신히 잠이 들어 많이 잤나 싶으면 입안이 말라 잠이 깬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증상이 심해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나이 들면 주무실 때 코로 숨을 쉬지 않고 입으로 호흡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성분들은 폐경이 되면 호르몬 균형에 변화가 와서 그런다고 했다. 치료도 좋지만 호흡하는 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습관보다는 머리맡에 물주전자를 놓기로 했다.

 잠을 깨는 이유는 그뿐만 아니다. 뇌에 있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 놈이 줄어 들어서 잠을 깨우기도 한다. 


이렇게 잠을 설치고 침대에서 내려올 때도 조심해야 한다. 발바닥이 건조해서 잘못하면 미끄러 넘어진다. 나이 들면 낙상이 무서운 것이다. 

젊었을 때는 발에 땀이 많아 냄새 때문에 고민했었는데 … 


  아침잠이 없어진 나는 일찍부터 출근 준비를 하고 식사를 한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직장이 있어서 나는 행운아다. 이른 아침에 식사를 하기 때문에 집사람을 깨우지 않고 직접 차려서 먹는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이 나이 들면 소식이 하도 좋다 하여 아침식사만큼은 그렇게 하고 있다.


  출퇴근할 때는 전철을 이용한다. 그리고 무임승차권이 있어 너무 좋다. 가끔 매스컴에서 전철 적자 이야기가 나오면 미안할 때도 있다. 

 나이 듦이 특권은 아닌데 하구. 아무튼 전철은 나에 최고의 애마이다. 그리고 전철을 타면 경로석 쪽으로 가지 않는다. 아직은 갈 나이가 아닐뿐더러 늙어감이 싫어서 일부러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석 쪽으로 갈 때 나도 모르게 젊은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가 서있게 된다. 

이럴 때는 나 자신이 정말 싫다. 


 회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오늘 할 일을 적어놓은 메모지를 본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력이 떨어져 실수를 하곤 한다. 언제부턴가 한 번에 두 가지 일 또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잘못하면 건망증이나 엉뚱함으로 나타난다. 


 나이가 들어감에 뇌가 단순함을 좋아하나 보다. 젊었을 때는 한 번에 2~3가지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물을 보고 즉각적인 조치와 논리적인 판단은 잘한다. 아직 사고의 능력은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천만다행이다.


 메모지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일을 언제 끝내지 하면서… 과거에는 일을 대하면 이것쯤이야 했는데, 몇 해 전부터 이런 한숨이 가끔씩 나오기 시작했다. 기력이 부치다는 징조일 것이다. 누가 볼까 두려워 아무렇지 않는 듯 메모지를 주머니에 넣고 잽싸게 자리를 피한다.


 오전 일과가 끝나고 구내식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소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점심은 진수성찬이라 했는데… 식탐이 많은 나는 예전과 달리 소화력이 떨어져 있어 자연스럽게 소식 마인드로 기울어져 있지만, 나이 생각 안 하고 가끔씩 폭식을 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날이 될 것 같다.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핑곗거리도 있고 해서 덕분에 많이 먹었다. 하지만 결국은 더부룩한 배를 움켜지고 약국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위에게 미안함이 느껴져서인지, 일은 뱃심으로 하지 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며 멋쩍어 한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전에 하던 일을 마무리하러 가려는데, 주무관한테서 호출이 왔다. 그 일을 중단하고 다른 일을 먼저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나는 하던 일을 먼저 끝내야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 돌아서 왔다. 그리고 지시받았던 일을 먼저 했다.


 나는 은퇴 후 촉탁직으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주무관은 나보다 나이가 20년이나 어리고 경험으로 보나 전문성을 보나 나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하면 속이 상한다. 

 나는 먼 하늘의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세월이 야속하다고 원망을 한다.


 오늘 일들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아 기분이 영 엉망이어서, 퇴근길에 동료들과 소주 한잔하기로 하고 우리가 자주 가던 치킨집으로 직행했다. 동료들 중에 내가 가장 연장자이기 때문에 술에 취하면 실수할까 봐 항상 조심한다. 


 한때는 두주불사라고 했는데, 지금은 주량이 과거의 반 정도일 뿐만 아니라 앉아있을 때는 모르는데 일어서면 술기운이 확 올라온다. 

그래서 화장실을 자주 가면서 취한 정도를 스스로 체크한다. 실수를 줄이는 데는 나에게는 참 좋은 방법이다.


 술로 기분을 전환하고 집에 오니 집사람이 인상을 찌푸린다. 많이 취해 보이나 보다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집사람은 젊었을 때는 몰라도 나이 먹으면 넘어지거나 또는 교통사고, 아니면 뻑치기 당하기 쉽다고 늘 걱정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만 마시겠다고 하면서 살며시 손을 잡아주었다. 집사람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두러누워 눈을 감고 현실을 직시해 본다.



거부하고 밀어내야 됨 (2)


 아침 일찍부터 소리 지르면서 설치고 있다. 등산화는 있는데 지팡이가 없어졌다고 애꿎은 집사람 만 잡는다.


 오늘은  고등학교 동창 20여 명과 함께 산행을 하는 날이다. 특히 10여 년 만에  만나는 거기 때문에 학창 시절 소풍 가는 것처럼 설렌다. 50대 중반 넘어서 만나보고 처음인데 모두가 궁금하고 빨리 만나고 싶다. 한바탕 요란을 떨고 집사람에게 다녀온다는 말도 없이 집을 나선다. 


 집합장소에 다다를 즘 마음이 진정되면서 집사람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 떠오른다. 아차 싶다 이놈의 급한 성질 때문에 또 집사람 속을 긁었구나 하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그만 포기하고 만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모두들 멋들어지게 하고 나와있었다. 어쩐지 나만 초라한 것 같았다. 서로 반가워 소리를 지르는 사람 또는 다정하게 저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 등등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있다. 나는 왜 그런지 집에서 나올 때만큼 신나는 기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시 고쳐먹고 학창 시절에 경쟁자였던 친구를 먼저 찾아가 악수를 청했다. 친구 손아귀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아! 이 친구가 성공했구나,라고 그때부터  이상하게 내 몸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촉탁직으로 근무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데, 경쟁자였던 친구는 모든 면에서 나보다 여유 있어 보이니 더욱더 그랬다. 

 옛말에 이웃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그랬는데 지금 내가 그런 기분이다. 다른 친구들은 아직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고 부러워했지만 오히려 그 소리가 노후준비를 하지 안 했구나,라고 하는 소리로 들렸다. 나도 모르게 놀부 같은 심통이 찾아왔다.


 오늘은 왠지 즐거운 하루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정상에 오르는 코스 때문에 한바탕 이견이 벌어졌다. 도시근교에 있는 산이다 보니 모두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평상시에도 소리가 큰 나도 이에 질세라 끼어들었고 목소리가 커서 그랬는지 내가 알고 있는 코스로 결정이 되었다. 관철이 되어 산행을 하는데도 기분이 꿀꿀했다.

 내가 너무 이김질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고 나이 들수록 아집과 고집을 버리라고 했는데 하면서…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회포를 풀려고 예약해놓은 식당으로 시간에 맞춰 갔다. 예약석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고, 나서기 좋아하는 나는 전과 다르게 구석진 자리를 택해 조용히 앉았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눈치다. 잘나가던 시절엔 모두들 관심을 보였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런지 또 심술이 마음을 지배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모두들 취기가 오르니  안부나 근황 이야기에서 자랑거리로 이야기가 바뀐다. 

특히 돈 자랑, 자식 자랑, 며느리 자랑 사위 자랑 등등 나는 듣기가 거북해서 술만 연거푸 마시고 있는데 누가 옆구리를 툭툭 친다. 학창 시절 그리 친하지 안 했던 친구가 괴로운 일이 있냐고 하면서 말을 걸어온다. 아니라고 했는데도 자리를 만들어 내 옆으로 앉는다. 그리고 나를 잘 아는 사람처럼 술잔을 뺏으면서 너 괴로움이 무엇인지 몰라도 자기보다는 나을 거라며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한다.


 자기는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의사이고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모든 뒷바라지를 최상급으로 해주면서 서울대 의대에 진학을 시키다 보니 재산을 많이 모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자식이 의사가 되면 본인의 노후는 잘 될 거라고 믿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들이 졸업을 하고 인턴 생활을 할 때 상당한 부잣집에서 중매가 들어와 선을 보고 결혼을 시켰는데, 모든 권한을 며느리가 쥐고 있어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라는 것이다. 

 아들은 처갓집 쪽으로 기울어져 한 달에 한 번도 얼굴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참 딱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심술이 조금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친구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우리 둘은 식당을 살며시 빠져나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오는 도중에 가슴이 먹먹하고 현실이 비관스러웠다. 운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복이 없는 걸까? 세상이 내 편이 아닌 것 같아, 하고 주변 탓, 조상 탓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남 탓을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집사람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삶을 뒤돌아보면 뭐니 뭐니 해도 가정이 최고인데, 오늘 아침에는 집사람한테 너무 큰 잘못을 한 것 같다. 퉁명스럽게 미안하다,라고 하면서 살며시 안아주었다.



 평생을 경쟁만 하다 살아온 우리들은 현실을 슬기롭게 풀지 못하면 응어리를 가슴에 안은 체 여생을 보내게 된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또 의지하지 말고, 지금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은퇴 후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