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없는 쉼표도 소중했다

여름휴가의 짧은 기록

by 눈썹달

올여름은 장마가 정말 길었다. 하필 여름휴가가 있던 7월 말에.

그래도 회사의 공식 휴가기간에 나도 쉬어야 했기에 흐리고 비 오는 날씨 속에 9일간의 휴가를 맞았다.


코로나로 인한 학사일정 변경으로 아이들이 방학을 하지 않아서 며칠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를 챙기고, 온라인 학습을 챙기고, 등교하는 날은 학교를 챙겨 보냈다. 늘 상상만 하던 '지겨울 만큼 책만 읽기'는 올해도 상상으로 그쳤다.


먹은 것을 치우고, 둘러보면 손 가는 것 투성이인 집안일에 얼마간 매몰되었다가 고개를 들면 다시 먹어야 할 시간이었다. 집에 있는 날들은 먹고 치우는 것의 반복. 그래서 다들 외식을 즐기는가 보다. 설거지는 개운한 기분이 들어서 싫어하지 않지만 먹기 전 준비부터 먹은 후 설거지까지의 노고에 초점을 맞추어 볼 때, 돌아서면 다가오는 '밥때'라는 것은 사람을 종종 지겹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내가 요리를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집 바닥 곳곳 먼지가 보이면 틈틈이 청소기를 돌렸고, 기분 전환 삼아 책상 정리도 했다. 또 다른 시간에는 남편과 걷기 운동을 나가거나 저녁엔 간단한 안주에 술도 한잔씩 했다.




휴가 끝 3일은 삼척 여행을 계획한 상태였다. 그쪽도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해서 취소가 가능할지 문의했었는데, 그 숙소를 이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 무료 취소는 불가하다고 했다. 날씨만 체크하다 연락하게 된 시점이 입실 이틀 전이어서 취소하면 페널티가 숙박비의 80%였다. 그보다 남은 날들까지 집에서 보내기는 싫었기에 go 하기로 결정.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날씨운이 따라준다면 더 바랄 게 없고.


나에게는 여행을 떠나기 전 해야 하는 필수 과정이 하나 있다. 며칠 후 다시 만나게 될 집을 깨끗이 치우고 정리해 놓는 것. 여행을 마치고 정돈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안정감이 좋아서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면 청소와 정리정돈은 꼭 하고 떠난다. 짐을 챙겨놓고 서너 시간 할애해 열심히 청소했다. 며칠 후의 나와 가족을 위해서.


도착 당일 숙소 앞 바다와 그 다음날 같은 바다. 그저 감사할따름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의 삼척 하늘은 흐렸지만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고, 감지덕지하게도 다음 날은 매우 화창했다. 작년에 너무 좋았던 계곡을 다시 찾았는데(우리는 작년에도 휴가 때 삼척을 들렀었다) 올해는 물이 너무 차서 일찍 철수하고, 숙소 근처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오랜만에 물놀이를 즐겼다. 나이가 들면서 바닷물에는 좀처럼 들어가지 않게 되었지만 그토록 뜨거운 햇살과 찌는 공기를 마시며 물놀이를 구경만 하고 있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짠기는 조금만 참으면 가까운 숙소에서 금세 씻어낼 수 있으니 나도 아이처럼 뛰어들었다. 수영을 못해 구명조끼 입고 바닷속 해초처럼 둥둥 떠다니며 시원함을 즐겼다. 바다와 하늘을, 남편과 아이들의 웃음을 보며 함께 웃었다. 같이 웃을 수 있다면 행복한 거다. 완벽하지 않아도 결국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여행은. 코로나 19로 갑작스레 빼앗겨버린 여행의 맛을 짧게나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삼척에서의 2박을 추억으로 새기고 깨끗하게 정리된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편안하게 1차전을 마무리한 기분이 들었다.


휴식 후에는 마음을 다잡게 된다.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험한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며 상처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다시 시작된 나의 2차전을 홀로 응원해본다.



*코로나 예방수칙 잘 지키며 무사히 다녀온 이틀이었음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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