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 오래 들여놓고
나쁜 건 물처럼 유유히

나이를 먹을수록 느는 화를 다스리는 기술

by 눈썹달

주된 일상인 직장생활과 인간관계, 육아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의도치 않게 상황이 흘러가기도 하고, 오해를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신뢰가 얕아 쉽게 의심하기도 한다. 일상의 부정적인 요소들은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컨디션, 스트레스 정도와 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과 반응하여 쉽게 화를 일으킨다. 분노를 참기 힘들 때는 화나는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상대에게 그것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자신이 받은 화력만큼 상대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 상세하게 고민하기마저 한다.


화는 뜨겁다. 정화가 없다. 화에 휩싸인 정신은 판단을 잃는다. 화를 당하는 사람과 화를 내는 사람 모두 상처 입는다. 피꺼솟(피가 거꾸로 솟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대로 화를 내버리고 나면 마음이 몹시 불편해지고 만다. 영원히 안 볼 사이라면 모를까 매일 보거나 혹은 어쩌다 한 번이라도 마주칠 상대라면 어떻게든 당시의 상황을 마주하고 서로 감정 정리하는 절차가 꼭 필요하다. 해명을 하든, 사과를 하든, 잊지 못할 상처로 기억될지언정 그 일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나아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느는 것 중 하나라면 '화를 참는 것'이다. 무조건 참는다기보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화를 사전에 잘 다스리는 스킬이 생긴 것 같다. 다칠 만큼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조정할 수 있는 자력이 쌓인달까. 원래도 막 터트리는 성격이 못되었지만, 그런 나도 오랜 사회생활과 팍팍한 일상을 살며 겪은 여러 사람과 상황들로 인해 화를 내는 것이 학습되었다. 화를 내지 않으면 호구로 보이거나 내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날 뭘로 생각할까. 분하고 서운하고 원망도 했다.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해 손해 보거나, 그때 이 말을 했어야 했다며 허공에 날렸던 이불 킥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지금은 그 시절만큼 화가 나지 않는 것 같다. 흔히 얘기하듯 나도 화가 올라오면 일단 멈춘다. 글 쓰다 쉼표 하나 찍듯, 아니면 띄어쓰기라도 하듯 한 템포 쉰다. 그러면 후끈한 머릿속에 바람이 살짝 불면서 감정도 그만큼 환기된다. 그 몇 초의 순간만으로도 치미는 화를 가라앉힐 수 있다. 화를 다스리고 나면 참은 게 후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그때 참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기에 안 좋은 감정은 최대한 빨리 흘려보내려 한다. 담아놓고 끙끙대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몇 차례 곱씹게 되는 일이 생기지만 긴 숨으로 토해내고 털어버린다. 지나친 자기반성도 경계하려 한다. 길게 늘어지는 자기반성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의 발목을 붙잡는다. 단조로운 듯 복잡한 일상에서 요동치는 감정은 조금 무심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마음을 가볍게 하려고 노력한다.


타고난 다혈질적 기질이 여전히 느껴질 때가 있지만 점점 통제가 수월해짐을 느낀다. 화내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가 대견스러울 때도 있다. 맘대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지 않은가. 그저 그러려니 하고, 그런가 보다 하고, 그럴 수 있지 하고, 그러라 그래 해본다. 버거운 어려움이나 힘듦이 찾아오면 이 또한 지나가리 해본다. 감정은 흘러들고 다시 흘러나가니까... 좋은 건 오래 들여놓고 나쁜 건 물처럼 유유히 흘려보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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