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지만 미안하지 않아
내가 전하는 나를 향한 위로
코로나 감염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일주일 연장되었다. 이번 주까지는 강화된 거리두기가 유지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나가지 못하고 원격 혹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다. 초3 둘째 아이 학교에서도 쌍방향 원격으로 아침 조회를 실시한다고 하여 노트북을 세팅해 두었다. 이미 일주일째 같은 앱으로 학원 수업도 듣고 있어서 생소하지 않을 테고, 클릭 한 번이면 바로 접속될 수 있게 세팅을 끝내 놓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오랜 세월 직장생활이 몸에 배어 그런지 아이의 아침 조회 20~30분,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오전 반차를 내야겠다는 다짐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당일 아침. 혼자 원격 조회에 접속할 아이를 생각하니 잘못했단 생각이 밀려왔다.
'혹시 오류가 나거나 뭔가 접속이 잘 안되어 참여를 제대로 못하게 되면 어쩌지? 처음 해보는 화상 조회인데 참석 못하면 아이가 많이 실망할 텐데. 30분일지언정 맘 편히 도와주고 조금 늦게 출근할 걸... 일도 많지 않아서 내가 회사에 미리 신청만 했으면 됐는데 왜 안 한 거지?'
준비만 잘해 두면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세심하지 못했다. 갑자기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일하는 엄마여서 미안한 게 아니라, 일한답시고 이런 걸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어서 미안했다. 일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왜 몰랐지? 왜 빼먹었지? 왜 안 했지? 내가 도대체 왜 그랬지...
구멍 많은 엄마일 때 무수한 자괴감에 빠진다. 14살 큰애와 10살 작은애를 키워오면서도 나는 여전히 덤벙대고 잊어버리고 무심할 때도 많으며 서툴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육아가 쉬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성장단계마다 육아가 새롭다. 부모로서 알아야 할 것들, 배워야 할 것들이 단계마다 다르게 펼쳐지고 어떤 부분에선 성별에 따라 접근이 달라진다. 자주 고민과 갈등을 할 수밖에 없고 이게 맞는가 저게 맞는가 흔들린다. 그 와중에 세상마저 빠르게 변한다. 내 몸 하나로도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인데 아이들까지 그에 발맞춰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란.
아이들, 직장, 남편, 가족, 집, 인간관계, 나.... 머릿속에서 생각이 구불구불 뒤엉킨다.
그런 일상을 살다 보면 나 자신이 측은해질 때가 있다. 나는 언제 한번 편하게 쉬어보나.
회사 일에 사회생활, 아이들 케어에 집안일에... 매일 피곤하다. 그러다 놓치거나 무심코 지나친 것들에서 아차 하는 상황이 발생된다. 그러면 왜 그것까지 챙기지 못했는지, 왜 생각하지 못했는지 자책하기 시작한다. 속상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면서 스스로에게 엄마자격 없음 딱지를 붙이는 지경까지 갈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나는 절대 엄마자격이 없지 않다. 엄마니까 늘 생각하고 고민하고 선택하고 좋은 결과를 맞거나 실패도 맞는다. 아이가 크면서 나도 크는 것이다. 아이가 없다면 그런 고민과 성장통을 겪을 일이 있을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지금도 종종 그 책임의 무게에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이 아이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잘 키워낼 수 있을까, 성인이 된 후에도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 길을 잘 지켜봐 줄 수 있을까, 우리는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식 한 명당 한 우주.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적어도 세 개의 우주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라는 우주, 그 우주를 함께 보듬는 남편이라는 우주, 그리고 나와 가장 오래 지내온 나 자신의 우주.
그렇게 나를 둘러싼 여러 우주들과 뒤엉켜 부모라는 이름으로 성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위로하고 다짐하는 이 과정을 앞으로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내 옆에는 아이들과 남편이 있고 그들에게는 내가 있다. 나는 존재만으로도 가정에 빛이 되는 엄마라는 것을 스스로가 늘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