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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Dec 13. 2023

버릇의 기억

출근하는 지하철 안. 휴대폰 액정을 터치하고 있는 내 손 끝에 거스러미가 일어난 것이 보였다. 갑자기 눈에 가시처럼 거슬린다. 잡아채고 싶은 욕망이 스멀거리지만 만원 지하철 안이라 좀 그렇다. 잘못하면 또 다른 거스러미를 만들며 떼어지거나 그 부분이 생각보다 깊게 뜯어져 상처가 나기도 하니 일단 지하철에서는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어렸을 때 손끝을 물어뜯는 버릇이 심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이상한 버릇이었다. 내가 말하는 그 손끝은 엄밀히 말하면 손톱 끝이 아니라 손톱 양쪽 끝에 있는 살을 말한다. 그 부분이 약간 딱딱하게 굳은살처럼 느껴지면 뭔가 답답함이 들어서 이내 거길 이로 뜯어 뱉어내거나 또는 다시 먹었다.(먹었다는 말을 쓰니 '구의 증명' 소설이 생각나서 조금 기괴하다.)


뜯어낸 걸 삼켰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나 홀로 하는 그 버릇이 시도 때도 없었기에 그걸 매번 밖으로 뱉어낼 수 없어서였던 것 같다. 교실에서, 통학하는 버스에서, 집에서. 뭔가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물어뜯고 있었고 그게 딱 그 부위에서 멈추지 못했다.


손톱 양 끝에 딱딱해진 살 껍질을 물어뜯으면 껍질이 결을 타고 찢어지듯 일어나며 뜯어지곤 했다. 깔끔하게 뜯기지 않고 또 다른 거스러미를 일으켰다. 그 살갗 일어남을 참지 못해 또 물어뜯는 행동이 이어지면서 어떤 때는 엄지손가락 반정도를 헐벗게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피가 나는 상처는 아니었어도 피부를 보호하는 얇은 표피가 벗겨진 부위는 아팠다. 왜 그렇게까지 이상한 버릇을 지속했었는지 모르겠다. 어떤 강박이 있었던 것인지, 힘없던 어린 시절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을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학교 2~3학년때였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 그날도 나는 버스 안에 앉아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보며 손가락을 입에 대고 연신 그 버릇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버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신체가 컸음에도 아이처럼 손가락을 입에 대고 있는 불안하고 이상해 보이는 학생이 있었다.


빨갛게 헐벗은 손가락 끝, 쓰라림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지속하는 나. 갑자기 머리를 때리듯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이틀 이어진 버릇이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창에 비친 내 모습은 마치 그만해야 한다는 어떤 계시처럼 내게 충격으로 꽂혔다.


그날 이후 밖에서 하던 그 버릇은 신기하리만치 바로 멈춰졌다. 그 시점부터 '사회적 체면' 같은 것을 인식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나 혼자 하는 행동이라고 해서 밖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남에게 불편함, 나아가서는 혐오감도 줄 수도 있다는 자각을 그때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외부에서 가해진 어떤 압력이나 감정적 상처를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멈추게 된 것은 고맙고 다행한 일이었다.   


성인으로 산지 꽤 오래된 지금도 손톱 양 끝 살이 딱딱하게 느껴지면 떼고 싶다. 보통은 금세 다른 것들에 신경이 넘어가지만, 떼고 싶은 마음이 크게 들 때면 이제는 손톱깎이를 사용해 잘라낸다. 도구를 사용하니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어서 좋고, 남아있는 이 버릇이 자기 관리로 바뀌는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다.

 

잘라내고 올라오는 것의 반복이라 손 끝이 아주 깔끔하지는 못해도 물어뜯던 그 시절에 비하면 예쁘다. 그래도 잘라내는 일을 계속하는 한 손끝에 대한 민감함도 계속될 것이기에 좀 더 둔해질 수 있도록 손끝과 더 멀리 거리 두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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