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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Feb 12. 2024

나는 말한 대로 살고 있었다

나도 몰랐던 나에 대한 엄마의 증언

설날 당일, 친정에 가서 세배드리고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이튿날이었던 어제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깨어있던 엄마와 식탁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근래의 일상 이야기로 시작해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로 여러 대화가 오고 갔다. 


언제까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엄마의 질문에 내가 답하면서 대화는 앞으로를 위한 준비로 이어졌고, 나는 몰랐던 내 이야기를 엄마한테서 듣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 나 회사 다니면서 해볼 수 있는 일로 블로그 시작해서 지금 조금씩 하고 있어."


"그래~ 그거 꾸준히 해보면 되겠네. 너 원래 옛날부터 글 쓰고 싶다고, 작가 되고 싶다고 했었잖아. 해외근무 다녀오더니 갑자기 회사 관두고 작가 하겠다고 해서 '쟤가 왜 저러나.' 아빠랑 내가 걱정을 했었지."


"에? 내가 작가가 되겠다는 말을 했었다고? 내가??"



20대 후반이었던 내가, 다니던 회사(지금도 같은 회사임)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겠다고 부모님께 선언을 했었다는 이야기였다. 깜짝 놀랐다. 


'작가'라는 소망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비밀처럼 담겨있는 것이었는데 내가 어렸을 때 그걸 입 밖으로 내어 선언을 했었다고? 그것도 부모님에게?? 심지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 기억에는 없는 나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와 관련해 생각나는 장면이 전혀 없는데, 엄마에게는 그때 내 모습이 여전히 생생한지, 정작 본인인 내가 기억을 못 한다는 것을 의아해하셨다.


내가 그랬었구나.... 




이번 대화를 하면서 생각난 예전 대화가 하나 더 있다. 


그때도 어느 명절이었고 엄마와 과거를 회상하며 얘기하던 중에, 내가 중남미에 있는 법인으로 2년간 파견근무 다녀오는 조건으로 지금의 회사에 채용되어 부모님께 다녀오겠노라 했던 이야기였다. 


그때를 회상하며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엄마 나는 외국으로 나갈 거야. 해외로 갈 거야.' 하더니, 네가 진짜 외국에서 일하는 걸로 취업이 돼서 나간다고 했을 때 신기했어. 결국 말한 대로 하네 싶어서."


"내가 어렸을 때 외국 나간다고 말했었어? 기억에 없는데...?"


"너 외국 나가 살 거라는 말 종종 했었어. 근데 잘 알려지지도 않은 나라로 간다고 해서 엄마는 가지 않았으면 했는데 결국 가더라."



너 그런 말 종종 했었어. 결국 가더라.


엄마가 해 주었던 저 두 마디 말에서 한동안 얼마나 힘을 얻었었는지 모른다. 엄마는 기억하고 있던 내 얘기를 해준 것뿐인데, 나에게는 덕분에 <결국 말한 대로 한 나>를 발견한 셈이 되어서 스스로에 대한 작은 자부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이번에 해 준 엄마의 증언(?)으로 어린 시절에 <작가를 선언했었던 나>를 알게 되었고, 40대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며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나에게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오래전부터 나는 쓰기를 원했던 사람이었음이 명확해졌다. 그래서 결국 쓰고 있다는 것을.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것을.



적성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남은 평생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라면, 

오래전에 썼던 일기를 꺼내보거나 나를 잘 아는 사람을 통해 나에 대해 들어보는 것처럼 과거의 나를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지속적으로 내게서 나오는 말과 그에 따른 행동들이 나를 이끌어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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