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떼, 나의 캐비. 잘 가

장거리 출퇴근자의 자동차 이야기

by 눈썹달

나의 자동차 출퇴근은 올림픽대로를 서끝에서 동끝으로 왕복하는 일이다. 출퇴근 시간의 그 도로는 말해 무엇할까. 지하철을 탈 때보다 30분은 일찍 출발해야 1시간 반 만에 회사에 도착하고, 퇴근은 30분 이상 늦게 출발해야 2시간 내로 집에 도착한다.


지금이야 지하철로 1시간 40분 정도면 도착하지만, 6~7년 전 골드라인이 없고 9호선도 연장되지 않았을 때는 편도 2시간 넘게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을버스 타고 나가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서, 다시 3호선을 탔으니까... 대중교통이 그나마 편해진 게 십 년은 넘은 듯했는데 헤아려보니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제는 출퇴근길 운전을 가급적 하지 않지만 지금처럼 대중교통이 수월해지기 전까지 나는 늘 자동차와 함께였다.


회사가 멀리 이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서른 즈음, 생계유지를 위해 2종 보통 면허를 따고 괜찮은 중고차 한 대 사서 바로 운전을 시작했었다. 초보 시절 도로에서 벌벌 떨었고, P턴 구역에서 버스와 접촉하는 사고도 겪고, 졸다가 앞차에 뽀뽀하는 사고를 낸 적도 있지만 초반 몇 가지 크지 않은 사고를 경험한 후로 운전에 잘 적응하여 10년 넘게 무사고 운전 중이다.


그때 만난 내 첫 차는 아반떼 XD였다. 그 친구와 함께 운전에 익숙해지고, 막히지 않는 올림픽대로를 달리면서 나는 그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자유를 처음으로 느꼈다. 내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편하게 갈 수 있는 자유! 내가 통제할 수 없어 보이는 큰 이동수단을 무리 없이 컨트롤하는 내가 대견하고 멋지기까지 했다. 왜 이제야 배웠나 싶을 만큼 운전은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기술이었다.


고장 없이 함께 잘 다녔던 아반떼였지만 우리 식구가 늘면서 가족수에 맞지 않아 떠나보내게 되었다. 차 상태가 좋아 다시 중고로 팔 수 있었다. 그 친구를 판매상에게 넘기고 남편과 집에 오는 길, 갑자기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버렸다. 말로 표현이 잘 안 되는... 소중한 친구이자 동지를 떠나보낸 기분이었달까. 출퇴근 길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해 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 떠나보낸 게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서 오는 눈물이었다.


그렇게 아반떼를 보내고 맞이한 건 6인승 캡티바였다. 이 친구는 새 친구였는데, 시작부터 힘이 넘치고 든든했다. 아이들은 새 차에게 '캐비'라는 애칭을 지어주었고 우리는 캐비와 함께 출퇴근도 하고 많은 곳을 여행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라 캠핑도 여행도 참 많이 다녔다. 캐비 역시 잔고장 없이 묵묵하게 오랜 시간 동안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 미취학아동과 초등저학년이었던 두 아이는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고, 캐비는 노쇠해졌다.


운행기간 만 11년, 주행거리 29만 km. 최근 캐비는 매연 이슈로 자동차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친구를 수리해서 쓰자니 비용이 어디까지 들지 알 수 없고, 수리한다고 검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확답할 수 없었다. 평소 주행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당연히 몇 년은 끄떡없다 여겼는데 불쑥 이별이 다가온 느낌이었다. 미안하게도 캐비에게 큰돈을 쓸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이별을 선택했다.


중고차 수출 딜러를 통해 어제 캐비를 떠나보냈다. 나는 근무여서 캐비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고, 연차였던 남편이 딜러에게 차를 확인해 주고 몇 가지 사항으로 감가 등 금액을 네고하고 넘겼다. 나는 퇴근길에 좋은 거래 감사하다는 딜러의 메시지를 받고서야 더 이상 캐비가 없음을 실감했고 울컥했다. 아반떼를 보낼 때와 같은 감정이 올라왔다. 또 한 명의 절친을 떠나보낸 기분. 지하철 안에서 줄줄 울 수는 없어서 그렁그렁 상태로 눈물을 겨우 삼켰다.


내 삼사십 대 삶을 보필해 준 두 차를 보내면서 차에 참 정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서 나는 차 안에서 기뻤고, 힐링했고, 울었고, 화도 내고 힘들어도 했다. 혼자 운전하며 오고 가는 출퇴근 시간 동안은 차와 나뿐이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죽어라 일이 많아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 12시께 퇴근하던 날, 자동차 라디오에서 나오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듣다가 펑펑 울어버렸던 일.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하는 노랫말에 삼십 대의 내 힘든 마음이 터졌던... 나와 내 차만 아는 이야기. 그런 도로 위의 내 이야기를 아는 친구. 정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의 반떼, 나의 캐비.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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