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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Dec 20. 2020

너와 나는 다르지만

다름을 인정하며 공생하기

동료 중에 유독, 만약의 경우를 엄청 고려하는 이가 있다. 그는 일할 때 기본 플랜에 백업으로 플랜 B와 C까지 스스로 예상할 수 있는 만약의 사태를 구체적으로 대비한다. 조직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도움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단점이라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마저 같은 모드로 접근하고,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도 대부분 그런 식으로 조언을 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을 많이 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적당히 떠올려보는 정도로 넘어간다. 어차피 닥쳐봐야 알 일이니까.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해 다음 플랜까지 구체화해놓을 에너지가 없다. 동료의 방식은 한 가지 일을 위해 해야 할 보이지 않는 작업이 많다. (내가 보기엔 많은데 별로 할 게 없다고 한다.) 나도 간혹 사안에 대해 적당히 대처했다가 뜨악한 적이 있었으니 그와 같은 접근방식을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 하.. 지만! 도저히 안된다.




나는 단순한 성향이라서 가끔 그와의 대화가 버겁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당장을 생각하기도 바쁜 상황에 내가 생각해야 할 경우의 수가 몇 가지는 더 늘어난다. 이럴 수도 있어요, 저럴 수도 있어요. 그럴 땐 이렇게 해야 되고, 저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상당히 전문적인 조언인 듯하여 아 그래요. 그런 건 또 몰랐네요.. 의 반응이 나가지만, 사실 '거기까지는 괜찮은데...'일 때가 많다. 정말 성심성의껏 여러 경우를 말해주니 고맙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그도 나에게 의견을 묻거나 조언을 구할 때가 있다. 얘기를 듣고 내 생각이 반응하는 대로 의견을 말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을 듣고 있노라면... 혹시 답정너라고 아는가. 이미 결론이 나 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오고 가는 대화의 종착지는 본인의 생각이었다. 성격대로 이미 치밀하게 검토했고 어차피 자기 생각에 확신이 있어서 대로 할 것이었다. 나에게 물어보는 이유는 정말 조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실행에 옮기기 전 반응만 한번 확인하려는 정도인 것 같았다. 의견을 주느라 작동하던 머리에 김이 새면서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고 만다.




나와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동료와 일하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같은 팀원으로서 잘 버티고 있다. 스타일이 안 맞는 부분은 있지만 그가 가진 치밀함이 분명 팀에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답이 정해져 있을지언정 내 생각을 말해 주는 것이 도움될 때도 있다. 서로의 장점을 더 많이 봐주고 지지해 주고 싶다. 


문득 내가 먼저 그에게 의견을 구했을 때, 나를 위해 나열해주는 상황별 옵션을 두고 내 영혼이 대화 밖을 떠돌게 되었을 때, 그도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뭐야.. 물어볼 땐 언제고 영혼 없이 대충 듣고 마는 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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