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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 Feb 09. 2022

취객을 제압하는 방법

취향감정-0


한 청년이 취객을 제압하는 방법     


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본 일이 있다. 앞뒤 사정이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지하철역 플랫폼에 경찰이 출동해 있었다. 아마도 만취한 남성 때문인 모양이었다.


남자는 고성을 질러댈 뿐 경찰의 통제에는 불응했다. 체포하겠다는 엄포에도 그럴 테면 그래 보라는 식의 막무가내였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한 청년이 일어서더니 남자에게로 다가섰다. 영상의 제목대로, 이제 취객을 제압할 차례였다. 영상이 시작되고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던 취객은 단숨에 제압되었다.  

   

남자는 그저 취객을 끌어안고 등을 도닥여주었을 뿐이었다.     


수많은 댓글이 달렸던 것을 기억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런 위로가 아닐까. 그런 내용의 댓글이 가장 '좋아요'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이 영상이 주는 감동과는 별개로 지금 우리가 참 감정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뜻 이성의 영역에 속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라도 결국 감정이 더 힘이 세다. 무슨 말을 했느냐보다, 어떤 감정을 전달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공감의 시대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건 역설적으로 감정 무척 연약한 상태라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감정을 단련하는 훈련이 필요하기도  텐데, 우리 사회가 그런 면에서 취약하다는  이미 많이 지적되어온 바이기도 하다. (한때 화두였던 '웰빙'이나 힐링' 결국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있겠고)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일종의 만취 상태에 있다. 누군가 나를 안아주기를 바라면서. 위로만 된다면 다른 모든 것에는 눈 감아버릴 준비를 하고서.


위로만 받을 수 있다면!


그래서 공감하기 어렵고 위로가 되지 않는 올바른 일보다, 공감하기 쉽고 당장 내게 위안이 되는 그른 일을 선택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올바른 일에 더 공감하려 애쓴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세상의 진보를 믿는다면 순진하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믿는 편이다.


10년 전의, 20년 전의, 100년 전보다, 지금 여기가 더 나은 세상이고, 10년 뒤의, 20년 뒤의, 100년 뒤의 지금 여기가 더 나은 세상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런 믿음 없이 어떻게 현재를 견딜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한 소설가에게 물은 적이 있다


작가와의 만남 행사 같은 곳에서였다.


그 작가의 몇몇 소설에는 실존했던 인물의 이름이나, 사건이 아무렇지 않게 언급되고는 했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조심스러울 수도 있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짧은 언급도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현실과 재현된 소설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나가는지 물었던 것 같다.


질문을 받은 작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렇게 말하면 믿지 않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소설을 써요"


라고 말을 시작했다. 그러니 어쩌면 소설과 현실의 균형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은 일일 테다. 소설은 현실에 속한 것이고, 조금 과감하게 말해서 소설은 현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균형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어차피 소설이 현실보다 커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소설을 쓴다고 세상이 얼마나 바뀔까.


아마 거의 바뀌지 않겠지. 다른 어딘가에서 읽기를, '책 때문에 인생이 바뀌는 경우는 어디선가 떨어진 두꺼운 책에 머리를 맞아 다치는 일 정도를 빼고는 없다'고 했다. 썩 공감이 되는 말이다.


세상은 대개 그런 것들로 이뤄져 있다. 세상을 거의 바꿀  없는 것들. 일론 머스크나 도널드 트럼프가 트윗을 작성한다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화를 만든다고, 인류달에 간다고, 비틀스가 노래를 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기는 더라도, 천지개벽 따위 없다는 말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대부분은 아주 끔찍한 예외들이.)


그런데 그런 것들이 모여서, 세상이 바뀌어 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든 변화를 설명할 수는 없다. 세상을 바꿀  없는 것들이 모여서, 세상을 바꿔온 것이다. 


비틀스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인류가 달에 도착하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이, 미야자키의 영화를 본 사람들이, 머스크와 트럼프의 트윗을 읽은 사람들이, 세상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다.


그런 생각에 나는 종종 위로를 받는다. 이상한 일이다. 모르는 사람이 안아준다고 해서 위로를 받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원래 이상한 일들에 위로를 받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의 생에서 가장 이상한 일이 있다면, 그건 매일 여지없이 하루가 다시 시작되고는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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