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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스인 Sep 04. 2023

개싸움을 해도 같이 영화 볼 사람은 남편뿐

주말에 여행 잘 다녀와서 막판에 아주 사소한 것으로 남편과 개싸움을 했다. 사소한 것이라기보다는 사소한 것을 꼬투리 잡은 나의 샤우팅 때문이었지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싸울 줄 알았으면, 그때 화 좀 덜 낼껄 싶지만, 이미 지나간 일. 

사람도 많고 숙소도 비싸고 차도 막혀서 가급적 주말 여행보다는 금토나 일월로 여행가는 걸 선호하는 우리였지만, 모처럼 월요일엔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우리 둘이서 데이트해보자는 마음으로 일정을 이렇게 짰다. 그리하여 강원도 양양 찍고 돌아오는 데 5시간 하하(물론 식사 시간도 포함돼 있지만). 아이들은 장시간 좁은 카시트 안에서 견디기엔 너무 어렸고 우리의 인내심도 한계를 치고 있었다.

결국 집에 다와서 아주 같잖은 이유로 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낯부끄럽다. 부모라는 인간들이 아이들 앞에서 언성을 높일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찝찝하게 하루를 마감하고 다음날도 데면데면. 남편과 맛있는 것을 먹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려던 계획이 틀어져버리니 속상했다. 나 혼자 여행을 가볼까? 나의 소중함을 좀 알아보라고? 엔화가 싸다는데 혼자서 비행기 타고 우동이나 한 그릇 때리고 와? 근데 내 여권 유효기간 만료... 그리고 혼자 간다고 해도 재미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럼 혼영? 영화를 본 후 누군가와 감상을 공유하는 게 묘미인데, 이것도 별로일 것 같다. 

그래! 휴가는 소중한 것. 남편에게 계속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귀한 시간 낭비 말고 영화나 보러 가자고 했다. 남편은 콜! 그렇게 남편과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왔다. 어제 신명나게 싸운 입장에서 달달구리 신혼부부 박서준과 박보영의 케미를 지켜보는 게 민망하기도 했지만, 으어따! 영화 한 편 잘 만들었네. 재미나게 잘 보고 돌아왔다. 그래, 역시 개싸움을 해도 같이 영화볼 사람은 남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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