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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스인 Jan 22. 2024

서울 자가도 없고 대기업도 안 다니지만 너무 재밌네

송희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예전에 스치듯 한 번 제목을 듣고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얼마 전 웹툰을 읽고 홀린듯 도서관에서 원작을 빌려왔다. 평범한 직장인인 작가가 쓴 대기업 부장의 이야기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총 세 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김 부장 이야기는 1편에 중심적으로 나온다.


동료들한테는 100원 한 장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듯 돈을 아끼면서도 스타벅스 말차라떼를 즐겨 마시고 남의 시선에 과도하게 신경 쓰면서 명품 정장과 시계, 가방에 골몰한다. 결국 회사에서도 잘리고 상가 분양 사기를 당하며 나락으로 가는 듯하지만, 현명한 아내 덕분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재기를 위해 다시 뛰어본다.


그러면서 길거리에 스쳐갈뿐인 사람들의 시선에는 신경을 썼으면서, 가족들에게 무관심했던 자신을 돌아본다. 백화점 직원, 카페 종업원, 회사 로비 안내원 등 자신이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했는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얄미운 캐릭터인 김 부장이 망해가는 모습이 고소했다. 그런데 후반부에서 남편에게 따뜻한 가족의 품을 내어주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아직은 내공이 더 필요할 듯하다.


"여보, 앞으로는 중요한 결정 있으면 나한테도 꼭 미리 말해줘. 우리는 가족이잖아. 당신이 대기업 출신에 똑똑하고 능력 있는 건 알지만,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 생각 들어보는 게 도움 되는 거 알지? 그리고 나는 아내니까 나한테는 꼭 말해줘. 지금 이 시간부터."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거금을 사기 당하고 남편에게 이렇게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잘해보려다가 실수한 것인데 그를 사지로 몰고 갈 이유도 없다.


김부장이 결국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다가 정신과를 찾았을 때 의사가 한 말도 가슴 깊이 남는다. 물체에도 관성이 있듯, 삶에도 관성이 있따고.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경험을 토대로 형성된 자아는 쉽게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인생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을 때는 과감하게 떨쳐버릴 필요가 있다고.


"시험을 못 봤을 때 어떠셨어요? 학교 생활 다 망친 것 같고 세상이 끝난 것 같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때 왜 그렇게 고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똑같아요. 회사에서 은퇴했다고 해서 삶을 은퇴한 게 아니에요. 사기 한 번 당했다고 해서 인생이 막을 내리는 게 아닙니다."


"남은 삶을 생각해보세요. 젊었을 때처럼 도전적으로 받아들이느냐, 그저 과거만 회상하면서 한탄하고 후회하며 죽음을 기다리느냐, 이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김 부장님 몫이고요."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집에 있는 나에게 아내의 회고는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 전세였잖아. 아들 기죽을까봐 자가에 동그라미쳤는데, 그러고 나서 내 집 하나는 꼭 갖고 싶어졌어. 아들한테 거짓말하기도 싫었고. 그때부터 어떤 목표가 생기고 나니까 기분이 나아지더라고.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시세를 알 수 있던 게 아니어서 여기저기 부동산 돌아다니다 보니까 바깥공기도 자연스럽게 맡게 되고, 집 보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공원에서 산책도 하게 되고,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느낌에 우울한 건 점점 없어졌어. 그때 알았지. 내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끊없는 우울함에 허우적댈 거라는 걸."


"그렇게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문득, 나에게 시간적 자유를 준 당신이 고맙더라. 당신은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을 텐데 나는 여유롭게 책 읽고 있고... 나도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찾고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아이를 갖고 정신 없이 육아를 하다보니 어른들과 하는 대화에 목이 말랐고, 점점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감사하게도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작업이 들어왔고 열심히 하다가도 화가 올라왔다. 왜 나만, 왜 나만...! 괜히 죄없는 남편에게 화살이 돌아갔고 다투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비가오나 눈이오나 출근하는 남편 덕분에 아이들을 여유롭게 집에서 케어할 수 있다. 프리랜서라는 업무환경도 남편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 남편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어느 순간에도 현명하게 대처하는 유니콘 같은 김부장의 아내를 보면서 나도 저런 아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대리의 이야기! 2편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해 월요일이 되자마다 도서관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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