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내서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 『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어린이들이 책 읽는 자세를 보면 희한하다. 저런 자세로 책이 읽힌다고? 싶은 자세들로 책을 본다. 엎드려 보는 건 양반이다. 소파에 앉아서 바닥에 책을 두고 허리를 한껏 굽혀 읽는다. 누워서 발을 천장으로 올린 후 발 위에 책을 올려놓고 읽는다. 소파에 누운 채 고개를 반대로 꺾어 바닥에 있는 책을 읽는다. 다리를 찢은 채 읽는다. 걸으면서 읽는다.......
그런데 어른들의 요구는 늘 같다. 똑바로 앉아서 읽어라. 눈 나빠진다, 허리가 굽는다, 다친다. 온갖 이유를 들며 한 가지 자세를 정답으로 가르친다. 책 보는 자세만 정해주는 게 아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책과 관련된 어른들의 잔소리는 끝이 없다. 책 좀 읽어라. 처음부터 읽어라. 찬찬히 읽어라. 끝까지 읽어라. 보던 책만 보지 말고 골고루 봐라. 똑바로 앉아서 봐라. 꼼꼼히 읽어라.
심지어 설명도 요구한다. 주인공이 누구냐. 줄거리가 뭐냐. ‘독후감 써볼래’까지 가면 차라리 책을 안 읽고 싶어진다. 고작 책 한 권 읽는 일에 뭐 이렇게까지 요구사항이 많은 걸까? 읽으면 읽는 대로, 읽지 않으면 읽지 않는 대로 잔소리가 쌓인다.
작가이자 중등학교 문학교사인 다니엘 페나크는 『소설처럼』에서 책 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 10가지를 선언한다. 엄숙하고 권위적인 지침 따위는 없다.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읽으면 된다. 건너뛰며 읽어도 된다. 아무 거나 읽어도 된다. 읽은 걸 또 읽어도 된다. 심지어 읽지 않아도 된다. 된다, 된다, 뭐든 된다!
고작 책읽기일 뿐인데 안 되는 게 뭐 그리 많았을까? 드라마도 보다가 재미없으면 안 보고, 재미있던 영화는 또 보고, 평생 SF 영화는 안 보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유독 책에 대해서는 금기 사항이 많다. 책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다루는 법밖에 배우지 못하다보니, 남는 것은 두 가지 길 뿐이다. 책을 신성시하거나 책을 멀리하거나.
책읽기에 얼마나 많은 단계가 있을 수 있나. 좋아하는 분야만 읽는다던지, 가끔 정말 심심할 때 들춰본다던지, 편애하는 작가의 책만 사본다던지. 그런데 이 ‘안 돼’의 파티장에서는 그 정도로는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못한다. 책벌레가 아닌 이상은 책을 읽는다고 명함조차 내밀기 어렵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여기거나 죄책감마저 느낀다. 책을 정말 좋아하거나 용기가 있는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 ‘안 돼’의 세상에서는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책 읽기뿐이 아니다. 살면서 우리는 된다는 말보다 안 된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랐다. 남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필요한 ‘안 돼’도 분명 있다. 사람을 때리면 안 돼, 남을 우습게 보면 안 돼. 하지만 대부분의 ‘안 돼’는 이런 것들이다. 튀면 안 돼. 선생님 말씀에 반항하면 안 돼. 딴 데 눈 돌리면 안 돼. 지면 안 돼. 만만하게 보이면 안 돼. 분수에 넘치는 짓은 하면 안 돼.
오래 빨지 않은 흰 옷은 누렇게 변색되어 되돌리기 어렵듯, 오래 들러붙은 찌꺼기 같은 말은 사고 체계의 일부가 된다. 타인의 기준을 점검해볼 판단력도, 내 기준과 조화를 이룰 여유도 없다. 그래서 ‘안 돼’에 오래 짓눌린 사람은 나 자신이기 어렵다. ‘이러고 싶다’보다 ‘이래도 되나’가 언제나 앞서니까. 어떤 일을 할 때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눈알을 굴리다 보면 심장이 쿵쿵 뛴다. 불안에 잡아먹힌다.
처음 10가지 독자의 권리를 읽었을 때 소화제를 마신 듯 했다. 책 읽기에 대해 이렇게 자유롭게 허용해주는 선생님을 본 적이 없었다. 뭐든 괜찮아, 마음껏 읽으렴. 우리는 언제부터 책 읽기에서 ‘마음껏’을 잃어버린 걸까. 그토록 까다롭고 인색하게 굴었던 책 읽기 원칙 같은 걸 날려버리면, 책에 대해 보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데. 난 추리소설만 읽어. 난 재밌는 책만 읽어. 난 만화책이 제일 좋아.
책을 삶으로 옮겨 보니, 그간 삶이 늘 무겁고 불안했던 이유가 이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시작하면 안 되고 쉽게 그만 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모든 일이 벅차게 느껴졌다. 완전한 끝을 생각하면 시작이 어려웠고, 또 다른 시작을 생각하면 끝이 어려웠다.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재미없는 책은 덮어도 되고 건너뛰며 읽어도 되듯, 삶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권리.
하다가 말 권리.
아무거나 해볼 권리
그만뒀다가 다시 해볼 권리.
두루두루 해볼 권리.
재미있는 것을 할 권리.
의미를 발견하지 않을 권리.
내 식대로 바꿔 쓴 존재의 권리를 큰 소리로 읽어본다. 처졌던 어깨를 곧게 펴고 허리를 곧추세운다. 인생에서 ‘안 돼’라는 말을 하나씩 지우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넓은 초록빛 들판 같은 풍경이거나 시원하게 굽이치는 강물 같은 풍경이겠지. 어느 쪽이든 지금보다는 가볍고 선선할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