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마흔 살의 두부가 서른아홉 살의 안개향에게

1년 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by 안개향

불과 1년 전인데, 서른아홉의 네가 왜 이리 낯선지 모르겠다. 내가 아니라 잘 아는 동생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이랄까.


너에게 편지를 쓰기 전에 서른 살에 썼던 일기를 다시 보았어. 뱃속의 큰애와 함께 씩씩하게 회사를 다니던 너, 미술 전시회를 좋아하던 너, 아이 웃음과 울음에 어쩔 줄을 모르던 너, 새벽만 되면 밖으로 나가고만 싶던 너. 아이 낳고 몇 달 간 일기장이 텅 비어 있던 걸 보면,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후의 너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거겠지. 그래, 그때의 너는 반쯤은 스물의 나를 닮았고 또 반쯤은 지금 마흔의 나를 닮았어.



서른부터 서른아홉까지 10년 동안 아이를 낳고 키우고 회사를 그만 두고 새롭게 일을 시작했지. 번역서를 내기 시작했고 책을 두 권 쓰며 참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30대의 끝 무렵 찾아오던 이 무력감과 불안은 무엇이었을까?


정체를 몰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이전에 너를 붙들어주던 방법에 더 매달렸어. 더 많이 쓰고 더 열심히 일했어. 머리가 바빠지면 한동안 무기력과 불안이 끼어들 틈이 없어지니까. 일기조차 못 쓸 정도로 무기력한 날에는 글도 안 쓰냐며 더 심하게 자책했어. 멀리 지방에서라도 부르면 무리한 일정을 잡았고. 그게 나를 구원해줄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씩 새로운 일을 성취해나가면서,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 듯한 모양새로 살았던 것 같아. 하지만 옳은 선택이었는지 잘 모르겠어. 몸에서도 마음에서도 계속 힘이 빠졌거든. 염증이 얼굴, 등, 잇몸, 방광 등 온 몸을 돌아다녔어. 일이고 육아고 다 그만 두고 어디 틀어박혀서 3박 4일 잠만 잤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먹구름처럼 걷히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까지 심각해지자, 끝나지 않는 겨울에 갇힌 기분이었지. 개학은 미뤄지고 방학은 당겨지고 수시로 원격 수업 전환에 바깥 활동은 모두 중단되고....... 삶은 모두 아이들의 스케줄에 따라 재조정되고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지고 말았어.


집에 있다 보니 알겠더라. 몸이 갈 수 있는 만큼이 마음의 넓이가 된다는 걸. 안 가는 거랑 못 가는 건 완전히 다르잖아. 물리적으로 갈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드니 정신적인 공간도 덩달아 줄어들었어. 게다가 한번 줄어든 마음은 어쩌다 기회가 와도 다시 커지기 어려워. 괜찮으려고 버티는 데 이미 에너지를 다 써버렸으니까. 그러면 그런 자신이 또 미워져. 너는 왜 이 정도 밖에 못 해? 남들도 똑같은 상황에서 잘만 버텨내는데. 미움의 화살이 자신을 향하는데 나를 잘 돌봐줄 리가 없지.


서른아홉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거울을 보니, 그저 눕고만 싶은 여자가 벗어놓은 옷가지처럼 늘어져 있었어. 턱살과 등살이 두둑하게 붙은 몸을 웅크리고, 피부염으로 울긋불긋해진 얼굴을 한 채로.


돌이켜 생각해보면 몸이 자주 말했어. 아프다고, 피곤하다고, 슬프다고. 힘들면 쉬어갔어야 하는데. 슬프면 울었어야 하는데, 속이 안 좋으면 순한 걸 먹었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어. 더 정확하게는, 몸에 맞춰주다 보면 뒤치다꺼리할 게 많아지는 게 두려웠어. 내 뒤치다꺼리까지 언제 하고 있어. 애들 돌보고 집안일하고 마감 맞춰 일 마치기도 바쁜데.


그래서 이런 방법들을 썼지. 1번, 몸이 보내는 감정 신호를 꽁꽁 묶어 눌러둔다. 2번, 일기를 써서 애써 해석하고 이해해본다. 3번, 그도 아니면 남편에게 나 힘든 것 좀 알아달라고 떠넘긴다. 머리로 몸을 해결하려 들면 병이 된다는 걸 몰랐어. 남에게 해결해 달라 들면 싸움이 된다는 것도 몰랐고. 혹은 그조차 모른 척 묻어두었던 건지도 몰라. 나에게 에너지를 들이는 것도, 내가 나를 스스로 돌보는 것도 귀찮고 두려워서.


지금의 나는 그때의 너와 다르냐고? 많이 다르지는 않아.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는 않잖아. 여전히 목표를 위해서라면 몸이 뒷전이 되는 순간도 많고, 몸이 받은 충격을 머리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버릇도 남아 있어.


그래도 조금은, 조금은 달라졌어. 사람은 몸이라는 그릇에 세상을 담고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어떤 몸을 가지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세상의 모양이 달라지더라.


여전히 글을 쓰지만 글만 쓰지는 않아. 이해하고 누르려는 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그랬다고 받아들이는 일기를 써. 카페인은 끊고 미지근한 물을 많이 마셔. 하루 한 끼는 채소를 듬뿍 먹어. 브래지어를 풀었고 매일 아침 춤을 추러 가. 귤나무를 잘 키우려다 보니, 나도 물과 햇빛을 더 받으러 밖에 나가 걷게 돼. 더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수어를 배워. 예전보다 내가 조금 예뻐 보이고, 조금 편안해.


문장마다 계속 ‘조금’을 붙이게 되네. 그게 다냐고? 마녀체력이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처럼 극적이고 근사한 변화를 기대했다면 미안. 하지만 아주 조금만 각도를 틀어 걸으면, 어느 순간에는 원래 길에서 좀 멀어져 있더라. 그게 단 1도라도 말이야. 1도를 바꿔 걷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잖아. 그러니까 ‘애걔~’ 하지 말고 그만하면 잘 하고 있다고 해줘. 너도 오랫동안 참 듣고 싶던 말이었잖아. 누구도 아닌 바로 너에게서.



너는 참 오랫동안 ‘안개향’이었지. 나는 그 이름을 퍽 사랑했어. 네모진 책상에 콕 처박혀 판에 박힌 일상을 견디는 대신, 자유롭게 몸이 없는 채로 글 속에서 살고 싶었으니까. 그 이름으로 20년을 살고 나니, 내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졌어. 만질 수 있는 몸이 있지만 그렇다고 딱딱하게 굳어 있지는 않은 존재. 마치........ 두부 같은.


글쓰기 수업에서 갓 만든 ‘두부’를 상상하며 나는 마흔의 이름을 새로 얻은 기분이었어.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어. 고소하고 따끈한 몸으로 너를 꼭 안아주고 싶어. 그때의 네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이야. 마흔의 두부가, 서른아홉의 안개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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