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파란 시간의 신호등

볼 수 없는 시간의 보이지 않는 신호

by 안개향

스무 살 언저리부터 신호등을 유난히 좋아했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지금으로선 ‘좋아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네모난 보행자 신호 속 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을 보다 보면, 괜시리 간지럼을 태워보고 싶곤 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똑같은 자세만 취하고 있는 사람이 무방비로 흐트러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재미있었으니까. 공중에 걸린 동그란 차선 신호등도 좋아했다. 초록, 주황, 빨강의 동그라미가 차례로 밝아지면 서서히 멈추는 차의 행렬부터, 다시 초록불이 환해졌을 때 일제히 성마르게 부릉거리는 차의 소음까지. 그 단정하고도 단호한 요청이 차를 길들여 만들어내는 질서가 아름다웠다.


고개를 들어 신호등을 바라보다 보면 시선은 어느새 그 너머로 이동되었다. 너머에는 언제나 어김없이 다른 색의 하늘이 걸려 있었다. 오직 푸름뿐인 깨끗한 하늘, 새털구름이 흩어지는 여린 하늘, 회보랏빛의 축축한 하늘. 조금도 틀림이 없는 신호등과 달리, 하늘은 조금도 같은 적이 없었다. 그 중 가장 사랑했던 건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파란 시간’의 하늘이었다.


땅거미 질 무렵의 어슴푸레한 시간.
그림자는 빛나고, 땅은 어둡고, 하늘은 아직 밝은 시간.
온 세상이 파랗게 물드는 시간.
세상 모든 것들이 조용히 밤을 기다리는 시간.
(....) 그런 파란 시간을 정말 아세요?

- <파란 시간을 아세요?>, 안 에르보


<파란 시간을 아세요?>, 안 에르보 중


스무 살의 나는 쓰는 사람 이전에 걷는 사람이었다. 먹는 데는 별달리 관심이 없었고 대신 걸을 수 있는 한 걸었다. 얼굴만 동그랗고 몸은 비쩍 말랐던, 초콜릿 추파춥스처럼 생겼던 시절이었다. 한 손에는 작은 카메라 로모를 쥔 채, 주변을 면도칼처럼 얇게 도려내며 걸었다. 그때는 세상 천지가 걸을 곳이었고 세상 천지가 찍을 것이었다. 신호등도 언제나 뷰파인더 안에 들어가는 대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파란 시간에 루비처럼 박혀 있는 빨간 신호등을 유난히 사랑했다. 가끔은 내 주머니로 훔쳐와 반지로 만들어 새끼손가락에 끼워두고 싶었다. 어떤 날의 빨간 신호등은 다정했다. ‘이제는 하루가 저무는 시간이야. 집으로 가야지.’ 또 하루의 빨간 신호등은 냉정했다. ‘이건 네 길이 아니야. 돌아가.’ 따뜻한 안녕이었다가 완연한 거부였다가. 갈 곳을 몰라 마냥 걷기만 하던 스무 살, 차가운 거부에도 굴하지 않고 신호등을 찍었다. 필름 카메라라 찍고 싶은 만큼 찍을 수는 없어도,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는 있던 시절의 사치였다.


그런 시간은 오래 잊고 살았다. 퇴사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집 밖에서 파란 시간을 맞을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 일을 접은 건 아니었지만 파란 시간은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집에서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이거나, 아이들 만화 소리를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오랫동안 내게 시간의 기준은 몇 시 몇 분이나 오전 오후라기보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이냐 깨어 있는 시간이냐에 가까웠다.


그러니 파란 시간을 정말 아냐고 묻는다면, ‘안 적이 있었다’고 쓸쓸히 대답할 수밖에. 빨간 신호등 앞 멈춰 서 있어야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2019년 출판사와 첫 책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도, 신호등이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약속 장소에 먼저 가 있었고, 미팅 후 지하철에서 내린 나는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숨이 헉헉 차오르는 길 끝에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겨울도 봄도 아닌 흐릿한 3월 초의 파란 시간 끝에 초록 신호등이 걸려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냈다. 다시 초록 신호를 기다려 사진을 찍어두었다. 아직은 출간을 확신할 수 없던 그 날, 하늘에서 반짝이던 초록 신호등은 먼먼 별에서 보내준 비밀암호 같았다. 오래 빨간 불이었잖아. 이젠 초록불일 때도 되었지. 곧 신호가 바뀔 거야.


그리고 몇 주 뒤 출간계약서를 받으면서 핸드폰 속 초록 신호등을 다시 꺼내보았다. 이제는 멈추지 않고 걸을 일만 남았다고, 파란 시간을 다시 볼 날이 가까워졌다고 믿었다. 실제로 힘껏 썼고 힘껏 집을 나섰고 힘껏 걸었다. 책을 출간했고 강의가 늘었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냈고 아이들도 조금씩 자라났다. 다음 신호도 그 다음 신호도 차례로 초록불로 바뀔 것만 같았다.

3월 초 언덕길에서 만난 파란 시간의 초록 신호등



내 뒤로 검은 시간이 내려앉고


횡단보도 앞에 서면 언제나 초록불은 짧고 빨간불은 길다. 그러나 그런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초록불이 고장나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아 더 두려운 전염병 때문에, 모든 시간은 아이들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시동을 좀 걸까 싶으면 코로나가 번지며 이른 방학이 시작되었고, 또 무얼 좀 해볼까 싶으면 개학이 연기되었다. 그렇게 급브레이크를 걸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시동 거는 법을 잊은듯 했다. 주차장 한 구석에서 조용히 쉬고 싶다, 아니면 뻥 뚫린 도로를 제한 없이 질주하거나- 그 어느 쪽의 바람도 이뤄지지는 않았다.


앓고 난 후처럼 어스름히 해가 저물던, 코로나 첫 해의 가을날 저녁이었다. 퇴근하는 남편과 저녁 약속을 잡아 두 아이와 버스를 탔다. 여의도 환승센터에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다 무심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뻥 뚫린 8차선 도로의 지평선 위로 파란 시간이 내려앉고 있었다. 붉은 차들의 꼬리 위로 정갈하게 떠 있는 빨간 신호등. 금세 초록 불로 변할 것이 분명한.


나는 그만 양 손을 풀어버리고 그 자리에 우뚝 서고 싶었다. 너른 도로 한가운데 서서, 오직 그 순간 나 홀로 초록 불을 기다리고 싶었다. 나 걸을 수 있어, 달릴 수 있어, 스무 살 그때처럼 언제든 어디로든. 헉헉거리던 언덕길도 얼마든지 걸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딱 두 칸 남은 신호에서라도 출발해, 파란 시간 속을 가쁘게 뛰어보고 싶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27초뿐이었고, 도로 한가운데 덩그러니 선 내 양 손에는 두 아이의 손이 수갑처럼 채워져 있었다. 도로 반대편에 다다르니 차로에서 보이던 너른 하늘 대신 빌딩 숲 사이 조각하늘만이 남았다. 다음 신호를 기다려 횡단보도 한가운데에서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두고 싶었지만, 잡아당기는 아이들 손힘이 제법 세 이내 방향을 바꾸었다. 문득 뒤통수가 당기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파란 시간은 검은 시간과 자리를 바꾸는 중이었다. 차들은 오직 초록 불 밖에 모르는 듯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그런 파란 시간을 정말 아느냐고, 마지막까지 확인 도장 쾅쾅 찍듯 물어보는 그림책이 야속했다. 알았었다고, 안 적이 있었다고! 그 시간이 다시 내 것이 되는 때가 오기는 하는 거냐고 애꿎은 그림책에 화풀이를 하며. 파란 시간을 따라 저물고 싶은 어깨를 겨우 돌렸다.


아이들의 두 손 덕분에 초록불인 순간이 많았다. 엄마라는 유일무이한 자격증을 부여받아 앨리스의 토끼굴로 들어갈 수 있던 건 다 아이들 덕이었다. 그러나 또한 아이들의 두 손 때문에 빨간불인 순간이 많았다. 나는 지금 내가 빨간 불이어야 하는지 초록 불이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그만 울고 싶어졌다. 건너 온 자리에서는 도로 한가운데 걸린 신호등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내 뒤로 검은 시간이 내려앉고 신호등 불빛은 점점 더 선명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빨간 불인지 초록 불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가 통과하고 있던 건 그런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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