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함에 균열을 내는 선명한 감각을 위해
(기존 글을 수정하여 재발행합니다.)
어릴 때 인천 할아버지 댁은 작은, 아주 작은 구멍가게를 했다. 바깥쪽은 구멍가게, 안쪽은 단칸방 하나의 살림집.
볕이 거의 들지 않던 집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다른 장면들은 상한 필름처럼 흐릿하게 흘러가는데, 몇 장면만 팝업처럼 또렷하게 튀어나와 있다. 그 중 하나는 마룻바닥 밑 차곡차곡 쌓여 있던 납작하고 새카만 번개탄. 또 하나는 입구 쪽에 반짝이며 가지런히 놓여 있던 신호등 사탕. 번개탄처럼 어둡고 침침한 친가를 유일하게 환한 곳으로 만들어주던 것이 신호등 사탕이었다.
할아버지가 짐짓 꺼내주시던 사탕 하나는, 일곱 살 아이가 할아버지 댁에서 얻을 수 있는 제일 큰 기쁨이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살 수 있었으니, 아마 가게에서 가장 저렴한 간식 중 하나였을 것이다. 비닐을 벗기면 빨강 노랑 초록 세 가지 색 사탕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이름 그대로 삼색 신호등을 꼭 닮았다.
집 앞 보도블록에 쭈그리고 앉아 사탕 한 알을 입 안에서 굴렸다. 꼭 빨간색 사탕이 먼저, 노랑과 초록 순이었다. 방은 좁아도 옥상이나 다락에라도 가면 되는 외가와 달리, 친가에서는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온통 침이 고이게 하는 사탕의 달콤함만이 그 집의 그늘 같은 침묵을 견디게 했다.
신호등 사탕은 예쁘지만 설탕이 우둘투둘 붙어 있어 표면이 거칠었다. 사탕을 물고 놀다 보면 아무리 조심을 해도 사탕이 와르륵 함부로 입 안을 훑고 지나갔다. 아차 싶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입천장은 아릿하게 긁혀 있었다. 사탕이 완전히 매끈해질 때까지 아차는 여러 번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벌겋게 부어 쓸린 입천장과 혓바닥 위를 알사탕이 구슬처럼 굴러다녔다. 훈장처럼 자랑스레.
달콤함을 위해 치뤄야 할 대가가 있다는 걸 일곱 살짜리가 배우기 위해서는, 입천장 정도는 내어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쯤이야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MBTI로 한 사람의 전부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고2때 만난 단짝의 MBTI는 ENF*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세상만사 호기심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친구다. 학창 시절 친구는 지금보다 훨씬 강한 외향형이었고 나도 지금보다 더 강한 내향형이었다. 사람 만나는 걸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혼자 바깥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는 은근 쿵짝이 잘 맞았다. 둘이 여행도 가고 사진도 찍고 미술관도 다니면서 대학 시절과 20대 내내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결혼하고 첫째를 낳으며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어려워지면서, 우리의 길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조금 컸다 싶으니 갑작스레 터진 코로나 때문에 더더욱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들과 진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삶에 지쳤고, 친구는 가까운 사람과의 만남 없이 고립된 삶에 지쳤다. 우리라도 좀 만나자, 만나서 사는 이야기라도 좀 나누자- 겨우겨우 날짜를 맞춰 약속을 잡았다.
신난 친구는 약속 며칠 전부터 하고 싶은 걸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메이크업 받고 합정 쪽에 사진 찍으러 갈래? 전시회 보고 좋은 브런치 카페 갈까? 아니면 애프터눈 티 마시러 갈까? 평소라면 ‘좋아!’ 하며 쫓아 나갈 텐데, 어떤 제안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하아 다 귀찮다, 그냥 집에서 밥이나 시켜먹고 앉아서 수다나 떨면 좋겠다........
통화할 때마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 그토록 하소연을 했으면서, 집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밖으로 나가는 게 어색한 일이 되어버렸다. 뭐든 심드렁한 나 때문에 결국 우리는 집에서 만났다. 메이크업 한다고 화장품 잔뜩 챙겨온 친구에게 ‘넌 아직도 참 젊다, 좋겠다.’, 피식 웃을 뿐이었다. 12월 25일이 지난 크리스마스 트리의 꺼진 알전구처럼, 나는 도무지 반짝일 힘이 나지 않았다.
기꺼이 얻고 싶던 달콤함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알사탕> 속 동동이는 늘 혼자 있는 친구이다. 강아지 구슬이와 함께 다니지만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눈을 마주치는 법이 없다. 놀이터에서도 친구와 함께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 구슬 치는 편을 선택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동이의 조용한 세계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문방구에서 구슬을 사려다 우연히 발견한 알사탕을 먹으면, 사탕의 무늬와 똑같은 상대방의 마음 속 소리가 들려온다. 옆구리에 리모컨이 낀 거실 소파의, 늘 무기력하게 고개만 숙이고 있던 강아지 구슬이의, 잔소리 폭격을 퍼부어대는 아빠의, 돌아가신 그리운 할머니의, 그리고....... 늦가을 긴 여행을 떠나는 노란 은행잎들의 빛나는 목소리가.
사탕을 먹기 전 동동이의 얼굴에는 빛도 그늘도 없다. '혼자 노는 것도 재미있다'는 아이는 특별한 기쁨도 없고 고통에 무감하다.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이야기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동동이와 세계 사이에는 투명한 가림막이 세워져 있다. 그건 누가 세워준 것이 아니라, 동동이가 제 손으로 꼭꼭 힘주어 세운 가림막이다. 보지 않겠어, 느끼지 않겠어, 그러면 상처도 그리움도 없을 테니까.
알사탕은 동동이의 무감한 세계에 균열을 내며 등장한다. 생긴 것부터 체크무늬, 분홍색, 얼룩무늬, 죄다 알록달록하다. 민트맛이 강렬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귀가 뻥 뚫리거나, 아빠 수염처럼 표면이 까칠하기도 하다. 사탕은 가림막을 단숨에 찢어버리며 동동이를 세상으로 와락 끌어당기는 초대장이다. 네 주변에 얼마나 많은 맛과 소리와 대화와 존재가 머물고 있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라는.
입천장이 죄다 까지더라도 사탕을 굴리며 행복해하던 일곱 살짜리는 이제 없다. 입 안이 찌릿할 정도의 달콤함도 그닥이고 입천장이 까이는 것도 영 싫다. 두 눈 크게 떠지던 치킨과 초콜릿의 맛은 예전만 못하다. 미술관에 간다는 설레임도, 지하철 타고 사람들 사이 붐빌 생각에 걱정과 귀찮음으로 뒤덮인다. 마흔 되기 전 예쁜 사진 한 장 남기자는 친구의 제안에도, ‘원판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꾸며서 어디 갈 것도 아니고’ 하며 이내 심드렁해진다.
너무 기쁘고 싶지도 않고 너무 아프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좋게 말해 중용이지, 잘 뜯어보면 기쁠 용기도 아플 용기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와 세계 사이에 동동이처럼 가림막을 힘주어 세워 놓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꼴이라니. 상상 속에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던 무심하고 무감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고 말았어. 꼭 이럴 것만 같던, 그저 그런 마흔이 되고 말았어.......
그렇다고 모든 것이 알전구처럼 선명하게 빛나던 시절을 영영 잃어버리고 싶은 것만도 아니다. 내 안의 어린이는 종종 나타나, 알사탕을 달라고 칭얼댄다. 까짓것 좀 아픈 게 대수냐고, 아직 더 듣고 싶고 보고 싶고 맛보고 싶다고. 왜 그리 누우려고만 드냐고 발을 동동 구른다.
징징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막고 몸을 모로 돌리지만, 나도 안다. 저 소리를 언제까지나 모른 척 하며 살 수만은 없다는 걸. 귀를 막을수록 우는 소리는 더 커져만 간다는 걸.
그러나 퉁퉁 불어 무겁고 무뎌진 몸은 어떻게 일으켜야 하는 걸까. 동동이에게 우연히 찾아온 알사탕이 세상이라는 감각을 되찾아주었듯, 신호등 사탕이 내게도 그런 마법을 부려줄까. 무엇이든 선명하게 느끼고 선명하게 아프고 선명하게 기쁘던 시절을 되돌려 주었으면.
글을 쓰며 찾아보니 이제 신호등 사탕은 삼거리 사탕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편의점에서 400원에 판다고 한다. 30년도 넘는 시간 동안 100원에서 400원이 되었으니 값이 거의 안 오른 셈이다. 나이 마흔 먹고도 요령 없이 입천장이 다 까질까봐 겁이 난다. 입천장 덜 까지는 요령 정도는 30년 간 좀 익혔으면 싶은데.
입천장을 내어주더라도 얻고 싶던 달콤함이 있었다. 기꺼이 세상을 내게 초대하고 나도 세상의 초대장을 받아들이던 어린 날. 자꾸만 가림막을 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고만 하는 내게, 일부러라도 신호등 사탕을 먹이고 싶어졌다. 세 군데 편의점에서 못 찾았으니, 이제 네 번째 편의점을 찾아가볼까. 이제는 사탕을 건네줄 할아버지도 계시지 않은, 통증이든 달콤함이든 다시 한 번 선명하게 맛보고 싶은 푸석한 마흔 살 여자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