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쓴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야

내가 쓴 글이 나를 손가락질 할 때

by 안개향

비가 올 것 같이 먹구름이 잔뜩 낀 오후였다. 도시가 적국에 점령당하기 직전, 집을 버리고 가족들과 달아나고 있었다. 고요한 가운데 멀리 포탄 소리 경보 소리가 무거운 공기에 실려왔다. 외곽에 있는 대가족의 집으로 향하던 중 뜻하지 않게 아늑한 저택을 발견했다. 몰래 들어가 보니 넓고 아름답고 편안하다. 자주색 벨벳 소파며 잘 정돈되어 있는 벽난로며. 손길이 닿아 있는 걸 보니 버려진 집은 아니나, 그렇다고 살림집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살았다, 가족들은 활짝 웃으며 여기저기 앉거나 구경을 하고 창고에서 먹을 것을 찾아왔다. 집이 주는 안정감이 얼마만인지. 그런데 가족들과 달리 나 혼자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집주인이 언제고 돌아오지 않을까. 내쫓기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우리를 적국에 고발하지는 않을까.


전쟁의 두려움은 잊은 채 하하호호 웃고 있는 가족들을 계속 단속했다. 조용히 좀 해, 들키겠어, 누가 와서 쫓아내면 어떡하려고!!


벌떡 일어났을 때는 어슴프레한 새벽이었다. 19년 9월 첫 책을 나온 후 한 달 만에 꾼 꿈. 책이 나오기 1주일 전부터 거의 매일 꿈에 시달렸다. 전쟁 공습 직전 전운이 감도는 시기가 배경인 꿈이 대부분이었다. 자꾸만 비슷한 꿈을 꾸다 보니 무슨 의미가 있나보다 싶어 일기장을 새로이 꺼냈다.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써오긴 했지만, 목적 없는 일기를 매일 빠짐없이 쓴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날의 꿈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곳이 내게 맞지 않는 집이라고 생각한 걸까? 당시 나는 나 같은 사람이 책을 써도 될까 싶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림책으로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몇십년을 그림책만 읽어온 애호가도 아니고. 까발려 보면 생각보다 별 거 아니라는 사람이란 게 들통날 것만 같았다.


예상보다 책이 사랑받는다는 사실도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이런 집의 주인이 나일 리 없다는 낮은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그 집은 네 집이 아니야! 네가 그런 집에 머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누가 내게 자꾸 이런 말을 하나. 그건 다름 아닌 나다. 마음 속 전쟁은 매번 나 때문에 일어나고, 오지 않는 집주인도 나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재울 사람도 나뿐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나는 열심히 썼다. 안간힘을 다해 썼다. 내 주변에 있는 벽돌과 흙과 물과 돌을 하나하나 주워 집을 지었다. 설령 그 벽돌과 흙과 물과 돌 자체는 내 것이 아닐지언정, 내가 직접 지고 나르고 쌓은 집이다. 내가 쓴 책이고 내가 지은 집이다! 더 이상 전쟁통에 휘말리며 집주인이 오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싶지 않다. 내 책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책이 나온지 한 달 만에야, 나는 내 책을 넘겨볼 용기가 생겼다. (19.10.17 일기)


그날 쓴 일기는 내내 움츠러들어 있던 어깨를 활짝 펴주었다. 다음에 또 이런 꿈을 꾸면 “여기 내 집 맞아!”라고 큰 소리를 쳐주겠다고 결심했지만, 그 후로는 비슷한 꿈을 꾸지 않았다. 그날 일기를 쓰며 나는 구원받았다, 틀림없이.



나는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찾아내는, 모태 의미론자이다. 내 생일이 춘분 다음날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첫 날이 내 삶의 첫 날이라니!) 아이들 생일이 하나는 한여름 하나는 한겨울인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름과 겨울을 무척 싫어하는데, 아이들이 그 계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선물로 와주었구나!)


의식적으로 한 일이든 무의식적으로 발생한 일이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의미를 찾는다. 쓰기는 동굴 속에서 의미를 밝히는 가장 또렷한 등불이고.


그래서 꿈 일기로 나를 꼭 안아준 그날부터 더 열심히 일기를 썼다. 2년 동안 몰스킨 무지노트 5권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그날 있었던 일, 수업 아이디어, 아이들의 특이한 말 같은 소소한 내용들부터 원고의 초안, 새롭게 든 생각, 감정 탐구 등 다양한 내용들이 쓰였다. 식구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식탁 구석에 앉아 일기를 쓰는 시간은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나를 돌보는 틈이었다. 글쓰기는 나의 유일한 구원이라는, 스무 살 같은 믿음을 굳게 품은 채 살았다.




글 쓰는 손이 할퀴는 손이 될 때

그때 옳은 것이 지금도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코로나 2년차 여름이 되었을 때, 일기조차 쓸 수 없는 날이 찾아왔다. 확진자 급증으로 여름방학이 열흘이나 당겨졌다. 아이들과 한 달간 붙어 있을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비워둔 일주일이 날아가면서 이성의 끈이 한순간 끊어지고 말았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정말 아무 것도……. 열흘 후 아이들이 시가에 가서 없던 5일 동안 잠을 자다 일어나 먹고 조금 뒹굴다 다시 자기만을 반복했다.


일기조차 못 쓰겠다고 느끼면 못 쓰겠는 대로 좀 쉬면 되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다 지쳐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 니체조차도 '지쳤을 때에는 반성하는 것도, 되돌아보는 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나를 전쟁통으로 밀어 넣었던 낮은 목소리가 다시 스물스물 깨어났다. 일기도 못 쓰다니 너는 역시 한심한 인간이야. 나중에 쓸 게 없다고 고민하면 그건 다 네 탓이야. 너는 결코 작가로 살지는 못 할 거야. 일기조차 안 쓰면서 무슨 작가가 되겠다고…….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매일 글을 쓰기는 했지만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진짜 감정은 갈비뼈 아래쯤 작은 새의 무덤처럼 묻어두었다. 거짓말을 썼다는 건 아니다. 다만 다 쓰지는 못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이라 해도, 바닥까지 나를 보이는 게 벅찼다. 마구 꺼내둔 감정을 소화하고 해결하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한다. 왜 그런지 들여다봐야 하고 달래줘야 하고 부당한 일이었으면 화도 내야하고 슬펐으면 더 울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게 다 돌봄인데, 애들과 남편 돌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벅찼다. 나까지 언제 돌보고 있어. “그 길목에 머무르세요, 한사코.”라는 시인의 말* 같은 건 치워버리고, 속전속결로 결론을 내어버렸다. 그 사람도 사정이 있었을 거야, 원래 그런 사람인 거 너도 알잖아, 좋은 일만 계속 될 수는 없는 거지…….


대충 씹은 감정 덩어리를 목 뒤로 넘기려 들면 체할 게 뻔한데, 다 의미가 있답시고 나에게 참으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때의 일기들은 다 그런 식이었다.


오늘 독화살 같은 말들을 좀 들었다. 틀린 말까지는 아니지만 모욕적이었다. 울고 싶은데 울기 싫었다. 그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내일은 애들이 둘 다 학교를 가니, 펑펑 울고 아주 달콤한 빵을 먹어야지. 걸려 있는 말들은 빵과 함께 삼켜버려야지. (2021.12.28 일기)


하지만 빵도 말도 쉽게 삼켜지지는 않았다. 독화살 같은 말을 들었으면 무슨 말인지라도 적어두지. 모욕적이었으면 일기에라도 화를 내지. 울고 싶으면 울기라도 하지. 말이 막혀 있는 틈을 타 낮은 목소리가 내 볼펜을 뺏어 들었다. 너는 잘 했어? 이렇게까지 힘들어 할 일은 아니잖아. 네가 약해서 그래. 남들은 잘만 참는 데 너는 왜 그래?


그즈음의 내 일기는 강압적인 부모나 선생님 같았다. 울고 싶은 내가 5살 아이처럼 부담스러워서, 윽박지르고 냉정하게 돌아서는 어른. 내가 쓴 글이 내가 제일 되고 싶지 않았던 어른 노릇을 내게 하고 있었다. 차가운 뒷모습을 보기 싫어, 울지도 못하고 입술을 꼭 깨무는 아이처럼 주먹을 쥔 채 서 있었다.


쓰는 일은 긴 시간 동안 내게 구원이었다. 글은 네모진 책상에서 나를 먼먼 곳으로 옮겨주었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그래서 몸이 무어라 말하건 상관없이 더 쉼 없이 썼다.


하지만 나보다 앞서는 글쓰기, 쉽사리 마침표를 찍는 글쓰기는 위험했다. 글을 쓰는 손이 나를 할퀴는 손이 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손으로 더 이상 나를 할퀴지 않고 가만히 팔을 쓸어내리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더 걸렸다.


* 박연준, <쓰는 기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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