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결국, 사랑
2025년 12월, 산타의 선물이 도착했다.
어린이 딱지를 뗀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선물 앞에서만큼은 어김없이 동심으로 돌아간다.
택배사로부터 배송 예정 문자를 받은 순간부터 수령 후 박스를 뜯기까지, 고작 이틀.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잠들어 있던 동심을 다시 불러냈다. 혹여라도 선물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던 마음, 간절히 바라던 그것이 눈앞에 놓일 순간을 상상하며 설레던 기억들이 차례로 되살아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작고 순수했던 아이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 준 류귀복 작가님께 마음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채수아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2월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책이 있다. 저자의 북토크가 있다면 꼭 가보고 싶어지는 책 말이다.
채수아 작가의 책이 그랬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생각이 책장을 넘긴 뒤가 아니라 첫 문장부터 찾아왔다는 점이다.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녀가 되고 싶었다. 봉사하는 삶을 살며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 결혼을 준비했다.”
책을 펼친 지 10초 만에 가슴이 찌르르 아파왔다. 지난 내 삶의 가치관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더 테레사를 롤 모델로 삼고, 세상에 빛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저자의 북토크가 있다면 반드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를 만나야겠다는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저자는 비록 수녀가 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빛과 희망이 되어주는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의 깊은 속내까지도 들여다보고 품어 줄 수 있는 그런 교사 말이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아이들의 한숨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곁에 머물며 학생들을 살뜰히 챙기는 그런 어른이었으니까.
수녀의 꿈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졌을 뿐, 봉사하는 삶은 교사라는 이름으로 계속될 수 있었다.
그녀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는,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 퇴임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출근을 망설이던 여교사에게, 저자의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날부터 며칠간 교장실은 웃음과 행복이 깃든 임시 어린이집이 되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매일 세 시간씩 출퇴근하는 나에게 여교사가 느꼈을 감사와 감동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그런 부모 아래에서 보고 배운 삶의 태도가 사람을 사랑하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자라나지 않았을까.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못하는 건 못한다고 말하고 살걸. (중략)
우리 아버지는 왜 날 이렇게 키우셨을까? 좀 손해 보고 살아라. 사람답게 살아라. 비겁하지 마라. 그런 말들이 내 세포 속에 각인되어서 나도 모르게 그게 옳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살았던 거 같은데, 지금은 내가 너무 바보 같고 그렇다."
언제나 행복만 할 것 같던 그녀의 삶에도 고통이 스미는 때가 찾아온다.
결혼 후 시어머니의 지난한 삶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기로 한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현실은 고단했다. 고된 시집살이로 병원을 오가는 날이 잦아졌고, 그렇게 사랑하던 교실을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삶을 원망하기보다 이렇게 담담히 되묻는다.
"앞으로 나의 남은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그래도 지혜가 뭔지, 자기 사랑이 왜 소중한지를 깨달았으니, 예전보다는 잘 살아가지 않을까."
채수아 작가의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지만 사랑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회복과 치유의 시간을 건너온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이 언제나 아름답기만 한 감정은 아니라는 사실에 이르게 된다. 사랑에는 감내해야 할 희생과 고통이 있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속삭이듯 말한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새겨진 깊은 상처가 쉽게 아물 리는 없지만, 저자는 끝내 사랑을 말한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였기에, 다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인연의 굴곡 속에서도 그녀가 끝까지 놓지 않은 것은 사랑이었다.
그러니 이 책을
사랑 앞에서 멈춰 서고 싶은 순간에,
사람을 다시 믿어보고 싶을 때 펼쳐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