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나의 독서결산

책과 함께 보낸 한 해, 그리고 2026년

by 안개별


책은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다.

워낙에 시간에 쫓겨 사는지라, 욕심을 내고 짬을 내어 읽지 않으면 책과 영영 멀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2년쯤 되었을 것이다. '밀리의 서재'와 사랑에 빠지게 된 건.

밀리의 서재는 이북과 오디오북뿐 아니라 얼마 전부터 팟캐스트, 챗북, 웹소설 등을 론칭하여 구독자들의 독서에 대한 갈망을 다양한 방식으로 채워주고 있다.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읽는 즐거움을 여지없이 충족시켜 주는 아주 고마운 앱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가 있을 거라고 하는데 사실 잘 상상은 가지 않는다. 책을 보는 방식이 이미 다양한데 이보다 더 다채롭고 풍성해질 수 있을까 싶다.


하루 출퇴근 시간이 2시간을 훌쩍 넘어가는 나에게 오디오북은 그야말로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다. 메마른 땅을 적시는, 소중하고도 귀한 한 줄기의 비 말이다.

박정민 배우가 "넷플릭스 왜 보나, 성해나 작품 보면 되는데."라고 말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매일같이 달고 살던 넷플릭스나 티빙 대신 오디오북을 켜고 있는 나를 매일 발견한다.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디오북만 볼 것 같겠지만 그렇지만도 않았다. 뒷부분이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 늘어만 갔다. 그럼 아이들을 재운 뒤 슬그머니 빠져나와 이북으로 뒷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금세 새벽 두세 시가 된다. 영화보다 더 스펙터클하고,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인 서사가 담겨 있기에 책을 보는 일을 게을리할 수가 없다.


얼마 전 브런치 페르세우스 작가님께서 올린 2025년 독서 실적 글을 보고, 문득 나도 해보고 싶어 졌다(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시라).

회사에서는 매년 연말이 되면 한 해의 성과를 돌아보고 이듬해의 계획을 세운다. 이를 독서에도 적용해 보기로 했다. 2025년의 독서 실적을 확인하고, 2026년을 위한 독서 계획을 짜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밀리의 서재
2025 나의 밀리 어워즈


작년 한 해 동안 감명 깊게 보았던 책 순위를 나열해 본다면 위와 같다.

책을 볼 때는 주로 장편소설을 읽는 편이다. 촘촘히 짜인 서사와 반전 있는 결말을 선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금을 울리는 책이 좋다. 절절한 감성으로 심장이 쫀득하게 아파오는 이야기. 책 속 인물이 장면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듯한, 묘사가 살아 있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1.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다산책방)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여러 인물의 삶을 따라가는 장편소설이다. 개인의 삶과 역사가 교차하는 서사를 촘촘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 2024 야스나야 폴랴나 문학상(톨스토이 문학상) 수상


2.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이꽃님, 문학동네)

시간을 건너 전달되는 편지를 통해 두 인물의 삶이 이어지는 성장소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사가 전개된다.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


3. 사실은, 단 한 사람이면 되었다 (정해연, 북멘토)
관계와 선택의 순간을 다루는 장편소설. 인물의 심리와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 YES24 e 연재 공모전 대상, CJ ENM·카카오페이지 추미스 공모전 금상 수상



김주혜 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은 대하소설인지라 매일 읽었음에도 책을 덮기까지 3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의 집필에만 6년이 소요되었다니 3주라는 시간이 절대로 길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그녀의 작품을 읽으며 실제로 벌어졌을 그때의 일들을 상상하다 보니 여러 번 소름이 돋았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고, 오한이 든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걸 잃고도 사람을 살리고자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배려와 의리, 사랑의 이야기는 진한 인류애의 감동으로 남았다.



이꽃님 소설은 여타의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어휘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참으로 값지고 귀하다. 어느 구절 하나 버릴 곳이 없다. '완벽하다'는 말 말고는, 이 작품을 설명할 다른 수식어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 각종 서점 베스트셀러 진열장 가장 상단에 그녀의 작품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할 것이다.

작년 여름에 출간된 <내가 없던 어느 밤에> 역시 숨 가쁘게 읽었다. 사전예약을 하고 책을 받아 들기까지의 시간마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책을 읽는 동안 문장 하나하나 모두 마음에 아로새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작품은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였다. 어떤 이야기는 그저 스치듯 지나가고, 어떤 이야기는 머리와 가슴에 오랫동안 남는다. 더 오래,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어 자꾸만 꺼내보게 된다. 이 소설은 분명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2025년 나만의 베스트셀러로 픽했다.



정해연 소설은 뭐랄까, 책장을 덮고 나면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듯한 기분이 든다. 영화는 시간을 내야 하고 볼 때마다 비용을 들여야 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한 번 구입해 두면 여러 번 다시 꺼내 읽을 수 있다. 어쩌면 영화보다 그녀의 책을 구매하는 일이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짜놓은 플롯들을 따라가다 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온다. 그녀의 작품 중 <유괴의 날>은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일본에서는 리메이크되어 아사히 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홍학의 자리>를 시작으로 정해연 작가의 작품에 흠뻑 빠져 대부분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하나 꼽자면 <사실은, 단 한 사람이면 되었다>다.

저자가 내 인생에 잠시 다녀라도 간 듯, 나의 청소년기와 너무도 닮은 삶을 그려냈다. 아니, 닮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흡사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과거의 장면들이 오버랩되어 시야가 몇 번이고 흐려졌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이 이야기가 나를 아프게 하는 동시에 위로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면식도 없는 저자에게서 귀한 선물이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정해연 작가의 작품들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독서 결산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길었다. 더 먼 산으로 가 버리기 전에 다시 돌아와 작년 한 해 동안의 독서 결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 2025년 안개별의 밀리 생활 요약 >

285일에 걸쳐 (365일 중 78%)

28,607분 동안 (하루 평균 78분)

204권의 책을 읽었다. (월평균 7권)


내가 작년 한 해 동안 밀리의 서재에서 읽은 책이 204권이라고 한다.

(여기서 10% 정도는 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 듣다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다른 책으로 갈아타는 편이다.)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겠지만, 필자에게도 꽤 놀라운 숫자다. 스스로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고 생각해 왔는데, 독서 기록지를 받아 들고 나니 이름 모를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어깨가 봉긋, 하늘 높은 곳으로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달을 꼽아 보니 작년 9월이었다. 단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책을 펼쳤고, 그 한 달 동안 일곱 권을 완독했다. 독서결산을 통해 확인하고 나서야 실감한다. '나 진짜 열심히 읽었구나'라고. 기록이 남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지 못했을 숫자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늘 책을 곁에 두었다.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자꾸만 쌓여갈수록 책과 더 멀어질 것 같아 의식적으로 더 꼭 끌어안았다. 한 번 손에서 놓아버리면 절벽 아래로 깊숙이 떨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끌어올리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과 오랜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예스24
2025 연말 결산


예스24에서도 한 해 동안의 독서 결산을 확인할 수 있기는 하다. 다만 분석 가능한 데이터는 다소 얕은 수준. 그럼에도 의미를 부여해 볼 만한 기록 2가지를 가져왔다.

지난 1년간 책을 구매하는 데 쓴 비용은 약 56만 원이었다. 체감했던 것보다 꽤 높은 금액이었다. 첫째가 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독서논술 수업을 듣고 있어 분기마다 네다섯 권의 책을 구매해야 하는데, 이를 연간으로 계산하면 약 20만 원 정도다. 여기에 아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추가로 15~20만 원가량을 썼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계산해 보면, 순수하게 나를 위해 구매한 책은 대략 16~20만 원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고 싶은 책은 늘 많지만, 아쉽게도 쓸 수 있는 재원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참고 또 참거나,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고르고 골라 한두 권만 사게 된다. 그래서 밀리의 서재를 더 자주 이용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돌아보니 2025년은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을 비교적 성실하게 지켜낸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불필요하게 새어 나가는 비용을 조금 더 모아, 나를 위한 책을 더 많이 사고 읽는 해로 만들어 보고 싶다. 그 외에는 이북으로 매주 한 권 이상을 읽고, 오디오북은 지금처럼 출퇴근길마다 빠짐없이 들어볼 계획이다. 대단할 것도 거창할 것도 없는 목표지만, 늘 책을 곁에 두고 살아가겠다는 다짐만은 분명하다.


소설을 유난히 좋아하다 보니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창작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늘 크다. 그러나 아직은 그만한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대신 책을 읽고 기록하고 필사하며, 그 과정 속에서 얻는 힘으로 창작을 이어가고자 한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며 정진해 나갈 생각이다.

언젠가 소설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기를, 나직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