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터지게 싸워보고 나서야

by 안개별


남편과 나, 우리의 만남은 일사천리로 진척되었다.

우린 서로를 운명이라고 믿었다. 남편은 나를 만난 지 두 번 만에 '반드시 이 여자와 결혼할 거야'라고 생각했고, 나는 세 번 만에 '이 남자와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린 겨우 통성명이나 하던 사이였지만, 남편은 두 번째 만남에 나를 자신의 본가로 데려가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님께서 오랫동안 병환 중이셔서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남편의 본가로 향하던 찰나, 갑작스레 함박눈이 쏟아지는 바람에 아쉬움을 안고 차를 돌려야 했지만 말이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늘 신중하던 내가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다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사랑이었다. 사랑, 그것이 나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판단력까지 앗아가 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10개월간 연애를 했고 결혼에 성공했다. 최소한 사계절을 함께 보낸 후 결혼을 결정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우려 속에서도 아무렴 괜찮았다. 내 선택에 확신이 있었고 책임질 자신 또한 있었다.


연애하던 시절, 그의 집이 아주 멀리 있었기에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 그 덕에 함께하는 날이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살림을 합쳤다. 결혼 전부터 함께 살아보며 서로의 스타일을 알아갔고, 작은 위기들을 함께 넘기며 확신이 쌓였다.

사랑은 첫눈에 반해 무턱대고 시작할 수 있지만, 신뢰를 쌓아 가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이 모여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싸움이 없던 건 아니었다. 잔잔한 수면 아래에도 물살이 끊임없이 흐르듯, 우리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존재했다. 가정의 권력은 결국 아내에게 돌아오기 마련이지만, 오랜 시간 홀로 자취했던 남자의 자존심이 이를 쉽게 내어줄 리 없었다.

결혼한 부부가 가장 많이 싸우는 게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치약 짜는 방식이다. 앞부분부터 눌러쓰는 나와, 뒷부분부터 밀어 올리는 남편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우리의 첫 번째 다툼이 시작되었다. 겨우 치약 하나였다. 그것이 큰 전쟁의 서막이 될 줄이야.


이후로도 신경전은 이어졌다. 양말을 뒤집어 벗은 채 빨래통에 넣는 것, 화장실 휴지를 다 쓰고도 꽂아 놓지 않는 것, 신발을 가지런히 놓지 않는 것. 작은 것들이 쌓이고, 쌓이고, 또 쌓였다. 그럼에도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서, 혹은 그날 안에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인연이라 믿었던 덕이었을까. 웬만하면 싸우지 않으려 잘 참아왔다. 그랬던 우리였지만 첫째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내 몸도, 마음도, 감정도 정상일 수가 없었다. 별일 아닌 것에 날을 세우기도 했고, 그냥 지나쳐도 될 일에 목숨을 걸고 물어뜯는 나를 발견했다. 매번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 보지만 그때뿐이었다. 작심삼일, 그때의 나에게 꼭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그러다 큰 사달이 났다. 유아차가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차에 쉽게 싣고 다니려고 구매한 절충형 유아차였다. 구매했으니 당연히 접는 법도 알겠지 싶어 남편에게 맡겼는데, 이 사람이 땀만 뻘뻘 흘리고 있는 것이다. 난 그런 남편을 향해 비아냥대며 투덜거렸다. 유아차 하나 접는 것도 못하느냐고.

우리끼리였다면 그냥 웃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함께 있던 아가씨(남편의 여동생)가 그 말을 다 듣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해버린 남편은 욱해서 크게 화를 냈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더 크게 분노를 표출했다. 불씨 하나가 삽시간에 산불처럼 커져버렸다.


그날의 싸움은 차라리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겠다 싶다. 그날의 상황을 묘사하기조차 어렵다. 과거의 모든 일들까지 끄집어내며 우린 서로에게 가장 날카로운 말을 골라 던졌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일이 아니었다. 치약 짜는 일만큼이나 사소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토록 크게 느껴졌을까. 아마도 어린아이를 키우느라 둘 다 한껏 예민해져 있었던 탓이었을 터였다.

서로에게 너무 크게 실망해 버린 나머지 우리는 이혼을 입에 올렸다. 그러면서도 둘 다 아이를 데려가야겠다며 옥신각신했다. 그리고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서로를 안아주며 화해했다.
우리가 이혼까지 갈 뻔한 이유가 겨우 유아차였다니. 그 찰나의 분노를 참지 못했더라면, 너무도 귀엽고 예쁜 둘째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 떠올릴수록 아찔하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그야말로 피가 터지게 싸워봤기에, 우리는 서로의 바닥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닥에 도달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이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는 걸. 그렇기에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작고도 큰 싸움을 통해 서로의 발작 버튼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는 싸움의 직전까지 간 일은 있어도 정작 싸울 일은 없었다. 그 버튼만 건드리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결혼 10년 차가 넘어서자 싸움은 일절 사라졌다. 아이들이 제법 자라 네 개의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으니, 화가 나도 괜찮은 부모인 척 웃어넘기게 되었고, 그렇게 다툴 일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 건 대단한 사랑의 맹세가 아니라 사소하고 유치했던 싸움들이었다. 치약 하나, 양말 한 짝, 유아차 하나에 울고 웃으며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서로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기보다는 각자의 모양을 인정하고 함께 맞춰가는 법을 배웠다. 여전히 완벽한 부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화가 났다고 등을 돌리기보다, 배려와 화합을 위해 품을 내어줄 줄은 아는 사이가 되었다.


첫째를 낳으며 이혼의 문턱까지 다다랐던 우리가, 둘째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싸움 없는 부부가 되었다니. 아이러니하면서도 감사한 일이다. 그때의 전쟁 같은 하루가 없었다면, 평범한 오늘이 이토록 고맙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결혼은 운명으로 시작되었을지 몰라도, 지금껏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월요일 연재
이전 17화흔들려도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