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집이 팔렸다.
오랜 염원이 이루어졌다. 집을 내놓은 지 꼭 2년 반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처음엔 집이 커서 안 팔리나 싶었다. 시간이 흐르자 너무 많은 사람에게 보여준 탓에 운이 닳아버린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들었다. 인테리어가 괜찮은 편이었던지라 사진만 보고 기대에 부풀어 찾아오는 사람들은 정말 많았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단 구매의사를 밝혀야 가격 네고라도 들어갈 테지만 일절 없었다. 그럼 높은 가격 탓이려나.
그렇다고 서둘러 팔아치울 수는 없었다. 아파트 주변엔 호재가 두 개나 있었고, 우리에겐 급매로 내놓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우리 집의 가치를 알아봐 줄 사람을,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는 사실을 까먹을 때쯤 집을 산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푸근한 인상의 매수자는 그래 보이지 않았으나, 굉장히 까다롭고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부동산 전화를 받아야 했다. 이거 확인해 달라, 저거 확인해 달라, 집은 또 얼마나 보러 오던지. 이러쿵저러쿵, 재고 따지는 통에 피로감은 물려왔지만, 다행스럽게도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감정이었다. 첫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사 왔고, 이 집에서 둘째가 태어났다. 이 집 거실에서 뒤집기를 했고, 복도에서 첫걸음을 뗐다. 남편과 내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끼고 아껴, 우리 손으로 처음 마련한 보금자리였다.
나의 첫 번째 집. 포근하고 안락했던, 우리만의 집.
남편은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미적 감각도, 디자인과 관련된 직업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아내에게 그럴싸한 집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매일 밤 검색하고 공부하고, 업체에 전화하고 미팅을 다녔다. 작업 일정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가성비 인테리어를 완성해 냈다.
평생에 한 번 받을까 말까 한, 남편의 정성이 구석구석 배어 있는 선물이었다. 그런 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한쪽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한동안 마음이 헛헛해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는 도중 부동산 사장님이 물었다.
"그럼 어디로 이사 가는 거예요?"
"시골로 가게 될 것 같아요."
나의 대답에 매수자도, 부동산 사장님들도 작은 탄식을 흘렸다. 안타까움을 머금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뭐,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신랑이랑 떨어져 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그건 맞아. 나도 남편 없이는 못 살 것 같아."
"저도 그래요. 우리 신랑이 다 해주거든요. 신랑이랑 떨어져 사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어요."
내 대답에 이은 아주머니들의 화기애애한 대화였다.
"결정 아주 잘했어요. 지방이면 어때요, 함께라면 뭐든 헤쳐나갈 수 있는 거지."
초로의 얼굴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온 세월만큼 깊어진 눈가의 주름들이 자글자글 구겨졌다. 그 표정들이 어찌나 다정하던지,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오는 길,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집을 팔았으니 시원할 줄 알았는데 허전함이 먼저 찾아왔다. 기쁨과 아쉬움이 뒤엉킨 채로, 멍하니 차에 올랐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계약 잘했어? 나 20분 후면 도착하는데, 오늘 치킨 한 마리 시킬까?"
"응!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전화를 끊고 나니, 아까의 먹먹함이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치킨 한 마리가 뭐라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말만 앞서는 사람이 아니라 좋았고, 아내의 감정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려 주었다.
언제나 그랬다. 남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졌다. 오늘 치킨 시킬까, 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정말이지 별것 아닌 말인데, 유독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이랑 함께라면 어디든 괜찮을 것이다. 수도권이면 어떻고, 지방이면 어떤가. 우리 넷이 함께라면 어디든 완성된 곳인 것을.
요즘은 집과 이별하는 중이다. 거실을 지나며 괜히 한 번 더 눈에 담고,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멈춰 돌아보고, 욕실 문을 조심스레 닫으며 속으로 인사를 건넨다. 아직 두 달이 넘는 시간이 남아 있는데도 말이다.
이 집을 떠난다는 게 이렇게 자꾸 마음에 걸리는 건, 아마 이 공간이 우리 가족의 첫 챕터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툴고 가난했지만, 가장 뜨거웠던 시절. 그 모든 날들이 이 집 곳곳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러니 이별이 쉬울 리 없겠지.
그래도 괜찮다. 충분히 사랑했고, 충분히 받았다. 잘 있어라, 우리 집. 새로 들어올 가족들과도 부디 오래 연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수도권이면 어떻고, 지방이면 어떤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집이 되는 것을.
그러니 괜한 걱정은 접어 두고, 오늘은 일단 치킨이나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