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출처 없는 책임감을 왜 주나요

by 앵두

사 남매와 부모님을 합쳐 도합 6명. 대한민국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사람 많은 가족 안에서 자란 나는 나이를 먹고 보니 세 명의 동생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유교 문화 속 출처 없는 책임감을 떠맡은 장녀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수련회에서 학생들을 진두지휘하던 매서운 교관 같은 언니, 누나가 되는 것에는 극명히 반대하는 타입인지라 부모님의 잔소리와 강요에 "NO!"를 수없이 외치며 늘 모범의 테두리를 폴짝 뛰어넘어 위법 행위가 아닌 이상 하고 싶은 일들을 맘대로 하고 다녔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우리 집에서 첫 번째로 태어난 딸이었을 뿐이었는데 왜 나를 '사람 신영주'로 봐주지 않고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장녀'로만 바라볼까. 우리 사 남매 각각의 인생이 빽빽하게 세워진 도미노처럼 첫 타자가 미끄러지면 뒤에 서있는 모두가 우르르 무너져버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주변 한정일 수도 있지만, 왜 어른들은 남매들의 인생 꼭지를 전부 첫째 딸에게 달린 것처럼 무조건 잘 되어야 한다고만 부담을 안겨주는지 매번 의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종종 혼자 끼니를 준비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넌 이기적이야." 동생들 밥을 내가 다 차리고 오순도순 하하호호 같이 먹지 않는다는 일상에 불만을 가지고 계시다는 뜻. 내가 동생이 세 명이었을 때쯤의 나이가 이제 막내가 겪고 있는 나이인데, 가끔 부모님이 우리를 각각 다른 개체로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어린 나이였을 때는 동생이 많지 않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난 장녀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데 어째서 나는 모든 걸 스스로 알아채야 하고 받기보다 주기만 해야 하나요. 그래서인지 더 강한 생존력을 얻은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억울한 마음은 도대체 누가 없애줄까.



이것도 일종의 어린 나이의 내가 복에 겨워 투정 부리는 걸까 싶다.


그렇지만 그냥 나는 이랬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냥 이렇게 느꼈었다고 몇 자 적어보고 싶었답니다. 모든 대한민국 장녀들이 행복하길 바라요. 자신을 옭아매는 장녀로서의 모든 책임감과 압박으로부터 조금은 어제보다 더 자유로워 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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