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놈
루오 손가락 끝에 매달려서 달랑거리는 차 키를 본 순간 명원은 그들이 함께한 지난 몇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런 건 주로 큰 사고로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던데. 눈 앞이 서뻘개지도록 화가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도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놈인가. 어떻게 저렇게 제멋대로일 수 있지?
“안 돼!”
명원이 먼저 싸늘하게 잘랐고, 거의 동시에 수민이 거절했다. 두 사람의 매몰찬 반대의사가 지하주차장 안을 우렁우렁 퍼졌다. 루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여기서 강원도까지 두시간 반이면 충분해. 강원도에 데려다 주고 돌아와도 내 스케줄엔 지장없어. 형은 오래간만에 만난 사촌을 아무 보호장치도 없이 혼자 강원도로 보낼 수 있어? 게다가 나 때문에 가발에 변장까지 하고 다녀야 하는데? 형도 가발 써봐서 알잖아. 이게 되게 불편해. 건강에도 안좋아. 두피에 땀차면 탈모온다고.”
명원은 루오가 잡고 있는 수민의 손목을 노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첫째, 이럴 생각이었으면 왜 변장을 하게 한거야? 둘째, 네가 같이 가는 게 일을 크게 만든다는 생각은 못 하냐? 셋째, 운전면허 따고 제대로 시내 운전 해 본 적도 없잖아. 그런데 강원도까지 가겠다고? 제정신이야?”
“차 키를 보는 순간 갑자기 생각났어. 그리고 뭐든 처음은 있는 거잖아. 형은 너무 꼬치꼬치 따져서 문제야. 사람이 매번 그렇게 꽉꽉 막혀서 어떻게 사냐? 그럼 어떻게 해? 수민이 혼자 보내? 얘 한국 온지 이제 겨우 이틀쨰야.”
“차라리 연석형한테 부탁해. 그게 맞아.”
“그건 갑질이지. 연석형이 내 사촌까지 케어할 의무는 없잖아.”
“그럼 너희 어머니한테 부탁드려.”
“수민이가 싫다잖아.”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수민은 귀가 먹먹했다. 지하주차장은 싸우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다. 루오의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가서 수민의 오른쪽 팔은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이 저릿하다.
-피곤해.
이 두 사람은 왜 자기 일도 아닌 일에 이토록 열정적으로 싸워댈까? 한국땅을 밟은 이후로 무엇 하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눈치가 너무 없나? 아니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을 내가 몰라서 헤매는 건가? 현우에게 가는 길에 걸리적 거리는 게 이렇게 많을 줄이야. 물론 가장 큰 장애물은 루오였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이 사촌은 제멋대로 굴면서도 그게 맞다고 믿는 사춘기 소년이었다. 이런 사람을 지칭하던 단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수민은 머리를 이리 저리 굴리다 마침내 기억해냈다. 정말 드물게 엄마가 친아빠를 말할 때 쓰던 단어였다. 철. 부. 지.
수민은 힘을 줘서 잡힌 손목을 비틀었다. 잡힌 부위가 시뻘개졌다.
“두 사람 다 그만해요. 나 혼자 갈꺼야.”
“수민아. 너 혼자선 안 돼. 너 거기 지라도 잘 모르잖아. 강원도는 말이야. 서울이랑 다르다고. 지하철도 없어.”
“괜찮아.”
“차로 가면 생각보다 금방이야. 차가 편해. 나랑 가면 오늘 밤 안에 네가 찾는 사람을 만나게 될거야. 누군지는 모르지만 빨리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너 발목은? 그 발목으로는 차 갈아타고 도보 이동하고 그러는게 쉽지 않을걸.”
“괜찮아.”
“한국에선 내가 네 보호자야. 우린 사촌이잖아. 거기다 넌 나 떄문에 다쳤고. 내 양심에 널 혼자 가게 하는 건 안돼. 너 데려다 주고 나는 금방 오면 돼. 내가 싫으면 엄마한테 부탁하자. 어때?”
“괜찮대두.”
루오의 목소리는 애절했다. 수민은 고장난 인형처럼 아픈 손목을 매만지며‘괜찮다’는 말만 계속했다. 누구 고집이 더 센가 대결하는 것 같았다. 이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명원은 루오가 들고 있는 수민의 가방을 잡았다. 수민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루오가 눈치빠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명원의 손을 피했다. 명원은 눈을 부릅떴다. 한 대 칠 기세였다. 수민이 둘 사이를 가르며 막아섰다.
“비켜봐요. 이 자식 제정신 좀 차리게 해야 해.”
“그건 나중에,”
수민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루오가 그녀의 손을 잡아채서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버티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었다. 수민은 엉겹결에 루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발목에서부터 통증이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수민이 앗, 하고 비명을 질렀다. 수민이 주저앉자 루오는 재빠르게 수민을 들어올렸다. 놀라운 힘이었다. 골격이 날씬해서 만만하게 봤는데 어디에서 이런 힘을 내는 거지? 아니, 지금 감탄하고 있을때가 아니다. 명원의 말이 맞다. 이 자식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수민은 소리를 지르며 버둥거렸다.
“이거 놔!”
“이루오!”
성난 명원의 고함소리가 지하 주차장에 울렸다. 명원이 뒤쫓아 와 루오를 잡자 루오는 형은 돌아가라며 소리질렀다. 세 사람의 목소리가 뒤엉켰다. 놓으라는 수민과 미친 놈이라고 욕하는 명원과 형은 꺼지라는 루오까지. 셋은 한 덩어리가 되어 꿈틀거렸다. 마치 놀이터에서 그네를 먼저 타겠다고 싸우는 어린애들 같았다. 이러다 경비원들이 달려오겠다 싶은 그 순간, 주차장 입구에서 빨간 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경고였다.
셋의 고개가 한꺼번에 홱 돌아갔다. 칡넝쿨처럼 서로 엉켜있는 팔다리는 움직임을 멈췄다. 숨을 죽이고 주차장 입구를 보는데 흰색 세단 한 대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명원이 번호판을 보더니 입술을 달싹거리며 속삭였다.
“사장님 차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명원은 침을 꼴깍 삼키며 차를 눈으로 쫓는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루오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 웃었다. 그 모습이 천진한 악마 같았다. 명원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아니나다를까 루오는 세상 느긋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잘됐네. 이렇게 된 거 사장님한테 가서 허락받으면 되겠네.”
돌았네. 돌았어. 허락을 받겠다니. 누가 허락을 해 준다고? 명원은 수민을 보았다. 수민은 눈치를 보며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이 아가씨는 피해자인지 화근덩어리인지 가늠이 안 된다. 지금 보니 자신의 손이 수민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아까 셋이 몸씨름을 할 때 자기도 모르게 손을 댄 모양이다. 하얗고 가느다란 발목과 힘을 줘서 붉어진 자신의 손을 보며 명원은 알 수 없는 감정이 폭팔하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엉망으로 흘러가게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다. 루오가 다시 물었다.
“아니면 이대로 그냥 수민이 데리고 강원도까지 버스타고 갈까? 대중교통 이용하지 뭐.”
미친 새끼. 명원이 어떻게 나올지 다 알면서 하는 말이다. 명원은 차라리 루오를 한 대 치고 자신이 수민을 데리고 오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수민을 옆에 둔 루오는 방향을 잃은 조타수나 마찬가지였다. 저런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놈에게 맡겨 둬선 안 될 것 같았다.
흰색 세단이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명원은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움직여. 이 새끼야. 일 크게 만들지 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루오는 차 키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멀지 않은 곳에 은회색 suv 전조등이 삐삑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켜졌다. 그들은 민첩하게 차에 올랐다. 그리고 바로 몸을 숙였다.
# 동상이몽
빵빵!
그들이 타고 있는 차를 겨냥한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일곱 번째다. 루오는 그게 승리의 팡파레 소리인 양 창밖으로 즐겁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다행이 완전히 정신이 나간 건 아닌지 선글라스에 모자는 눌러썼다.
“지금 너무 왼쪽으로 치우쳤잖아. 옆 차에서 경고 하는거 안 들려?”
기겁한 명원이 핸들을 잡고 조정했다. 루오는 오! 하는 짧은 탄성을 지르더니 바로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형은 길이나 잘 봐줘. 내가 아직은 네비랑 운전이랑 동시에 하는게 힘들단 말이야. 다행인 줄 알아. 내가 능숙했으면 형은 버리고 갔을 거야.”
명원이 이렇게 차에 같이 타고 있는 건 루오가 차선 변경을 제대로 못하고 차량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루오는 어떻게든 명원을 내려주려고 했으나 그럴 능력이 없었다. 명원도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명원은 혁민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든 잘 둘러쳐달라고 부탁했다. 혁민은 난색을 표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남은 멤버들이 그들의 부재를 덮는 동안 기필코 오늘 밤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일이 커지지 않는다.
“안되겠다. 다음번 신호대기에 서면 나랑 자리 바꿔. 내가 운전해야겠어.”
“싫어. 형이 운전하면 회사로 돌아갈지 누가 알아?”
떼쓰는 것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생각이란 걸 한다. 명원은 이미 늦었다고 한마디 하려다 참았다. 그들이 탄 차는 이제 중부 고속도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서쪽으로 기운 해가 차장을 통과해 검은 시트 위로 열기를 남겼다. 그들은 태양을 등지고 동쪽으로 나아갔다. 명원은 몸을 돌려 수민을 보았다. 그녀는 가발을 벗어 버리고 한 손으로 자신의 손목을 움켜쥔 채 멍하니 창밖을 응시했다. 부드럼게 넘겨진 짧은 머리카락 덕분에 작은 귀와 완만한 턱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수민의 주위로 반짝거리는 빛의 조각같은 먼지가 우아하게 떠 다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보통 여자라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릴 일인데도 수민은 침묵을 유지했다. 놀라운 인내심이었다. 눈의 여왕. 명원은 다시 그 단어를 떠올렸다. 눈의 여왕은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지? 울자마자 눈물은 얼음이 되어 부서져버릴테니까.
“형. 수민이 그만 봐.”
루오의 말에 수민이 고개를 돌렸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명원은 겸연쩍은 기분이 들었지만 티 내지 않으려 눈을 피하지 않았다. 수민의 까만 눈동자가 명원의 눈과 코, 입술을 한바퀴 흝더니 안쓰럽다는 듯 가늘어졌다. 명원은 자신의 상태가 꽤 좋지않다는 걸 인지했다. 연습복 차림에 조명을 받지 못한 피부는 창백했다. 거기다 아까 그 난장판을 벌이며 머리를 쥐어 뜯어서 그런지 머리가 잔뜩 헝크러져 있었다. 개인적으로 여자와 이렇게 소탈한 모습으로 있는 것도 오래간만이다. 본의아니게.
“괜찮은지 확인한 것 뿐이야.”
그 말에 수민이 얼굴을 찡그렸다. 햇볕에 반사된 눈썹이 노란 색을 띄고 있었다. 명원은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때 앞좌석 시트 사이로 수민이 모자를 내밀었다. 자신이 쓰고 있던 검은 모자였다.
“써요. 그쪽이 더 필요한 거 같으니까.”
잠시의 시선교환으로 괜찮은지 확인한 사람은 명원만이 아니었다. 수민이 보기에 명원이 훨씬 피폐했다. 그에게 이 철부지는 버거워보였다. 루오를 사랑한다는 건 양치는 소년이 되어 밤낮 양무리를 지키느라 깨어있는 기분일 것이다. 수 틀리면 무리를 이탈해버리는 고약한 성미의 양 한 마리가 그의 사랑이라니. 수민의 머릿속에 기다란 막대기에 기대 쪽잠을 자는 서글픈 명원이 그려졌다. 수민은 진심으로 명원에게 마음이 쓰였다. 사랑의 모습은 다르지만 명원과 수민이 서 있는 위치는 비슷해보였다.
명원이 모자를 받아 눌러 썼다. 루오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 모습이 스웨덴에 있는 수호와 너무 비슷해서 수민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나는 안 챙겨줘? 왜 형만 신경 써? 에린 수민 안델슨. 너무해. 핏줄이 먼저 아니야?”
“시끄러.”
이번에도 명원과 수민, 둘이 동시에 합창했다. 구박을 받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루오는 쾌활하게 다른 걸 조르기 시작했다.
“우리 휴게소에 들러서 뭐 좀 먹자. 배고프지 않아? 나는 휴게소 감자먹고 싶어. 맥반석 오징이랑. 형, 형. 커피도 사자. 우유가 잔뜩 들어간 카페 라떼. 휘핑 크림 잔뜩 얹어서.”
오늘 부로 다이어트 작파했나보다.
“왜? 돈까스에 짜장면도 먹지 그래?”
“그럴까? 수민이도 먹고 싶대. 그치?”
“난 원래 저녁에 샐러드만 먹어.”
빙하 녹은 물에 깨끗이 씻은 야채로만 저녁을 먹는 여자처럼 수민이 차갑게 응수했다. 불을 내뿜고 있는 루오가 제발 진정 좀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나 먹히진 않았다. 오히려 루오는 점점 더 흥분했다.
“형. 이렇게 우리끼리 나와 본 게 얼마 만이지? 매니저 형 없이 운전해서 나온 건 처음이지 않아? 나 이런 기분 오래간만이야. 사실 내가 요즘 좀 답답했었거든. 저번 앨범에서 내 분량이 좀 작았잖아. 아니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팀에서 제 몫을 하고 있나 고민도 되고 또 실력적인 면에서 성장이 더딘것도 그렇고.”
요지는 이거였다. 스스로를 믿지 못해 답답했는데 이렇게 서울을 벗어나니 그나마 숨통이 트이고 날아갈 것 같다는 거다. 이 말을 연습이 끝난 후 땀에 쩔은 채로 들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겠지만 지금 루오를 보면 ‘진짜인가?’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명원은 무심결에 험한 말이 튀어나올까봐 침을 꿀꺽 삼켰다. 대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휴게소 위치를 찾았다.
“전방 4km앞에 휴게소 있어.”
명원은 무뚝뚝하게 알려주자 루오는 ‘오예’를 외치고 속도를 더 올렸다. 초보운전이지만 겁이 없다. 아니면 타고난 카레이서거나.
잠시 뒤, 그들이 탄 차는 사람이 꽤 북적이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건물 가까이에 차를 대고 시동을 끄자 갑자기 주위가 적막해졌다.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고 휴게소 불빛은 환하고 밝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 그게 문제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평일 저녁에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명원은 모자를 더 눌러 섰고 루오는 거울을 보며 선글라스를 점검했다.
“휴게소 안에서는 못 먹겠지?”
“당연하지.”
“그럼 내가 가서 사 가지고 올게. 여기 차에서 기다려.”
“너 혼자? 안돼. 같이 가.”
“우리 둘이 가면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형, 그럼 수민이 가발이라도 쓸래?”
“쓸데없는 소리.”
“그럼 형이 갔다 와. 나는 차에 있을게.”
“그것도 안 돼. 네가 나를 버리고 갈지 누가 알아?”
“이야. 형. 우리 사이에 믿음이 없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아무튼, 둘이 같이 가.”
“수민이 혼자 차에 두라고?”
“스무살이 넘었으면 혼자 차에 있어도 되지 않을까?”
결국 두 사람은 같이 차를 나섰다. 호기롭게 내렸지만 둘은 어꺠를 움츠리고 서로 바싹 붙었다. 루오가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차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수민이 보였다. 루오는 씩 웃더니 명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형. 수민이 예쁘지?”
명원이 가볍게 한숨을 내 쉬었다.
“몇 번을 묻는 거야?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건데?”
“솔직한 대답.”
명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오는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헤헤거리고 웃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형. 나는 수민이가 강원도에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알고 있어.”
“뭐? 누군데?”
“아빠.”
“아빠?”
명원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루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혼으로 헤어진 아빠 말이야. 내 이모부.”
“그 분이 강원도에 계셔?”
“응. 강원도 영월에 있는 납골당에.”
명원의 눈이 커졌다. 머릿속에서 수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스웨덴 식구들에게 비밀로 하고 한국에 왔단 말부터 꼭 만나고 돌아가야 한다며 입술을 꽉 깨물던 모습까지.
“스웨덴 이모는 이모부 이야기만 나오면 그냥 전화를 끊어버릴 정도로 싫어하셨대. 스웨덴 이모라면 이모부가 돌아가셨단 소식을 들어도 아마 수민이에게 말 안해줬을걸? 그런데 우연하게 소식을 알게 된 수민이가 가족들에게 말 안하고 아빠를 만나러 온 거지. 얼마나 딱해? 친 아빠가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잖아. 이러니 내가 수민이를 어떻게 혼자 보내겠어? 같이 가서 옆에 있어 줘야지.”
루오의 가벼움은 배려였던 건가? 명원은 어깨에 올려진 루오의 손을 탁 쳐서 내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