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매달려 14

by 브리

#기착지


나도 어제 저거 탔는데. 수민은 멍하니 앞서 달리고 있는 구급차를 보았다. 어제 보고 오늘 보니 반갑기까지 하다. 수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급대원들은 노련한 솜씨로 루오를 들것에 싣더니 곧바로 차에 옮겼다. 세 명의 구급대원 중 한명이 그들에게 다가와 어느 병원으로 갈 건지 물어보고 특별히 정해진 곳이 없다고 하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중급 병원이 있다며 그리로 이송하겠다고 했다. 명원과 수민 둘 다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명원이 운전을 하고 수민이 보조석에 앉았다. 묘한 침묵이 둘 사이에 맴돌았다. 수민은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은 빗방울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작게 기침을 했다. 젖은 몸이 천천히 마르는 중이었다. 명원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자기 통제가 강한 타입들은 궤도에서 벗어나는 걸 참지 못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호다. 이 자리에 수호가 있었다면 루오을 내팽개치고 가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명원은 책임감까지 강한 쪽이었다.


병원은 진짜 근처였다. 차가 도착했을 때는 벌써 루오를 태운 이동침대가 응급실 안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들은 주차를 하자마자 응급실로 뛰었다. 여전히 비는 세차게 내렸다. 명원이 수민의 머리 위로 자신의 셔츠 자락을 펼쳐주었지만 이미 빗물을 잔뜩 머금은 셔츠는 비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둘은 또 다시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 한 명이 모자를 벗고 머리를 터는 명원에게 다가왔다.


“지금 들어오신 환자분, 어머나!”


20대 초반 간호사의 눈이 커다래졌다. 들고 있던 플라스틱 판으로는 입을 가렸다. 수민이 보기에는 비명이 나올까봐 그런 것 같았다. 명원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사람의 얼굴이다. 어제 밤 수민을 쫓아다니던 소녀들과 비슷한 열기. 수민을 엄청나게 당황시켰던 그 반응을 명원은 덤덤히 받아들이며 대답을 했다.

“네. 제가 보호자입니다.”

간호사의 눈이 명원 옆에 서 있는 수민에게로 향하더니 더 커졌다. 수민은 겸연쩍은 기분이 들어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다가 건너편에 있는 다른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 여자도 눈을 부릎뜨고 이쪽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화, 환자분 성함이......”


가까스로 자신의 맡은 책임을 기억해 낸 간호사가 빠르게 전문적인 태도로 돌아가려 애쓰며 물었다.


“이루오. 스무살입니다.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더니 삼십분 넘게 화장실에서 토했어요 저흰 여기가 초행길이라 병원이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해서 119로 왔습니다.”


루오의 이름을 들은 간호사의 숨이 가빠졌다. 실려온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나온 모양이었다.

“네에. 그럼 복통을 일으킬만한 걸 드셨나요?”

“모르겠어요. 셋 다 같은 걸 먹었는데 쟤만 아픈거라.”

“뭐 드셨는데요?”

“우리 뭐 먹었지?”


갑자기 명원이 수민을 보고 친근하게 물었다. 수민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향한 간호사의 시선을 피하며 손가락을 꼽았다.


“김밥. 오뎅. 음... 카페 라떼. 그리고 고기 튀긴 거.”

“루오만 따로 먹은 것도 있잖아.”

“핫도그.”

“맞다. 핫도그.”


간호사는 빠르게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그녀가 힐끔 수민을 보았다. 순간 와 닿는 시선이 강렬했다. 수민은 심장이 뜨끔뜨끔해서 괜히 머리를 쓸어올렸다. 머리카락 끝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어깨로 떨어졌다.

“기다리시면 의사 선생님이 와서 봐주실거에요. 응급실은 도착한 순서대로가 아니라 응급한 순서대로니까 그 점 유의해 주시고요. 저기 진료신청서 작성 후 접수 먼저 해주세요.”


접수대는 응급실 건너편에 있었다. 명원이 수민의 팔을 가볍게 잡고 끌었다. 여러 개의 시선이 그들 뒤를 쫓는게 느껴졌다. 사진기 셔터음도 희미하게 들렸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끓어오르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든 것이다. 수민은 명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 얼굴로 그냥 다니면 한국에선 한 시간도 안 돼서 SNS에 다 올라와요’


이런 거군. 수민에게는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별 거 아닌 거라고 생각했던 게 미안해졌다. 다행스러운 건 지난 번처럼 대 놓고 따라오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이라 그런지 다들 자제하는 모양새였다.


“갑자기 반말해서 미안해요. 이런 데선 차라리 대범하게 구는 게 불필요한 오해를 안 사거든요. 어쩄거나 수민씨는 루오 사촌이고 우리가 친한 사이인 게 나을 것 같아서.”

명원이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괜찮아요. 루오가 자기 인기 많다고 그러더니 진짜였어요.”

“우리끼린 인기 많다고 하지 않아요. 거만해지고 실수하기 쉽거든요. 대신에‘쓸모가 많다’고 하죠.”

“쓸모요?”

“물건도 많이 쓰면 낡아지고 그럼 쓸모를 다했다고 그러잖아요. 우리가 하는 일이 그래요. 지금은 부르는 데가 많고 기억해 주는 사람도 많지만 쓸모가 다하면 자연스럽게 잊혀지죠. 그래서 지금 열심히 해야 해요. 어떻게든 쓸모가 많아야 좋으니까.”


명원의 말에는 슬픔도 자조도 없었다. 그저 담담했다. 수민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어쩐지 마음에 안드는 말인데요. 사람은 물건과 달라요. 좋은 사람은 평생 좋지, 시간이 지난다고 가치가 절하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더 좋아질 수도 있고.”

“수민씨는 이상주의자?”

“그러는 그쪽은 현실주의자? 너무 그러지 마요. 인기 많은 건 사실인데. 그걸 굳이 깍아내릴필요가 뭐가 있어?”


명원이 피식 웃었다. 그는 접수대에서 진료확인서 빈칸을 메워 제출하고 핸드폰으로 결제를 했다. 그 사이 접수대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명원을 알아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또 사진 찍는 소리가 났다. 명원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굴었고 수민도 마찬가지였다. 명원은 영수증을 받아들고 다시 수민의 팔을 잡았다.

“가요. 가서 루오 옆에 있어요. 나는 회사에 전화를 하고 올테니까.”

“같이 가요.”

“발목 아프잖아요.”


아프긴 했다. 루오 때문에 정신 없어서 까먹어서 그렇지 걸을 때마다 통증은 여전했다. 수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혼자 앉아 있는 것도 편치 않았다. 그리고 느낌 상 명원을 혼자 두는 것도 안될 것 같다. 명원은 이리 저리 둘러보더니 있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걸 깨닫고 고민에 빠졌다. 밖에는 비가 오고 병원 안에는 사람들의 시선은 따갑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걸린 기분이 들었다. 공기마저 그들을 옥죄어 오는 것 같았다. 그때 수민이 명원의 손목을 잡았다


“같이 있어요.”


여자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남자의 손목을 부드럽게 옭아맸다. 피부가 닿은 곳이 불에 덴 듯 뜨겁다. 실제 뜨거운 건지 아니면 와서 꽃히는 시선들 때문에 뜨겁게 느끼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는 건 확실했다. 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이 두 번째다. 수민에게 주도권을 내 준 것은. 119를 부르라는 수민의 말에 군말없이 따랐고 이렇게 또 들어주고 말았다. 별 거 아닌 일이지만 명원에게는 없던 일이다. 애시당초 여자와 이런 일을 겪은 적도 없다.

“그럼 같이… 루오한테 가요. 상태 먼저 듣고 연락하죠.”

회사에 전화하면 혼날 건 정해져 있다. 아마 멤버들 전부가 다 같이 대표실에 불려갈지도 모른다. 조금 뒤로 미룬다고 해서 더 나빠질까 싶다. 둘은 루오가 누워있는 침대쪽으로 걸었다. 명원의 신경은 자신의 손목을 잡은 수민에게로 쏠렸다. 그러느라 수민이 응급실 입구에 우뚝 섰을 때 맞춰 멈추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하마터면 수민의 머리통에 코를 박을 뻔했다.


-갑자기 뭐지?


명원은 고개를 들었다. 수민은 굳어버린 것처럼 멈춰있었다. 명원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이 더해지는 것만이 달랐다. 명원은 수민의 시선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그들에게서 열 다섯 발자국 쯤 떨어진 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인상이 꽤 좋은 남자 간호사였다. 그 남자는 스테인레스 밧드와 수액팩을 들고 가느다란 pvc관을 둘둘 말다가 그대로 멈춘 모양새였다. 창백한 형광등 아래여서 그런지 남자의 얼굴엔 핏기가 없었다.


그에 비해 수민은 뭐랄까, 여자 제사장 같았다. 제물인 흰 양을 눕혀놓고 신선한 내장을 하늘에 바치기 위해 배를 가를 준비를 하는 제사장. 한 쪽 손에는 칼을, 다른 한손으로는 양의 숨통을 힘껏 쥐고 있는 냉혹하고 아름다운 여자. 수민의 눈동자는 서리 내린 겨울밤처럼 차갑고 조용했다. 양의 목숨을 취하는 일은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명원은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그때, 다른 간호사가 나타나 남자를 불렀다.


“윤선생님. 2번 베드에 ECG 요.”


남자가 후딱 정신을 차리고 짧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지시받은 대로 움직이려다 다시 멈춰섰다. 남자는 다른 간호사를 불러 자신의 일을 부탁했다.

-잠시만 좀 봐줄래? 아는 사람이 와서. 잠깐이면 돼.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천천히 수민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삐걱대는 미소를 지었다.


“진짜 너구나. 긴가민가했어. 여기는 어떻게…. 어디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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