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엔 소음

by 브리

올해 추석 전날 딸아이가 핸드폰을 들고 친구랑 쑥덕거리더니 내게 와 물었다.

“엄마 차례 지내러 갔다 언제 올거야?”

이번엔 고 3이라고 아이 혼자 두고 부산 시댁에 내려갈 예정이었다. 점심 먹고 3시나 4시쯤 될거라고 답했더니 더 늦게 오란다. 친구가 놀러오기로 했다나?

“친구랑 같이 쿠키 구울거야. 그러니까 집에 바로 오지 말고 아빠랑 둘이 더 놀다와.”

한마디로 집을 비워달란 이야기다. 우리 집엔 오븐도 없는데 어떻게 쿠키를 굽느냐고 했더니 에어프라이기에 하면 된단다. 쿠키 구을 재료도 없고 도구도 없는데? 했더니 걔가 다 가지고 올거란다. 그러면 걔네 집에서 굽는게 맞는거 아닐까? 나의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자기 말에 빈틈 하나 없다는 얼굴이었다. 우기는 덴 장사가 없다더니..... 공부하랴 운동하랴 애쓴 딸의 마음을 고려하여 나는 더 말을 얹지 않았다. 그러나 추석 아침에 우리 두 부부만 시댁에 들어서자 시어머니는 두고 온 손녀딸이 신경이 쓰여 점심도 먹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것을 재촉하셨다. 나는 딸애의 사회적 체면을 생각해 ‘어머니 걔가 쿠키 굽느라고 안왔어요’ 소리는 못하고 12시쯤 창원으로 쫓기듯 돌아왔다. 딸에게 이야기 한 시간보다 3시간이나 더 일렀다. 이 상태로 집에 들어가면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벌써 친구와 신나게 쿠키를 굽고 있을 딸을 생각하며 우리 부부는 차 안에서 오도카니 하늘만 봤다.

추석인데 밖은 찌는 듯이 더웠다. 가을걷이하고 그 풍성함을 즐겨야 하는 추석이 이렇게 더운 건 반칙이다. 이런 날씨에 공원을 산책하거나 산행을 하는 건 생각만 해도 싫었다. 에어컨이 나오는 곳을 찾아야 했다.

“마트나 갈까?”

하지만 살 것도 없는데 마트 안을 뻉뺑이 돌 순 없다. 게다가 나는 피곤했다. 차례상 준비하느라 전날부터 전 부치고 새벽같이 일어나 시댁에 갔으니 잠이 부족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어디서 한 숨 잤으면 했다. 남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날까지 근무하고 부산까지 운전하느라 눈밑이 퀭하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고 어쨰 작년보다 올해가 더 힘들다. 우리는 고민하다 영화보러 가기로 했다. 정말 오래간만에 영화관 나들이었다. 나들이라기엔 좀 어폐가 있긴하다. 현재 우린 영화관에 자러 가는 참이었다.

예전에는 영화관들이 명절 특수를 누렸다는데 OTT가 나오고 나서부터는 힘들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영화 값이 비싸졌고 코로나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도 피하게 되어 엎친 데 덮친 격이었는데, 상황이 정리가 되고 난 지금도 회복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당일 예매인데도 표가 있었다. 우린 <베테랑 2> 로 골랐다. 의논할 것도 없었다. 한국말로 나오는 영화여야 하고 최신작이고, 유명한 사람 나오는 걸로 하니 그냥 그거뿐이었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후 영화관에 들어갔다. 에어컨은 서늘하고 주위는 어둑하고 의자는 푹신했다. 우리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 부부는 마주보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등받이에 기대어 몸을 이완시키고 잘 준비를 했다. 햄버거가 적당한 포만감을 주어 더욱 나른했다. 이대로 초반에 영화를 좀 보다가 스르르 잠으로 빨려들 예정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뜻밖이라는 말이 이상하지만- 영화가 초반부터 재미있었다. 눈꺼풀은 무거워지는데 보고 싶은 마음에 자꾸 힘주어 눈을 부릅뜨게 된다. 영화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외화였다면 배우들의 대사가 자장가거니, 하고 잠이 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잔잔한 일상을 그려내는 영화를 선택했어야 했다. 우리 부부가 고른 <베테랑 2>는 대표적인 오락영화여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준비를 단단히 한 작품이었다. 화면은 감각적이었고 대사는 빠르고 거칠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악역으로 나오는 배우가 몹시 잘생겨서 눈을 떼기가 힘들다. 나는 잠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또렷한 정신상태도 아닌 상태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디쯤에서 스르르 잠이 든 모양이다. 나는 ‘퍽퍽’하는 소리에 눈을 반짝 떴다. 그때부터 한번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장면이 바뀌어 있었다. 5분, 10분씩 짧게 토막잠이 들면 여지없이 ‘퍽퍽’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 소리는 액션씬에서 주먹에 살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말하자면 음향효과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 유리가 깨지는 소리, 후두둑 피가 떨어지는 소리. 눈을 감고 있으니 소리가 살벌하다. 퍽퍽, 우지끈, 쩅그랑, 후루루룩, 쩍, 짝, 흡, 우당탕쿵탕, 부악, 콱, 저벅저벅, 끼익, 쿠루루륵, 콰콰콰쾅. 또 욕은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대사 한줄마다 감정이 듬뿍 실린 욕 하나씩 들어가 있다. 한국어가 욕이 많고 찰지기로 유명하다더니 정말 귀에 자극적이었다.

신경에 거슬리는 음향효과들과 수면욕구가 마구 뒤섞이면서 내 머릿속은 어지러워졌다. 눈은 감겨 있는데 귀는 열려 있으니 이것은 자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 퍽 소리가 날 때마다 내가 맞는 것 같고 깨진 유리의 뾰족한 소리에 내가 찔리는 것 같다. 나는 영화관에 들어오기 전보다 더 피곤해졌다. 집에서 볼 때와 다르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그 소리와 영상이 오롯이 흡수된다는 걸 깨닫는 중이었다. 힐끔, 옆을 보니 남편은 잠을 포기한 듯 영화에 완전 몰입해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대뜸 하는 말이 “늙어서 그래” 란다. 어이가 없다.

“나이 들면 왜 맨날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러겠냐? 자극적인 소리가 견디기 힘들거든. 자연의 소리. 그게 노인의 데시벨이라고.”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맨날 <지구 탐험 신비의 세계>류의 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사자가 무리를 이끌고 사냥을 다니고 영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아프리카의 풍경을 편안하게 보셨다. 언젠가부터는 사람이 많고 시끌벅적한 게 싫다 하시더니 영화관도 잘 안 가셨다. 큰 화면과 서라운드 돌비 시스템에서 빵빵하게 터지는 음향과 속도감 있는 이야기의 전개가 버거우셨을거다. 하긴 몸 바깥쪽이 늙는데 몸 안쪽이 안 늙을 리가 없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그래도 나는 아직 아니라고 도리질 치고 싶다. 오늘은 그저 피곤해서 그랬을뿐이다.

집으로 돌아가니 부엌에는 달콤한 쿠키 냄새가 가득했다. 싱그러운 두 청춘들이 피곤은 하나 없는 해맑은 얼굴로 신나게 쿠키를 굽고 있었다. 마지막 판을 에어프라이어에 넣으며 철망 위에 식고 있던 쿠키 몇 개를 갖고 와 선을 보인다. 따뜻하고 달다. 내 입맛에는 너무 달긴 하지만 말했다간 또 늙었다는 말을 들을까봐 쿠키와 함께 입안으로 삼켰다. 집에 돌아오니 편안하다. 아. 이제는 이럴 나이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