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안아줄까요? 6

by 브리

# 6

“어릴때부터 같이 자랐고 거의 친형제나 다름없는 두 사람은 연예계 생활도 함께해나가는 동료이면서 어쩌면 연인일지도 모릅니다. 친구! 얼마나 좋은 위장입니까? 주변에서 흔히들 보시죠? 친구라고 말하면서 애정행각 벌이는 웃기는 커플들. 연예계에도 여럿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박세현, 한이재 커플일지도 모르죠.”

<연예계의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유튜브 ‘뒷담전문’10월 21일 자 방송에서>




집에 돌아오니 거실에 이재가 손을 번쩍 들고 인사를 했다. 세현의 집은 현평동 아르디움 빌리지다. 이재도 이곳에 살고 있다. 출입구가 엄격하게 관리되는 이 고급주택단지는 다섯 개의 빌라와 여러 개의 주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지 내 주민들끼리는 자유로이 다닐 수 있으나 외부인은 접근이 절대 금지되었다. 그래서 주로 보안이 필요한 유명인들이 많이 사는데 대표적인 인사로는 결혼으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보국 그룹 재벌 3세 김범호가 있다. 대한민국 최강자 보국 그룹 장손인 김범호는 결혼한 지 네 달만에 새신부를 잃었다. 아니 잃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신혼집에서 잠을 자던 새신부가 ‘목이 찔려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가 맞는 말이다. 새 신부는 금융계 집안의 딸이었고 그 집안에서는 김범호가 죽인 거라고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납득 가능한 추론이었다. 김범호는 냉혹하고 차가운 성격으로 유명했고 거기다 완벽주의자여서 여자 쪽에서 어떤 실수가 있었다면 용납할 리 없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말라 비틀어 죽을 때까지 괴롭히는 게 김범호였다. 사건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퍼졌고 온 언론과 인터넷 VJ들이 다 들러붙었다. 경찰조사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김범호는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그와 새신부가 작성한 혼전 합의서였다. 합의서에 따르면 그들 부부는 철저히 비즈니스 관계였고 사생활은 노터치였으며 새신부에게는 애인이 따로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대중들은 엄청 놀랬다. 거기에 기름을 붓듯 김범호는 태연하게 말했다.


“저는 그날 다른 방에 자고 있었습니다. 다른 여자와 함께요.”


신혼집이 모텔도 아니고, 버젓이 아내가 있는 집에 여자를 불러들여 잠을 자다니. 보국을 이끄는 주인이라면 저 정도 배포는 되야 하는 거구나, 사람들의 조롱과 패러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보국그룹에서는 어떻게든 이 사건을 빨리 마무리하려고 애를 썼고 그러기 위해서 엄청난 돈이 뿌려졌다. 어느 정도냐면 농담으로 보국그룹에서 민생지원금을 뿌린 거냐고 할 정도였다. 범인은 잡지 못했고 김범호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만 그 일로 아버지 김회장이 꼴도 보기 싫어해서 집을 나와 이 빌리지로 들어왔다. 아직도 김범호를 쫓아다니는 유튜버들떄문에 경비가 더 강화되었으니 입주민들에겐 나쁠 게 없었다.


세현은 핸드폰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피곤했다.


“공주님은 잘 지내?”

“내 사촌 다리는 괜찮아?”


대답 없는 질문이 오고 갔다. 분명 세현의 집인데 이재는 자연스럽게 냉장고에서 육포를 꺼내 질겅질겅 씹었다. 한쪽 손에는 맥주캔을 들고 있었다.


“체중 관리 한다며?”

“나 오늘 맥주 주웠잖아.”

“뭐”

“세련빌라 주차장에서 어떤 남자가 여자는 들쳐메고 맥주는 버리고 가더라고. 영화보는 줄 알았네.”

“야. 그걸 주워 오냐?”

“멀쩡한데 뭐 어때?”


분명 재란이 떨어트린 맥주다. 한 팩이었으니 캔맥주 여섯 개였을텐데 그 중 다섯 개를 이재가 주워와 탁자 위에 줄을 세워 놓았다. 세현도 그 중 하나를 들어 마개를 열었다. 미지근한 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쓰고 단맛을 남겼다.


“봤으면 인사를 하지.”

“박세현, 힘 좀 쓰던데? 이재란을 거뜬히 들더라고. 남자야. 상남자. 피아노 건반만 누룰 줄 알았더니 운동 좀 했나봐.”


이재가 반듯한 눈썹을 꿈틀거리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영교가 그러는데 재란공주는 선보러 다닌다며? 유럽 왕실이야 뭐야? 요즘 같은 세상에 그렇게 결혼할 필요가 있나? 대표님은 왜 그쪽에서 하자는 대로 하신대?”

“알잖아. 대표님은 그 집안에 부채감 있는 거.”

“재란이 엄마만 돌아가신 거 아니잖아. 아빠도 돌아가셨어. 대표님도 동생을 잃었다고.”

“우리가 뭐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이재가 씹던 육포를 내려놓더니 혀를 쯧쯧 찼다.

“네가 이렇게 예의를 차리니까 그 모양이지. 재란이가 남이야? 왜 남의 일처럼 굴어? 절실하게 매달리란 말이야. 그냥 말하고 그냥 덤벼. 가끔 보면 네가 진짜 재란이를 좋아하는지 의심이 든다니까. 솔직히 말해봐. 둘이 그냥 친구 아니야? 사실 너, 소문대로 날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세현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손으로 현관문을 가리켰다.

“당장 나가.”

“정곡을 찔렸나? 그게 아니라면 제대로 왕자님 역할 하라고. 이웃나라 왕자님은 너만 있는 게 아니니까.”

“입 닥쳐.”

“차라리 몸으로 꼬셔보는 건 어때? 혹시 알아? 재란이가 미남계에 약할지. 내가 저번에 그 비슷한 역 해봤잖아. 기술 몇 개 가르쳐 줘?”


야, 이 자식아. 내가 안 해봤겠냐? 세현은 터져 나오려는 반박을 꾹 눌러 삼켰다. 이재 이 자식까지 세현을 안쓰럽게 봤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겉으로 우아해 보이는 백조가 물 밑으로 얼마나 거세게 발버둥을 치는지 남들은 모른다더니 딱 그 짝이다.

“그 말 그대로 너한테 돌려준다. 너나 잘해.”

“난 너랑 상황이 다르잖아.”

“나보다 더 지독하지. 오늘도 영교가 시키는 대로 하고 왔냐? 커피 마시라면 커피 마시고 밥 먹으라면 밥 먹고 집에 가라면 집에 가고. 어이구 누님이 무서우셨어요?”


이모는 미국으로 유학 가면서 딸 영교를 세현네 집에 맡겼다. 영교는 일곱 살떄부터 세현네 집 아이였다. 세현 엄마 영희씨는 아이를 많이 가지고 싶어 했지만 몸이 약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언니의 아이를 제 새끼처럼 품었다. 그녀는 과일도매업을 하느라 바쁜 부모를 뒀던 옆집 꼬마 이재도 맡아주었다. 세현은 그 시간을 기억했다. 엄마가 세현과 이재, 영교를 쪼르르 앉히고 요구르트와 빵을 나눠주던 늦은 오후를. 누가 먼저 먹을지 매일 싸워대니까 엄마는 ‘생일 순서대로’라는 규칙을 청했다. 생일은 영교가 제일 빨랐는데 단풍 같은 작은 손을 예쁘게 포개고 귀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모. 누나부터 먼저 주세요!”


해봤자 고작 한 두달 차이였는데 누나라니. 하긴 일곱 살 시절에는 정신연령 차이가 꽤 났다. 영악한 꼬맹이었던 영교는 스스로를 누나라고 꼬박꼬박 지칭했고, 세현과 이재는 순진하게 그대로 따라 불렀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습관이 되어 저절로 ‘누나’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한번 정해진 서열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영교는 아직까지도 그들을 어린 동생 취급한다.


이재는 테이블 위에 맥주캔을 들어 세현에게로 던졌다. 입 닥치란 뜻이었다. 한 손으로 캔을 받아내며 세현이 쓰게 웃었다. 똑같은 놈 둘이 모여 서로 긁어대고 있다. 이런 소모적인 대화는 할 필요가 없다. 이재도 그 점을 깨달았는지 입을 닫고 남은 술을 쭉 들이켰다.


이재가 지적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재란과 세현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이재와 영교의 걸림돌은 ‘생일 순서’라면 그들의 문제는 우습게도 둘 다 너무 잘 균형을 유지한다는 거다. 현재 재란과 세현은 폭이 좁은 평균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누구 하나가 균형을 잃어버리고 떨어진다면 같이 낙하할 수 있다. 아래에는 분명 푹신한 매트가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떨어질 수도 없고 상대에게 떨어지라고 할 수가 없다. 발 끝에 힘을 주고 부들부들 떨면서 버티고 있는 서로를 본다. 가끔 서로 손을 잡고 기대기도 하면서. 그 시간이 오래되니 이제는 한 몸이 되어 엉켜버리고 말았다.


-평균대 위에서 내려올 타이밍을 놓쳤을지도 모르지.

“혹시 늦은 걸까?”


이재가 불쑥 중얼거렸다. 그 말이 세현의 심장을 쳤다.

“고백해도 지금처럼 지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뭐든 해보겠는데.”


우정이 사랑이 될 때 제일 두려운 건 거절했을 때 관계가 부서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쉽사리 고백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백해도 변화가 없는 게 얼마나 피 말리는지 이재는 모른다. 상대의 답은 거절과 승낙, 두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재란처럼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재란은 이렇게 말했다.


“너와 친구로 지낼 수 있다면 뭐든 좋아. 나는 평생 네옆에서 네 인생을 지켜볼 거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 뭐든 할거야. 그러니 너도 평생 친구로 있어줘.”


평생 친구. 키스를 해도, 같이 밤을 보내도 친구. 재란이가 맞선을 보러 나가도 태연해야 하는 친구다. 저번에 찌라시가 돈다고 했을 때 세현은 내심 기분이 괜찮았다. 기회가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성운동의 그 깐깐한 회장 할머니가 머리를 싸매고 드러눕고 회사가 발칵 뒤집혀도 둘이 낙하할 기회. 그런데 이재란은 일이 커지지 않게 단도리를 하고는 뉴욕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때부터 연락 두절이었다. 세현의 음악 커리어에 흠집 내고 싶지 않다나?


“내가 네 첫 번째 팬이잖아. 팬으로서 내 스타를 망하게 할 순 없지.”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반짝거리는데 어떻게 스캔들이 반갑다는 소리를 하느냐고! 세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재란은 과거 세현의 팬클럽 활동을 한 적도 있을 만큼 세현의 커리어에 진심이다. 세현이 연습생이었던 시절부터, 아니 애초에 회사 명함을 맨 처음 건네준 사람이 재란이다. 세현은 지갑 깊숙한 곳에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는, 가장자리가 닳아 부드러워진 그 명함을 떠올렸다. 열 네 살 소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얘. 너 연예인 할래?






작가의 말 : 다음 편은 과거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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