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을 사랑하자

by 브리


중학교때 나를 좋아한 남학생이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파릇파릇한 순간이. 심장이 말캉하니 누가 콕 누르면 누르는 만큼 패이던 나이였다. 한번은 그 남학생이 나를 불러내 용지호수를 가자고 했다. 나는 집에서 입고 있던 초록색 체육복 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그 애는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둘이 나란히 용지호수를 걸었다. 햇빛이 따뜻한 봄날이었다. 느긋하고 다정한 공기속을 둘이 걷는 동안 그 애는 수시로 얼굴을 붉혔다. 나를 좋아하는 그 애의 마음은 느껴졌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내 마음이 그랬다. 그 애도 알았던 것 같다. 용지호수는 느긋하게 걸어도 3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최대한 천천히 걷다가 문득 그 애가 벽에 적힌 글귀를 가리켰다.


“저기 좀 봐.”


그 당시 용지호수 바로 옆에는 실외수영장이 있었는데 용지호수쪽에서 바라보는 벽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창원을 사랑하자’


그 애는 힘주어 덧붙였다.


”창원을 사랑하라잖아.“


그 애 이름이 창원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고 그게 그 아이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한 추억이다. 나는 그때 ‘창원’을 사랑하지 못했다. 열여섯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스무살이 되어 대학에 합격하고 나는 창원을 떠났다. 뒤이어 공무원인 부모님도 통영으로 전근을 갔고 그때부터 나는 통영사람이 되었다. 내 부모가 있는 곳이 내가 속한 곳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통영 사람으로 소개했다.


”통영이 집이에요. 통영 살아요. 저.“


창원사람에서 통영사람이 되었다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거제도 병원에서 태어났고 진주를 거쳐 진해, 마산까지 두루 거치며 살았던 나에게 창원은 그냥 잠시 들렀다 가는 정류장일 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돌아올 일이 생겼다. 결혼하고서 양산에 새살림을 차렸는데 남편이 창원으로 전근하게 된 것이다. 살았던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처음이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돌쟁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나로서는 창원이 낯선 도시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동창들 한 둘을 만나게 될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도시랑 낯가리는 일 없이 바로 적응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남편은 먼저 창원으로 출근하면서 나에게 살 동네를 정해보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내가 알던 동네를 말했다. 알던데가 거기 뿐이었으니까. 집은 남편과 시어머니가 가서 정했다. 아이 때문이었지만 그게 아니어도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창원이었다. 내가 7년동안 살았던 곳. 이미 한번 내렸던 정류장인데 그 근처에는 뭐가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용지호수가 떠오른 나는 창원초보시민이 된 남편에게 물었다.


“용지호수 가봤어?”

“아니. 거기 뭐가 있는데?”


말해본들 남편이 알까. 이사하는 날, 초등학교 6학년 첫 이사때처럼 가로수가 늘어진 넓은 창원대로로 접어들자 기억은 날개를 달고 중학 시절의 그 날로 나를 데리고 갔다. 시간이 많이 흘러 ‘창원’이라는 이름의 남자애의 얼굴은 잊어버렸다. 또렷이 떠오르는 건 용지호수의 그 표어. 야외수영장과 맞닿은 하얀 벽에 무지개색으로 물결을 그려놓고, 그 위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던 ‘창원을 사랑하자’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을까?

생각해보니 창원에서 보냈던 7년은 내 사춘기와 맞물려 있다. 그 시절 창원은 제대로 된 쇼핑몰도 영화관도 없었다. 있는 건 넓은 공단지역과 자로 대고 그은 듯 똑바르고 넓은 도로뿐. 아이들은 갓 전학 온 나에게 와 은밀하게 속삭였다. 창원대로에 전투기가 뜨고 내린다고. 나는 그걸 철석같이 믿었다. 나중에야 가까이에 김해공항이 있어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을 알았다 할지라도 전투기썰은 그럴 듯 했다. 그럴만큼 도로가 넓었다.

도로는 넓고 사람은 적고 차도 적어서 썰렁하고 적막했던 공업도시 창원. 이런 도시의 차가움을 상쇄시키려는 듯 창원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나는 학교 근처에 있던 습지공원에 친구들과 놀러가곤 했다. 돗자리와 먹을 것을 챙겨서 소풍 온 기분을 내며 누워 뒹굴거리다가 유치한 로맨스 소설을 쓰기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 또 집 근처에는 시청 앞 로타리 광장이 있어서 공부하다 지치면 그리로 산책을 나갔다. 거대한 원형 광장 위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우리는 시청부터 도청까지 쭉 이어지는 대로를 달음박질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구역엔 관공서만 있어 저녁이면 텅 비었다. 차가 한 대도 없는 널따란 도로 위를 지그재그로 걸어다니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마치 금기를 넘어서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웃음소리가 밤하늘을 가득 채우던 밤, 사춘기의 억눌린 분노가 바람 빠진 공처럼 쪼그라들고, 그 자리를 조용한 평화가 채웠다. 그러면 멀쩡한 얼굴로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잠들 수 있었다.

창원으로 돌아와 벌써 18년이 지났다. 두 번째 창원살이를 하면서 나는 딸과 함께 용지호수에 자주 놀러 갔었다. 용지호수 일대는 많이 변해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창원을 사랑하자’ 표어는 당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딸아이가 좋아하는 너른 잔디밭과 벤치가 있었다. 거기서 하루종일 놀다가 건너편 상가에 있는 빵집에서 빵 하나 사먹고 건물 지하에 있는 큰 문구점에 들러 오는게 우리 코스였다. 긴 외출을 한 날 딸은 밤잠을 잘 잤다. 그럼 나도 편안했다. 그랬던 딸이 열 아홉 살이 되었다. 아이에게 창원은 평생을 보낸 곳이 되었고 아이와의 추억이 더해지고 나니 나에게 창원은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장소가 되있다. 내가 가장 힘들고 예민한 시기를 함께해준 이 곳에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창원을 사랑하자’는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던 열여섯살 ‘나’에게 한달음에 건너가 “너는 창원을 사랑하게 될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마 나는 기겁을 하겠지. 저기, 그 ‘창원’이 아니에요. 그리고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창원씨. 오해하시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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