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un Aug 18. 2016

죽음, 그 의미에 대해

산티아고 길을 떠나기 전) 엄마를 떠나보내며




사후의 삶에 대한 진실이 무엇이든,
죽음은 인간이 상상하는 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탄생이 시작도 아니고 죽음이 끝도 아니다. 단지 연속선 위의 하나의 정거장에 불과하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고 여기는 일반적인 정통적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한 이를 잃었을 때 그 끔찍한 상실과 헤어짐의 고통을 건너뛸 수 있다고 암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죽어서도 사랑한 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믿고 있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 '상실 수업' 中 -





죽음,

무거운 이 주제에 대해 이제까지 나는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두려워지기도 하고, 허무해지기도 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면.

'죽음 이후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육체가 없는 내 영혼은 어떤 상태일까'


내가 죽어보지 않았으니 알고 싶어도 절대 알 수 없을 테지만... 작은 시간의 단위까지 쪼개 모든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지금의 상황이 우스운 꼴이 될 만큼 거대한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죽음 이후에 벌어질 세상에 대해 누구에게도 정확한 답을 들을 수도 없거니와, 자신이 똑똑하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유일한 주제일 테니까.





어릴 때 유아세례를 받은 연유로, 그리고 카톨릭 집안에서 자라난 환경적 영향으로, '착하게 살다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할 엄두조차 내보지 않은 너무나 당연한 믿음이 어찌 보면 복잡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끝내는 유일한 나의 무기였다. '부끄럽지 않게 살다 가면 그분이 어떻게든 알아서 하시겠지...'  뭐 이런 생각.


그런데 이런 나의 확고한 믿음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엄마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몹시도 간절하게 '그 끝이 끝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게 한다. 신이 있다면 나에게 확신이 생길 수 있도록 약간의 힌트라도 주었으면 좋겠다.


'인간이 가늠하기 어려운 그 세계가 분명 존재하니 넌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단다. 그리고 그 안에서 너희 엄마는 편안하고 행복하다'라고. 


건강하고 아름답던 육체가 일순간에 생명을 다하여 내 옆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지만 나에게 어제같이 힘을 주는 말을 건네던 엄마의 영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더욱 믿을 수 없다. 그 영혼이 하늘에서 아프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게 존재하고 있지 않다면, 단순히 그저 소멸되는 것뿐이라면, 이처럼 허무한 일이 있을까.




엄마

나의 인생에 절대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했던 엄마.

너무 많은 사랑을 주고 거짓말처럼 내 곁을 떠났다.



5월 8일, 어버이날이기도 했던 그 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깐 나온 장례식장 밖에서 올려다본 하늘에선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엄마는 자신이 참 좋아하던 계절에 아픈 육신으로부터 벗어나 엄마가 믿어 의심치 않던 그곳으로 가셨다.


사람들은 엄마가 행복하게 떠난 거라며 나를 위로했다. 엄마는 좋은 곳에 가셨다고 했다. 넌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고. 고마운 말들이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무엇을 한들 엄마를 돌아오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매년 기일인 어버이날이 되면 나는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어 가슴이 아프겠지. 작은 것에도 고마워하고 기뻐하던 엄마가 미치게 그립겠지. 부족한 나를 늘 최고라 여겨주는 나의 영원한 정신적 지지자가 중요한 인생의 고비마다 간절해지겠지. 뭐 이런 생각들만 들고 모든 것이 허무했다.


60살 환갑도 맞이하지 못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떠난 엄마. 늘 고왔던 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된 걸 상상할 수 없었는데.. 영원히 그렇게 예쁜 소녀 같은 모습으로만 나에게 기억될 것이다.


엄. 마.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엄마라는 두 글자에 또 눈물이 난다.

 


엄마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늘 세속적인 기준이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보았다.

어떤 환경에서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깊이 감동하고 표현할 수 있는 소녀 같은 사람이었다.

작은 일에 감사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을 늘 도울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너무 많은 재능을 가졌지만 항상 겸손했고, 책과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대화에도 마음을 열고 대화했고, 타인을 언제나 이해하려 했고 타인의 실수나 잘못에 너그러웠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프도록 치열하게 고민했다.

늘 다방면에 호기심이 가득했고, 새로운 일에 도전했고, 예술적으로, 문학적으로, 영적으로 아름다운 결과물들을 남겼다.

훌륭한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딸이었으며,

무엇보다 나에게 최고의 엄마이자 친구였다. 





우리가 지구에 보내져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몸은 벗어 버려도 좋아. 우리의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누에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이란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영혼을 해방시켜 걱정과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신의 정원으로 돌아간단다. 아름다운 한 마리의 자유로운 나비처럼 말이야.

- 엘리자베스 퀴블러 '생의 수레바퀴', 암에 걸린 아이에게 보낸 편지 中-



엄마와 나는 평소에도 죽음이나 종교에 대해서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강한 확신과 믿음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남은 가족이 눈에 밟혀 그토록 힘든 치료를 오래 견뎌냈던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하다. 천국이 있다면, 평생 선하게 살다 간 엄마가 그곳에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리라. 엄마가 안 가면 누가 가겠나 싶다. 일생을 순수한 마음으로 믿었던 것에 대한 보상을 그곳에서 맘껏 받고 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머리로 이해하는 그 확신을 좀 더 강하게 가슴으로 느끼고 싶다. 그렇게 간절하게 지키고 싶었던 엄마를 데려간 신의 큰 뜻도 이해하고 싶다. 엄마 영혼이 행복하게 잘 있다는 보장을 내게 해준다면 엄마와 빨리 헤어지게 한 신이 조금은 덜 미울 것 같다. 내가 더 해주고 싶었던 것들과 비교가 안될 만큼 엄마가 행복하다면 조금은 덜 억울할 것 같다.



엄마는 나로 하여금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것이 때론 너무 이상적이고 너무 착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지라도. 겁도 많고 소심했던 내가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성취했다면 그건 엄마의 영향이 많았을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도전,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돌파구를 지혜롭게 찾아 해내는 모습은 내가 엄마를 엄마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 진심으로 존경했던 점이다.  

  

엄마와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은 글을 주고받았다. 엄마는 중요한 날에는 한 번도 빠짐없이 나에게 카드를 써주셨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았던 그 카드가 지난해 내 생일이 마지막이 될지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힘든 치료에도 비뚤비뚤 써 내려간 이 글이 나에게 하고 싶은 엄마의 마지막 유언처럼 느껴져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준 생일 카드



매일매일이 축제의 날로 행복하길...

이것이 엄마가 나에게 바랐던 마지막 말이다.


'응 내가 엄마 마음 다 알지. 걱정 마.

엄마 바람대로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볼게. 지켜봐 줘. 나도 너무너무 사랑해'





지금 당신이 기차의 어떤 칸에 타고 있는가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마지막에 도달하는 기차를 함께 타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다.



죽음은 나비가 누에고치를 깨고 나오는 과정 속에 일어나는 따뜻함과 고요함에 불과하다. 그 나비를 볼 수는 없지만 사랑한 이가 더 이상 고통 속에 있지 않으며 관 속에 갇혀 있거나 병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 이상 병들어 있지 않다. 사랑한 이는 이제 모든 것에 자유롭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 '상실 수업' 中 -



평생을 죽음에 대해 연구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을 보았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박사가 남긴 말이 나에게 조금은 위로가 된다.


"죽음은 단지 이 생애를 마감하고 고통과 번뇌가 사라진 곳으로 옮겨가는 일일 뿐이에요. 이 사실은 상실과 슬픔에 잠긴 나에게, 내가 소중히 여긴 모든 사람들이 괜찮을 거라는 걸 가르쳐주고 날 안심하게 만들어주지요. 나는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리고 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이곳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 돌봐줄 거예요. 그래서 그들과 함께 웃고 미소 지을 거예요. 만일 그들이 사후의 삶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난 그들에게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말할 거예요. '하하, 우린 이곳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괜찮아'라고요. 진실로 영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난 내가 한 때 살았던 삶과 헤어진 사람을 몹시 그리워할 거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길 위에서(1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