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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Jan 10. 2017

산티아고 길 위에서(7)

그 일곱 번째 이야기,  '사모스 수도원과 마음의 평화'




오늘은 산티아고 길에서 내가 무려 이틀이나 머물렀던 사모스(Samos)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보통 한 지역에서 하루씩만 머무르며 다음 곳으로 이동하는 순례자에게 이틀이나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 일단 충분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거기 뭐 별 것도 없던데 이틀 씩이나 있었냐고 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대체로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도착지인 산티아고 등에서 며칠을 더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지역들에 비하면 사모스는 정말 별 것이 없긴 하다. 오래된 수도원이 하나 있을 뿐이다. 혹자는 그럼 거기서 뭐 수녀라도 되려는 거냐, 도라도 닦으려 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것을 떠나서 사모스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조용히 쉬다 가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그리고 사모스 수도원은 남자 수도원이다.


사모스는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를 지나면서 나오는 두 갈림길 중 5km를 더 우회하여 가야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사모스를 그냥 지나쳐 바로 사리아(Sarria)로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이 길로 들어서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개인마다 느낌이 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길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여길 선택하겠다.




내 영혼이 위안을 받는 느낌이랄까. 평화롭고 행복했다. 걷는 것이.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도 숲이 우거져 그리 괴롭지 않았고 오히려 나무 그늘 사이로 얼굴에 닿는 그 따뜻함이 좋았다. 햇살을 한껏 받은 나무들과 풀잎들이 온 주변을 가득 메우고 반짝였고 적당히 시원한 아침 공기마저 감미로워 계속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았다. 특히 물에 반사되어 점점이 빛나는 햇빛은 남부 프랑스에서 많은 화가들이 너도나도 탐을 내었던 그 모습처럼 내 눈 앞에서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구현되고 있었다. 다만 나의 아이폰이 구현을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이곳을 지나던 10월 말에는 지천에 밤이 떨어져 있었는데 지나가는 길에 여유롭게 밤을 줍는 현지인들도 몇몇 보았다. 걷는 내내 하늘에서는 비나 눈이 아닌 밤송이가 내렸고 제법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직접 맞으면 좀 아프다. 떨어질 것을 예측하며 간다지만 매번 맞을 때마다 그렇게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사모스 가는 길은 오랜만에 내가 걷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준 길이었다.



밤 내리는 길

                 




사모스에는 굉장히 큰 규모의 오래된 수도원이 하나 있다. 원한다면 이 수도원에서도 숙박이 가능하고 안내자의 동행 하에 수도원 안을 둘러볼 수도 있다. 하지만 늦가을이나 겨울에 이곳을 간다면 웬만하면 사설 알베르게에서 주무시길 권장한다. 추위에 탁월히 강한 분이라면 상관없지만 수도원엔 난방 시설이 없는 데다 안에 들어가면 어찌 된 것이 밖보다 한기가 더 느껴질 정도로 추웠다. 당시 이곳을 선택한 일부 한국인들로부터 끔찍한 밤이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얼어 죽을 뻔했다고 했다. 하지만 추위 따윈 걱정 없다면 오래된 수도원에서 하루를 지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사설 알베르게는 두 곳이 있는데 나는 이 두 곳에서 각각 하루 씩 묶었다. 특히 두 번째로 간 알베르게는 내가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어떤 숙소보다 후끈한 난방시설을 제공하였고 센스 넘치는 사장님의 배려와 맛있는 음식, 좋은 사람들... 모든 것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사모스 수도원 알베르게 입구 맞은 편에 위치한 사설 알베르게,  2인 1실을 혼자 썼음/ 최고의 난방, 얼굴이 벌겋게 익을 정도로 뜨겁게 잤다


사모스 수도원 전경(건물 뒤편)




수도원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6세기에 수도사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는데 그로부터 6세기가 지난 12세기부터 건물을 올리기 시작하여 19세기까지 계속 증축되었다고 한다. 1951년 큰 화재로 건물 일부가 통째로 불탔는데 돌기둥은 다행히 멀쩡했고 지붕 부분이 주로 소실되어 다시 보수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큰 규모의 수도원에 현재 여덟 분의 수도사만 계시다는 점(2016.10월 기준)이다. 그분들은 어떤 신념이 있으시길래 이렇게 큰 수도원을 지키며 기도생활을 이어가고 계시는 걸까.. 새삼 궁금해졌다. 이곳은 남자 수도원이고 한 5년 전쯤에 한국인 수사님이 계셨으나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가셨다고도 했다. 여자도 괜찮다면 그리고 춥지만 않다면 고요한 이곳에 나도 몇 년쯤 살아보고 싶었다. 한 달도 채 못 지내고 외롭다며 뛰쳐나가려나 모르겠지만.. 아니면 아무나 잡고 자꾸 조잘대서 내 발로 나가기 전에 쫓겨날 가능성이 더 크긴 하다.




예전에 수사님들이 생활하시던 모습





수도원과 관련된 모든 내용들은 그곳 안내자에게 들었는데 까먹을까 봐 핸드폰에 대충 기록해 둔 것을 바탕으로 쓴다. 나의 영어 리스닝의 집중력 저하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밝힌다. 혹 틀린 내용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길 바라며... 








내부 투어는 하루에 대여섯 차례 이루어지는데 내가 간 시간에는 공교롭게도 나 혼자였다. 난 혼자 투어 하기엔 너무 황송한 나머지 다른 시간대에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안내하는 여자 분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단독 투어를 기꺼이 감행했다. 내부는 반드시 안내자의 동행 하에만 들어갈 수 있는데 수사들이 기도하거나 머무는 곳을 제외하고 입장 가능한 곳들만 30분 내외로 대략 한 바퀴 휙 둘러볼 수 있다. 안내자는 너 하나밖에 없으니 언제든 자유롭게 질문하라고 했지만 정작 질문하니 시간이 얼마 없다며 초조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투어를 하는 도중 수사님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는데 방해하면 안 된다고 우리 이제 조용히 하자며 내게 윙크를 했다. 난 별 말을 해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나마 이 여자분이 가장 감성을 담아 설명했던 건 베네딕트 수사와 그의 누나에 관한 그림 앞에서였다. 한 번은 베네딕트 수사의 누나가 수사를 찾아와 수도원에 하루 머물길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은 남자 수도원이었고 원칙적으로 여성은 머물 수가 없었다. 베네틱트 수사는 누나의 이런 청을 단번에 거절하였고 그런 까닭에 수녀 복장을 한 누나가 식탁에서 울고 있는 거라고 [아래 왼쪽 사진] 했다. 그런데 그가 청을 거절하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고 난리가 났단다. 그리하여 베네딕트 수사는 어쩔 수 없이 누나의 소원대로 하루 머물다가도록 허락을 했다. 그다음 날 누나는 떠났고 베네틱트 수사는 놀랍게도 누나가 사망하였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누나가 실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동생이 보고 싶어 자신을 찾아왔었음을.. 그제야 깨닫고 슬퍼했다는... 그런 일화를 담았다고 한다.


누나가 하루 머물다 간 것이 그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까. 그냥 돌려보낸 것보다는 마음의 죄책감이 덜 했을지언정 슬픔의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일 볼 것을 기약하고 이별함에도 섭섭함과 아쉬움이 남는데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할 때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는 이별이란 있을 수 없을 거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한들 준비가 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엄마를 보내며 깨달았기에 죽음, 이별이라는 그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감에 가슴이 답답해져 빨리 화제를 전환하고 싶었다.


다행히 화제 전환은 누나의 수녀 동료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위 사진에 유독 튀는 수녀[아래 오른쪽 그림에서 주전자를 들고 계신 분] 당대 유명했던 여자 배우를 본떠 그렸다고 한다. Sara Montiel이나 소피아 로렌 등으로 추측한다고 했다. 소피아 로렌은 익히 들어 본 이름이었지만 사라몬티엘은 생전 처음 들어 본다고 하자 그녀는 어서 찾아보라며 검색 찬스를 허용해주었다. 스페인에서 유명한 배우인 것 같았다. 작가의 의도가 뭐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너무나 시크하게 모르겠다고 했다. 시기적으로 볼 때는 아마 화재 이후 재건하면서 그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사모스에서 제일 좋아하던 장소는 수도원 뒷 편이다. 정확하게는 시냇물을 바라보고 앉는 벤치. 가리비 모양의 철제 난간 아래로 시냇물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면 드리워진 나무에서 낙엽이 사르르 떨어졌고 햇빛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였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여주인공처럼 물수제비라도 떠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거기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책도 읽고 뭘 끼적이기도 하는 시간이 정말 평화롭고 행복했다. 가끔 옆으로 돌아보면 길 건너편에서 비니가 잘 어울리던 알베르게 사장님이 벽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엄지를 들어 보이며 내 광합성 활동 및 문화생활을 지지해 주고 있었다.


난 이 곳에서 고요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사모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




길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저녁 시간이 되면 으레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아는 노래가 나오면 같이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한 번은 기타를 메고 다니는, 작곡도 직접 한다던 '한 감성 하는' 한국인 동생을 만난 적이 있었다. 까를라 브뤼니의 노래를 듣다가 그녀가 부른 버전의 You belong to me가 나왔고 기타 동생은 즉석에서 그 곡을 불러주었다. 우리가 풍류를 즐겼던 곳은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지대가 좀 높았는데 해가 지면서 마을 전체는 노란 가스등 불빛으로 아련하게 변했고 하늘에는 별이 빛났다. 버려진 듯 무심하게 놓인 오크통에 위에 와인과 급조한 안주거리를 놓고 즐기는 음악은 정말 좋았다. 감성이 폭발하는 밤이었다.


그 이후 나는 까를라 브뤼니를 혼자 다시금 재조명하며 그녀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며칠을 빠져 있었다.  





사모스를 떠올리면

물 위로 점점이 흩어지며 반짝이는 햇살이 어른거리고

까를라 브뤼니의 매력적으로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리고

따스한 빛과 살랑이는 바람에 방금 감은 머리가 기분 좋게 마르는 느낌이 든다.



 

 https://youtu.be/Wf9SNrJu8Zo

Carla Bruni의 Le plus beau du quar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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