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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Jan 13. 2017

산티아고 길 위에서(8)

그 여덟 번째 이야기,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괜찮아?"


길에서 혹은 숙소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서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어디 아픈데 없이 잘하고 있느냐.. 오늘은 기분이 어떤가 등의 종합적인 염려와 관심을 저 한마디에 녹여 말하기도 하고, 그냥 버릇처럼 괜히 묻기도 한다. 물론 아주 좋은 날도 있지만 기분이 정말 '갈리시아 지방' 같은 날도 있다. (갈리시아 지방은 연중 강수량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안 괜찮다 한들 아임파인땡큐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나뿐일까. 보통 괜찮아. 좋아. 나쁘지 않아 정도 말하고 만다. 정말로 안 괜찮아 죽을 것 같아도 그냥 그렇게 말하는 것이 속 편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안 좋은 날씨보다 마음이 더 어두울 때도 있다.




한 번은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는데 엄마 생각이 그렇게 나는 거다. 그것도 엄마가 병원에서 아팠을 때 그 이미지가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아서 안 그래도 날씨도 우중충한데 괴로운 생각들이 끝 간 데 없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엄마는 치료 중 폐렴이 오는 바람에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는데 다른 모든 기관의 기능이 멀쩡하고 식욕이 있음에도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물 한 모금 못 삼키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내가 무얼 먹는 것조차 엄청난 죄책감이 들고 싫었다. 그렇게 호박죽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그거 한 입 드릴 수도 없는 나 자신이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내가 정말 싫었던, 병원에 들어서면 나던 특유의 냄새와 함께 그런 기억들이 눈 앞에 확 펼쳐지는 것 같았다. 속이 울렁거렸고 이전 마을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점심으로 먹었던 피자를 다 토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같이 걷던 동생을 먼저 보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더 어두워지더니 아니나 다를까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마음이 이보다 더 심란할 수 없다의 상태로 가고 있는데 길 옆에 작은 돌무덤이 보였다. 까미노 길에는 가끔 이런 작은 무덤이나 길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을 애도하는 표식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평소 같으면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겠지만 마음도 가라앉힐 겸 그 돌무덤으로 다가갔다. 거기엔 2011년에 작고한 트루디 할머니 사진이 있었고, 한 송이 꽃과 함께 이런 글이 놓여 있었다.


"Walking. I am listening to a deeper way. Suddenly all my ancestors are behind me. Be still, they say. Watch and listen. You are the result of th love of thousands." (Linda Hogan)


그래.. 엄마는 비록 내 곁을 떠났지만 나는 아주 멀고 먼 그 예전의 우리 선조들 때부터 수천만의 사랑의 결과로 지금 존재하고 있는 거다. 늘 넌 특별한 존재다라고 별 것 없는 나를 마치 뭔가 귀한 보물처럼 여겨주던 엄마가 내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호랑이(개가 아니다)를 끌어안고 웃고 있는 트루디 할머니의 사진과 함께 이 글을 한참 바라보고 섰는데... 알 수 없는 마음의 고요함이 찾아왔다.





잠시 동안만 나를 아는 사람이 지나가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면 꼭 아는 사람은 오게 마련인가 보다. 내가 길에서 자주 보던 한 프랑스인 친구가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물었다.

"괜찮아?"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 그냥 잠시 나를 두고 지나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딱 오늘의 날씨 같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애써 발랄한 척을 하면서 "응 아주 좋아" 그랬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쿵-하게 했다.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괜찮아."



https://www.youtube.com/watch?v=-Y3Vos8LXQs

이적, '걱정 말아요 그대' / 지난봄 병원에서 엄마와 많이 들었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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