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You inspire me

강아지에서 고양이로의 진화

자신답게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by Iris K HYUN





고양이는 보통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자신의 루틴이 있으며 그에 따라 그럭저럭 잘 지낸다. 종 특유의 독립성 덕분인지 같이 있어도 무언가 더 해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덜 든다. 누군가 그랬다. 개의 중심은 제 안에 있지 않고 자기가 바라보는 사람 안에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인지 사람의 애정을 늘 필요로 하는 강아지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안쓰럽기도 하고 이유 없이 짠해지기도 한다. 사랑을 듬뿍 줘도 왠지 부족한 것만 같기도 하다. 그런 맹목적이고도 순수한 사랑을 감당하기가 덜컥 겁이 나서 일까. 나는 내게 너무 종속되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하며 혼자도 즐거울 수 있는 고양이에 왠지 마음이 더 놓인다.



사실 나는 강아지스럽게 자라왔다.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연결되어 서로 챙기고 걱정하고 이런 것들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고 나도 자연스레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했다. 어쩔 때는 그 조절의 경계를 몰라 나 자신이 지칠 때까지 했다. 내 주변에는 자기 일들은 잘 하지만 뭔가 감정적으로 여린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의 감정에 대한 일종의 연대의식은 어린 시절부터 내게 꾀나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주 아기 때 나는 양말 하나를 쥐어줘도 몇 시간이고 혼자 재밌게 놀았다고 한다. 명상을 하다 보면 어릴 때 일도 (말 그대로 별안간) 어제처럼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하는데 외부의 자극 없이도 혼자 풍요롭게 놀았던 기억들이 조각처럼 찾아온다. 그런데 자라면서 나는 외부로 발산하는 시기의 나의 모습을 훨씬 더 크게 생각했고 그것이 나를 채우고 있다고 착각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들이 너무 좋다. 그럼에도 나는 내면의 탐구를 즐기고 그걸 재료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밖으로 무언가 전달하기 위해서 그만큼 내면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런 자각이 생기는 것에 더해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더 사랑하게 되기까지 지난 여행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영향은 참 컸다. 치앙마이에 있을 때 우리 아빠 나이쯤 되는 영국인 아저씨 닐에게 고민을 토로했다. 나의 질문은 이거였다. 대체 언제 난 내 컨텐츠로 ‘정착'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당시 나의 최대 이슈였다. 오랜 시간을 밖으로 다닐 만큼 다녔고 궁금한 것들을 배울 만큼 배우지 않았나 하는 머리의 생각들은 나를 조급하고 불안하게 했다. 씨를 열심히 뿌렸는데 아무 것도 자라지 않은 횡한 토양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힐러이자 상담을 하는 아저씨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랬다. "너는 정착하지 않아도 돼." 나는 그의 말에 그럼 어쩌라고요. 라며 나라 잃은 표정을 했지만 그 순간 내 영혼은 좋아 날뛰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 전에 벤치에 앉아 있는데 길고양이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내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몸을 비비고 벌렁 드러누워서 귀엽다고 해줘.하고 있다. 나는 이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쓰다듬다가 뭔가 줄 것이 있을까 가방을 살폈다. 슬프게도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게 없었다. 미안해. 고양아. 먹을 게 없네. 나는 내 커피를 마시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렇게 비벼대고 재롱을 떨던 아이가 미련 없이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뭐냐. 매정하게. 하면서도 자기중심이 확실한 고양이가 안심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은 것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강아지에서 고양이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강아지 가면을 쓴 고양이었던 것이고 이젠 가면을 시원하게 벗고 고양이로 날뛰기 시작했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나답게 매력 있는 고양이로 잘 살아 볼 테다.



나는 생각보다 강하답니다.





+첨언+ 나는 나의 평생의 파트너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싶다.

나는 혼자 있어도 충분히 재밌는데 너랑 있으면 조금 더 재밌을 거 같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