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 여성성과 자기표현 그리고 트라우마에 관해
얼마 전에 친구의 추천으로 넷플릭스에서 ‘그리고 베를린에서’(원제: Unorthodox)를 봤다. 주인공 에스티는 자유를 상징하는 뉴욕에 사는 사람이라고는 도통 믿기지 않는 외양을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뉴욕 윌리엄스버그의 하시디즘 공동체에서 자랐다. 이들의 모습은 종교적 규율이 일상의 모든 면면을 얼마나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이미 내면화한 개인은 그 이상의 것을 보기를 두려워할 뿐 아니라 그 속의 세계가 진실이라고 무서울 정도로 굳게 믿는다.
여자들은 결혼하고 나서 삭발을 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쓰거나 히잡 같은 수건을 머리에 쓰고 다닌다(-그러려면 머리는 대체 왜 민 건지-). 남자는 돼지 꼬랑지처럼 머리를 둥글게 말아서 (-무진장 더워 보이는-) 거대한 모자 양쪽으로 늘어뜨린다. 이거 뭐 일부러 서로 못나게 보이려고 작정하는 거 같다. 내 친구는 여기서 나오는 찌질한 남편(-부부 관계마저 엄마에게 보고 한다-) 때문에 보는 내내 짜증이 났다고 했는데 그 볼썽사나운 꼬랑지 머리가 화를 더 불렀다고 했다. 이곳에서 여성으로서 존립 이유는 아이를 출산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가치도 없어 보인다. 자신의 여성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 따윈 사치처럼 느껴지는 환경이다. 숨이 막히다 못해 슬펐다. 그런데 친구가 꼴배기 싫어 죽겠다고 한 그 찌질한 남자도 어쩌면 시스템의 희생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스템 이면을 볼 수 있는 ‘자신의 힘’을 완전히 상실한 그 눈(-그 먼 베를린까지 죽기 살기로 도망쳐 온 여자에게 너의 뱃속에 나의 아이가 있으니 집에 가자고 설득하러 온-)은 참 딱했다.
에스티는 베를린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음악원 친구들과 호수에 간다. 그들은 하나씩 옷을 벗고 과거의 상처가 무색하리만큼 아름다운 호수(-그 호수는 과거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장소임-)로 뛰어든다. 에스티는 옷을 다 입은 채로 그곳으로 들어가 옷보다 더 무거웠던 자신의 가발을 벗어던진다. 가발을 벗고 머리를 그대로 노출하는 건 그녀에게 옷을 다 벗고 들어가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물에 떠서 처음으로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며 내 쉬는 숨은 억압된 여성성에 대한 최초의 화해이고 자신을 스스로 껴안는 치유였을 것 같다. 규정된 여성성을 벗는 그 행동 자체에서 그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숨겼던 짧은 그녀의 머리는 독일에서 심지어 힙하다고 긍정적으로 인식되기까지 했다-)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음악 경력(-경력이랄 것도 없다-)으로 베를린 음악원에 오디션을 볼 기회를 얻는다. 망신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힘 있게 그 오디션장을 채웠다. (-그녀의 인생을 통틀어 남들 앞에서 처음 부르는 노래였다. 이 공동체에서는 여성이 노래하는 것도 금지한다-) 잘 부르고 못 부르고를 떠나서 그 목소리에는 뭉클한 희열이 있었다. 노래를 다 부른 그녀는 자신에게 놀란 것 같았는데 아마 그런 힘이 자신 안에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완전 똘아이 집단이네.. 어떻게 그러고 살아..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일상에 (-상대적으로 납득이 될 만해서 괜찮아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체 누굴 위한 규율인가, 규칙인가 하는 것들이 많다. 비단 어떤 특정 종교집단의 이야기만이 아닌 것이다. 나의 소설(-가제: 푸른 꽃의 춤-)에서 쓴 에피소드 하나가 불현듯 생각이 나서 덧붙여 본다. (-종교적 논쟁이나 비판을 위해 쓰는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나 어릴 때 왜 허구한 날 화내는 신부님이 있었던 거 엄마도 기억하지? 정말 별일 아닌데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언성을 높여가며 화를 냈잖아. 저렇게 화를 내다가 혈압으로 쓰러지시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기까지 했어.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첫 영성체’를 받고 떨리는 마음으로 난생처음 ‘고해성사’를 보겠다고 갔는데 그 신부님이 또 불같이 화를 내고 계시는 거야. 사실 그때 난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까지 가서 고할 만큼 큰 죄는 없는 것 같았지만 하라고 하니까.. '동생과 다섯 번 싸웠습니다. 엄마가 밥 먹으러 식탁에 오라고 하는데 빨리 가지 않고 늦게 가서 일곱 번 엄마를 속상하게 했습니다.' 뭐 이런 걸 이야기했던 거 같아. 날 지도해 주신 수녀님은 잘못한 '횟수'를 꼭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셨거든. 그래서 내가 몇 번이나 그랬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그때그때 그럴 법한 횟수를 지어서 말했어.
그건 그렇고 신부님이 당시 화를 내신 이유가 뭐였게? 죄를 다 고하고 나서 '이상입니다'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거야. 고해실 밖까지 나오셔서 겁을 집어 먹고 있는 친구를 기어이 불러내곤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마구 소리를 쳤어. “너는 그거 하나 기억 못 하는 바보냐. 대체 몇 번을 말해줘야 돼. 너 학교에서도 공부 못하지?” 라면서. 그 아이는 놀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끝내 그 자리에서 울었어. 안 그래도 겁이 많던 나는 덩달아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어. 정말 무서워서 집에 가고 싶었는데 바로 다음 차례라 가지도 못하고 속으로 '이상입니다' 이걸 까먹지 말자고 몇 번이나 되뇌고 들어갔는지 몰라. 너무 우습지 않아. 형식, 그게 뭐라고. 근데 더 웃긴 건 '이상입니다'를 얼마나 안 까먹으려고 노력했는지 내 죄가 뭔지를 까먹은 거야. 그래서 뭔가 다른 걸 급하게 지어서 말했던 거 같아.
대체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 건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가. 형식에 딱 맞춰 죄를 고하지 않으면 제대로 지도를 못했다고 신이 신부님에게 화라도 내는 걸까. 신부님은 반쯤은 벗어진 머리에 손을 짚으면서 지구의 종말이라도 마주한 것 같은, 그 정도의 깊은 절망감을 어린 꼬마인 우리에게 표현하셨어. 난 당시에 막연하게나마 성직자는 신의 사랑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그 생각이 좀 변했어.
또 하나 이 영화를 보며 생각해 보게 된 것은 트라우마를 대하는 집단의 방식이다. 홀러코스트, 그 끔찍한,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와 기억은 자손들에게까지 커다란 트라우마를 남긴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하시디즘 공동체에서 그들이 견고하게 만든 그 시스템은 어쩌면 과거 트라우마의 에너지를 먹으며 존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에서 여전히 과거를 산다.
그들은 해외로 여행을 가도 과거의 상처들이 남아있는 장소를 집요하게 찾는다. 역사를 기억하고 교훈을 되새기고 희생자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은 좋다지만 그들은 온통 ‘그것 자체’에만 매몰되어 있다. 실제로 조상의 묘지만 찾아다니느라 (-그 먼 곳까지 가서도-) 다른 데를 가볼 여유는 전혀 갖지 못한다. 더욱이 외부인에게서 관련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그들이 표출하는 그 감정에는 오랜 분노와 슬픔이 고스란히 있다. 마치 그들 조상의 아픔이 그들을 통해 계속 재생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과거와 화해하지 못했다. 진정한 용서를 통해 대를 이어 전해지는 그 고통을 자신이 정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렵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이다. 42년 유대인 학살을 최종 결정했던 장소 앞에 호수를 보며 에스티는 묻는다. 어떻게 여기서 너네는 수영을 할 수 있는 거냐고. 같이 온 남자는 말한다.
“Lake is just a lake."
어쩌면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 반대되는 것의 가치를 진정으로 알 수 있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것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그 가치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알게 한다. ‘나처럼 불행한 인간은 세상에 없을 거야’ 라며 언제까지나 자기 연민의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다면 더 좋은 것이 들어올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이 있기에 우리는 빛이 무언지 안다. 억압 속에서 자유의 가치를, 혼란 속에서 평화를 더 간절히 염원한다. 이번 생애서 ‘배가 덜 부르고 등이 덜 따숩다면, 혹은 정신적으로 너무도 괴로운 환경에 있다면’ 그만큼 축복받은 것일지도. 그걸 당당히 넘어선다면, 내가 원하는 그것이 왔을 때 그 가치를 더 크게 알아보고 소중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므로. 사랑만 가득 넘쳐흐르는 세상에 산다면 우리는 정말 그 사랑의 가치를 알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정말 좋은 것도 정말 나쁜 일도 없다는 걸 알게 돼 라던 누군가의 말이 맞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