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자꾸 글로 돌아오는 걸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사람 포함-)은 나를 글이라는 같은 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모든 것을 초탈한 듯 돌아다니면서도 아주 가끔은 영악한 한국적 습성? 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만큼 배웠으면 이제는 얼른 그걸 활용하고 써야 마땅하지 않겠니 라는. 많지도 않은 목돈을 해외에 뿌릴 만큼 뿌리지 않았니 라는. 나와 같이 요가를 열심히 했던 한 친구는 지금 스위스에서 요가 선생이 되어 있고 사운드 힐링을 같이 배웠던 캐나다 아저씨는 심리치료에 이를 접목하여 개인 세션을 잘하고 계시고, 치네창이니 레이키니 하는 것들을 배우며 인연이 된 사람들도 저마다 자신의 수업을 오픈하거나 이와 관련된 개인 세션, 강의 등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을 한국에서 어떻게 나답게 해 볼까 모색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변화하는 과정이 지나면 난 한결같이 오랜 집처럼 특별나 보이지 않는, 익숙한 그 글로 돌아왔다. 누가 엄청나게 응원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해도 티도 나지 않는 이 일은 모든 것이 연기처럼 아스라해져도 내 안에서 끈덕지게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 조각들이 어설프게 얼기설기 얽혀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이 되었는데 지난 몇 달 간의 변화로 그게 제법 유기적으로 꽉 맞게 맞춰진 퍼즐처럼 보인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뿌듯하다.
올해 초 치앙마이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난 이상한 꿈을 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들이 하늘을 붕붕 떠다니고 있었는데 나는 대체 뭔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그걸 보면서 어딘가로 향해 빠르게 걷고 있었다.(-꿈에서 나는 늘 뭔가 바쁘다ㅎㅎ-) 그 물체들 중 하나가 돌연 내 시야까지 슝-오더니 그 안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형체가 내게 물었다. 사람인지 동물인지 뭔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소리는 명확히 들렸다. 달랑 이 세 단어. "Can you write?" 뭐지. 순간 내 타이핑 능력을 묻는 건가 뭘 창작하는 걸 말하는 건가 이러면서 벙- 쪄 있는데 다시 그 소리가 들렸고 난 대책 없이 "YES"라고 '엄청 크게' 대답했다. 질문의 의도도 모르고 내가 뭘 쓸지도 모르는 마당에 이토록 시원스레 팍- 대답을 하다니.. 내가 미쳤나 하면서도 내 머릿속의 질문들을 한 번에 건너뛰고 나간 이 Yes는 너무도 나 같지 않은 단호함이었다. (-평소 같으면 집에 가서 고민 좀 해보고요.. 뭐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리고 난 더욱 대책 없이 뭔지 모를 그 물체에 망설임 없이 올라탔다.
이 요상한 꿈 이후였던 것 같다. 어떻게든 이 글의 완성을 보고 말겠다는.. 별난 끈덕짐이 '더' 생긴 것이. 누구한테 yes라고 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대답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할 것 같았나 보다.
책을 한 권 냈지만 내가 과연 글을 계속 쓸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가세요?"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운이 좋아 좋은 인연을 만나고 출판을 했지만 그건 뭔가 내 인생에 많은 이벤트들 중 하나처럼 느껴졌고, 어딘가 모르게 정상적인?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훌륭한 문장가도 아니고 꾸준한 열정이나 끈기도 없고 작가로서 좋은 덕목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내겐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 난데없는 Yes가 내 무의식 어딘가에 아로새겨진 건지 뭔지 무언가 계속 끄적이게는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글을 완성하는 동안만큼은 나로 너무 행복했다. 코로나 우울마저 잘 다독이게 했다. 이게 훌륭한 글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나는 이 글로 꽤 자유로워진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가 묻는 작가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어제 보름달을 보며 (-처음으로 좀 의지를 갖고-) 생각했다. 이제 막 완성된 이 소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이 글에 어떤 식으로든 영감을 준 나의 소중한 인연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볼품없이 아무렇게나 뭉쳐진 실타래 같지만 그걸 풀어내면 예상치 못하게 다른 모양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 끝은 어딘가로 또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너의 우울은 나의 우울과 그리 다르지 않으며 우리는 그 길에서 수없이 만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만남도 그렇게 어둠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풀었던 그 실타래가 서로에게 닿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서 그려지는 모든 이야기의 조각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의 재미난 변주들이었다. 시간이 아주 더 지나고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마침내 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나는 사랑을 배웠어.
소설, 푸른 꽃이 춤을 춘다(가제) 중에서
커버 사진; Paris, 20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