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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Feb 24. 2017

산티아고 길 위에서(14)

그 열네 번째 이야기,  '너와 나의 속도'





산티아고 길을 걷는 방식과 속도는 각자 다르다. 처음부터 일정을 길게 잡고 천천히 걷고 있는 사람도 있고 촉박한 일정으로 하루에 적어도 얼마 이상은 걸어야 한다는 확고한 목표 하에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난 처음부터 40일 정도의 기간 동안 산티아고 길 위에 있겠다고 생각했으니 30일 초반 정도에서 여정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시간적 여유가 많은 편이었다. 제일 조금 걸은 날은 첫날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해서 오리손이라는 피레네 산맥 중턱 어드매로 총 구간 길이는 8km였다. 전 날 잠 한숨 못 잔 데다가 첫날이라 그런지 꼴랑 8km를 걷고도 굉장히 피곤했고.. 20km 이상은 과연 내가 걸을 수나 있는 거리일까... 싶었고.. 이런 나날들이 앞으로 40 여일이 남았는데 끝까지 할 수 있을까... 자신감이 확 없어졌다. 괜히 할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온 것이 약간 후회가 되면서.. 포기하면 어딜 가 있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누구 말대로 일주일이 고비고 그것만 넘기면 저절로 잘 될 것이라는 말을 믿어봐야지 하며 애써 담담하려 해 보았다.





#1. 몰리나세카(Molinaseca)라는 마을을 만나기까지 한참 동안 내리막 길이 이어지는 구간이 있었다.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끊임없이 내려가는 구간도 정말 힘들다. 대체 언제까지 내려가야 되나 짜증이 날 정도로 긴 구간이었다. 지치니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도 정말 성의 없이 건네고 오직 마을 나오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걷고 있는데 누군가 옆을 스치며 "tired?" 한다. 대답을 하기도 전에 벌써 저 앞에 가는 그는 그 가파른 내리막 돌길을 스키 타고 내려가는 리듬을 유지하며 바람의 속도로 휙휙 가고 있는 것이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 경이로운 눈으로 봤다.



나는 그날 보통 도착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각에 몰리나세카에 도착했고 내리막에서 '스키 타던 그 남자'를 한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루마니아에서 온 그 남자는 하루 평균 40-50km는 거뜬히 걷는다 했고 최고로 많이 걸은 날은 70Km까지 걸었노라 자랑스럽게 말했다. 과연 인간 인가 하는 눈으로 다들 그를 쳐다보았고 오늘 40km 걸었다고 뿌듯해하던 미국 남자는 조용해졌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이 남자는 자신은 힘들면 절대 더 걷지 않는데 이게 가능하기 때문에 걷는 것뿐이라고 했다. 철인 3종이나 더 격한 도전을 하지 그랬니 할 만큼 800km 이건 뭐 금방 걷지 이런 느낌이었다. 다들 치열한 전투에 참전했던 사람들 마냥 여기저기 드러누워 있었지만 이 남자는 심지어 더 걸을 수 있을 만큼 몸이 가뿐해 보였다.  




70km를 걸었다는 사실을 못 믿자 그가 내게 보여준 증명 자료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구나 했다. 약간은 독특한 성격의 이 남자와 저녁을 함께 먹게 되었는데 하루에 20km 이상 안 걷는다는 내 원칙을 들으며 그는 무시하는 건 아니라면서도 자꾸 웃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니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잘하고 있는 거라고 격려를 보내주었지만 묘하게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졌다.


       










#2. 난 베드 버그에 물려 고생하는 일본 여자 M과 며칠을 함께 걸은 적이 있다. 그녀는 베드 버그에 물리기도 했지만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지 어느 순간부터 휘청거리며 불안하게 걸었다. 이 정도면 쉬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여러 번 그녀에게 말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고집은 엄청났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난 좀 더 쉬다 갈 테니 먼저 천천히 가고 있으라고 그녀를 보낸 적이 있는데 한 시간쯤이나 더 있다 출발했는데도 금세 그녀를 보게 되었다. 일부러 천천히 가며 뒤에서 지켜보니 거의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가고 있었고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를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쉴 것을 진심으로 권하고 있었다. 몸이 아픈데도 그렇게 꼭 걸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좀 미련해 보이기도 했지만 본인이 괜찮다는데 더 이상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같이 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나에게 굉장히 의지하고 있었고 내가 가려는 알베르게를 집요하게 함께 가고자 했다. 나는 솔직히 베드 버그에 물렸으면서도 가방이나 옷가지를 소독하지도 않는 그녀가 자꾸 나를 따라오는 것이 못내 맘이 편치는 않았다. 베드 버그가 전염병은 아니지만 왜 제대로 후속 대책을 세우지 않고 괜찮다고만 할까.. 얼굴과 손과 팔, 다리 전신에 물린 흔적들이 너무 선명한데도 그녀는 줄곧 베드 버그는 이보다 더 심한 증상을 나타내는 거라며 자꾸 현실을 부정하는 소리만 했다. 증상은 점점 심해졌고 나는 결국 그녀를 데리고 약국으로 가서 항히스타민제와 몸에 뿌리는 스프레이와 바르는 연고, 방역작업에 필요한 것 등을 구입시켰다. 그녀는 다행히 나았지만 며칠 후 베드 버그는 나를 찾아왔다.



서로의 다른 속도를 인정하며 걷는 길이 되어야 오래 함께 가도 지치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걸어야만 하는 M에 맞추어 느리게 걷는 것이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다. 특히 해가 강하지 않고 컨디션이 비교적 좋은 아침나절에 많이 걷고 빨리 쉬고 싶은데 천천히 걸어야 하는 것이 짜증 났다. 그래서 혼자 좀 빨리 가겠다고 앞서 가기도 했는데 아픈 애를 두고.. 정말 못 된 사람이 된 것 같은 죄책감에 다시 속도를 줄이곤 했다. 상대적으로 나보다 빨리 가는 사람들이 나를 배려하며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3. 축구 선수 출신의 동생을 길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도 여느 20대의 남자들처럼 평균 30km 정도에서 많게는 40km까지 걷고 있었다. 그와 몇 번을 같이 걸었는데 그는 내가 잘 걷는다며 매번 기운을 북돋아 주었고 그런 파이팅 탓인지 이 동생과 걸을 때는 평소보다 더 빠르게 다음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피드가 중요한 어떤 스포츠에서 보면 늘 앞에서 어느 정도 속도를 내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역할이 왜 중요한지 알 것 같았다. 동생은 고맙게도 다음 장소에서 기다려 주기도 하고 더 빨리 오라고 힘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더 빨리 갈 수도 있는데 나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본 여자 M과 같이 걸을 때 생각도 났기 때문이다.



비슷한 케이스로 탐 아저씨와 함께 걸을 때 그는 걷는 보폭도 가끔 내게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난 아저씨가 예전에 운동하다가 무릎을 다쳐서 수술했다더니 그래서 빨리 걷기는 힘든가 보다 하고.. 일부러 더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퍽이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것이.. 나와 함께 걷지 않을 때 그는 훨씬 더 빨리 걸어 다음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아저씨가 누가 누굴 걱정하느냐 하는 소리를 나에게 하고도 남았을 만한 오지랖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의 속도는 다르다. 걷기 시작했으면서 굳이 자전거 탄 사람의 속도를  의식하지는 않지 않는가.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 속도로 가면 된다. 잘 가고 있다.  







각자의 속도는 다 다르다. 즐길 수 있는 범위도 다 다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페이스를 무시하지 말자.

이것이 이 길에서 내가 느낀 교훈이다.


인생에 적용해 보아도 별 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방향을 맞추었다면 남이 나를 앞질러 빨리 간다고... 혹은 내가 너무 느려서 언제 도착할까 하며...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그저 자신의 속도대로 여유를 가져 보면 어떨까. 나도 길에서 느렸지만 마지막에 결국 산티아고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도착하지 않겠어요. 그냥 걱정 좀 덜하고 편하게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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