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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Feb 15. 2017

산티아고 길 위에서(13)

그 열세 번째 이야기,  '행복이란?'





당신은 언제,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 무어라 쓰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표적인 긍정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은 '행복은 좋은 유전자나 행운을 타고난 결과가 아니고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자신의 강점과 미덕을 찾아서 발휘하는 삶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으로 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너무 지당한 말이지만 먹고살기 바쁜 시대에서 자신의 강점과 미덕을 치열하게 고민해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발견했다 할지라도 그것에 확신을 가지고 덤벼들 실천력을 가지기까지는 또 무수한 리스크와 현실 조건들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래 역시 뭐 하나 쉬운 건 없어 라며 자조 섞인 한숨을 쉬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런저런 것을 떠나 잠깐 동안만이라도 내가 마냥 행복한 때를 그냥 한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 유난스럽게 본전을 계산하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꾸며낸 이상적인 상황 말고 내게 그저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해발고도 1,300m에 위치한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마을,

*빨래가 한방에 쫙 마를 정도의 강렬한 햇살, 쏟아지는 별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밤을 선물해 준 곳




난 산티아고 여정 중 평소보다 꽤나 자주 행복하다고 느낀 것 같다. 보통 때 같으면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어 전혀 만족감을 찾을 수 없는 일에도 수시로 그런 감정들이 생겼다. 푹 잘 자고 일어난 것도, 화장실에 잘 다녀온 것도, 매 끼니를 잘 챙겨먹을 수 있는 것도, 해가 뜨고 지는 것도... 여기에서는 다 큰일이고 감사할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가다가 난데없이 자빠지거나 몸 한구석이 탈이 나지 않고 내 두 다리로 마지막까지 걸을 수 있었다는 자체가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간 내게 너무 많은 것들이 주어졌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게 다 너무 당연했다’ 는 데 원인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감사할 필요조차 없이 너무 당연한 것이었고 나의 행복의 기준은 언제나 저 멀리에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길에서 날 행복하게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너무나도 단순한 이것들을 두서없이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적당히 덥고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씨, 아침에 출발하기 전 마시는 카페 콘 레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저녁시간, 유쾌한 대화, 맥주, 와인, 믹스 땅콩, 갈리시아 지방에서 제일 처음 먹은 뽈뽀(문어), 추울 때 먹는 스프, 병원을 개조한 알베르게에서 먹은 소고기스튜, 배고플 때 먹는 세상의 모든 음식, 해 질 무렵의 붉은 노을과 노을빛으로 물든 마을의 아스라한 모습, 깜깜한 밤하늘에 쏟아질 것처럼 빛나는 별들, 길 위에 동물들, 햐얀 뭉게구름, 나무, 꽃, 무지개...


화장실 가고 싶은데 바(Bar)가 나올 때, 친절한 로컬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았을 때, 혹은 거꾸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느낌이 들 때,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 들어주는 사람을 만날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샤워하는데 수압이 적당할 때(수압이 약한 알베르게가 은근히 많았다.. 한 줄기 여린 물살.. 씻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ㅠ), 샤워할 때 옷 거는 곳이 안에 있고 공간이 넓을 때, 베드버그를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청결하고 뽀송한 침대를 볼 때, 난방이 잘 될 때, 혼자 방을 쓸 때, 한 번도 안 깨고 푹 잤을 때,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벌떡 일어날 때(그런 적이 잘 없었다. 늘 전날의 여파에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런데 항상 신기하게도 가다 보면 또 멀쩡해진다), 빨래가 잘 마를 때(가끔 세탁기에 건조를 해도 왜 그런 건지 축축하게 나오는 경우 정말 속상하다), 지나가는 차에서 응원의 의미로 경적을 울리거나 손을 흔들어 줄 때, 덥고 지쳤을 때 나오는 벤치나 나무 그늘,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 다음 장소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는 느낌, 이제 더 이상 못 가겠다 싶을 때 나오는 마을, 시골에 타는 냄새, 아무 성당이나 들어가서 혼자 기도하는 시간, 느낌 있는 사진을 찍었을 때, 카페에서 하염없이 멍 때릴 때 등등   




따뜻한 사람들과의 대화/ 추울 때 먹는 따뜻한 스프




쓰고 보면 정말 소박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지만 그 길에서 이런 것들은 꽤나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러나 반대로 엄청나게 행복할 거라 기대했으나 그렇지 않았던 순간도 있다. 800km를 다 걷고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딱 도착했을 때가 그러했다. 물론 기쁘고 뭉클하고 여러 가지 벅찬 마음이 있었지만 그런 순간의 강렬한 감정은 또 금방 식었다. 누가 그랬듯 행복이란 결과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과정에서 느껴지는 거창하지 않은 그런 소소한 감정들인 것일까. 우리는 늘 뭐가 되어야, 이루어져야 행복하다는 가정을 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끼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나 역시 40여 일 넘게 걸어 도착한 마지막 골인 지점에서의 기쁨보다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보내던 저녁 시간의 만족감이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나를 보면서 새삼 작은 것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구나... 그런 감사함에서 비롯된 기쁘고 만족스러운 감정이 오랜만에 들었다.


                                       


지쳐서 그만 가고 싶은 순간, 마을이 딱 나타날 때





나는 카스트로헤리츠(Castrojeriz)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마을 초입에 있는 어느 바에 들어갔다. 사실  이곳에 유명한 한국인 셰프가 계시다는 정보를 길에서 들었고 이런 이유로 반드시. . 기필코. 여기서 저녁을 먹겠다 다짐하며 생장에서 나눠  알베르게 리스트에도 엄청나게   표시를   곳이었다. 그러나 중간에 계획이 틀어져 전날 그곳과 가까운 곳에서 멈추게 되었고 아쉽지만 이곳에서의 저녁은 포기해야 했다. 그러니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한국인 셰프님을 찾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고 그저 아무 바에나 들어가 점심이나 후딱 먹고 가야지 했던 것이다.


배낭을 던져 놓고 주문을 하러 갔는데 옆에 웬 한국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너무나 유창한 스페인어로 바의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배낭도 없고 그냥 여기 사는 사람 같은 차림새인데... 웬 동양인? 그것도 이렇게 시골에...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분은 약간은 어눌한 한국어로 한국인이냐고 내게 물었다. 난 순간 내가 원래 이곳에 들러야만 했던 그 이유가 생각났고 나도 모르게 "와, 셰프님 맞죠? 그 한국인 셰프님 맞죠?"라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렇다. 그분은 내가 찾던 한국인 셰프님이셨다. 아 그래도 이렇게 만나고 가다니... 참 운이 좋을 때도 있었다.








삼십 대 후반의 셰프님은 8살 때 부모님을 따라 스페인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바르셀로나에서 아주 잘 나가는 오너 셰프로 오래 일했다. 그러다 언젠가 산티아고 길을 걷게 되었고 그 계기로 바르셀로나의 생활을 정리하고 아주 작은 마을인 카스트로헤리츠에서 레스토랑을 열고 '일하고 싶을 때만 일을 하며' 인생을 즐기고 계신다고 했다. 일하고 싶을 때만 일을 할 수 있다니... 듣기만 해도 이 얼마나 설레고도 부러운 말인가. 돈도, 셰프로서 명예나 유명세도 가질 만큼 가지고 누려봤는데 모두 허무했고 오히려 그때보다 작은 시골에서 인생을 즐기며 사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분은 이렇게 평온한 삶의 패턴을 가지기까지 생각보다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셨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행복이 뭔지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큰 도시에서 유명 셰프로 사는 인생 대신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행복을 찾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전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것이었다. 남이 인정해 주고 대단하다 여겨지는 일이 아닌 본인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그런 뻔해 보이는 꼰대 같은 소리도 그분의 솔직한 삶을 통해 들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셰프님은 행복 강의를 해주신 것도 모자라 한국인의 정으로 맥주와 점심을 사주셨고 기꺼이 근처에 위치한 본인의 레스토랑 구경도 시켜주셨다.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레스토랑에는 그간 이곳을 스쳐간 사람들의 ‘한글 메시지’가 벽면 곳곳에 남겨져 있어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저녁을 먹고 싶어 온 거면 먹고 가라 했지만 난 앞서 가는 그룹과 너무 동떨어지기 싫었고 초조한 마음에 빨리 가야 한다며.. 다음에 오면 먹겠다는.. 그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내뱉고 일어섰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전날 너무 조금 밖에 걷지 못한 것을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세프님과 인사를 나누고 나와 무언가에 쫓기듯 한참을 걷는데 문득 그의 말이 생각났다. 대충 이런 요지였던 것 같다.  



저녁이 먹고 싶었으면 먹으면 되고, 좋은 장소가 있으면 하루 더 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여기까지 와서 뭘 얼마나 해야 하고 어디까지 가야하고 이런 목표에 얽매여 있는 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일행을 좀 늦게 만나면 어떤가. 원래 계획보다 좀 늦어지면 어떤가. 순간의 행복을 즐기고 누려라. 한국 사람들 보면 너무 열심히 사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서 까미노 길도 참 열심히 걷는 것 같다. 이 길을 걷는 동안이라도 좀 편하게 다니면 좋겠다. 마음 가는대로 하면서.



나는 그의 말에 그렇게 공감한다며 몇 시간 동안이나 고개를 끄덕이고서 행동은 또 비슷한 패턴으로 하고 있었다. 내가 정한 것들이 제대로 안 되면 퍽이나 불안해하면서.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했던 행복 역시 그리 거창한 무엇이 아니었다. 엄마가 남긴 시를 다시 적어 보는 것으로 아무 영양가 없는 행복에 대한 나의 글을 마무리하련다.

 

우리 엄마는 행복을 이렇게 생각했었나 보다.  





행복을 위한 하루




그대여,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을 떠올립니까

마음이 문을 열고

아름다운 세상을 담는 시간

기쁘게 해줄 한 사람

마음의 맑은 여백에 초대하십시오



단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해줄 존재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마음 안에 고이는 옹달샘

사랑의 샘물로 자라는 꽃입니다



그대여,

아침에 눈을 뜨면

투명한 햇살 한 줌

가슴속 곱게 무늬 져 번져오며

피어난 행복의 꽃들,

미소로 다가와 

손 내밀어 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EQvFGmi2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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