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되지 않는 하루,
그 즉흥성이 주는 무한한 경우의 수와 거기서 오는 뜻밖의 영감을 나는 좋아한다.
내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아하는 것 같다.
안전을 찾는 인간의 본능은 새로운 자극에 대한 열망과 부딪쳐 언제나 무언가를 만들었다. 레드존과 그린존 사이에 어디쯤에서, 불안해서 더 나가지 못한 그 쯤에서 내 영역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느려도 그게 조금씩 넓어지니 어느덧 돌아본, 불안하게 디뎓던 지나온 모든 길이 똑같이 푸르다.
예상치 못하게 너무 푸르러서 붉은 것들이 도통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지금, 그게 나를 좀 지치게 한다. 산티아고 길 거의 끝 무렵에 만난, 800km도 부족한지 거꾸로 돌아간다던 그 브라질 남자처럼 나도 거꾸로 걷는 것인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아주 비슷한 풍경을 본다. 그래서 내가 길에서 본 걸 주절거리기도 하고 타인을 그저 듣기도 하고 가끔은 과도하게 열을 내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 작용이 뭔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내게서 듣고 싶은 것 같은 그 이야기가 정작 내가 재미가 없음을 안다.
예전에 CJ에 트리트먼트를 낸 적이 있었는데 그게 뽑혔다고 면접을 보러 오라 해서 신기해서 가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하며 가는 길이 되게 설렜던 거 같다. 그때 거기 심사하는 감독님 한 분이 내 글이 너무 하얗다고 했나? 그래서 본인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럴람 뭐하러 불렀어. 당신 영화도 내 스타일 아니거든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글을 들여다보니 내가 봐도 재미가 없다.ㅎ
걷는 자여(여행자여),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또한 모든 것은 남습니다.
걸으니 곧 길이 되었습니다. (길을 만들며 지나갑니다.)
바다 위의 길...
걷는 자여(여행자여), 길은 당신의 발자국일 뿐
어느 다른 이의 것일 수 없습니다.
안토니오 마차도
나에게 아를에서 이 글을 써 주었던 그 사람은 자신의 길을 잘 만들어가고 있는지 불현듯 궁금해진다. 그때 그 남자는 스페인어로 된 책을 뒤적이더니 내게 몇 문장을 읽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더듬더듬 내 맘대로 읽고 있는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문맹이야 변태야 뭐야 싶었는데 나는 또 그걸 곧이곧대로 열심히 읽었다. 그러면서 그가 고쳐주는 발음 중에 뻔데기 발음이 되게 섹시하다고 느꼈다. >.< 이후 스페인 사람을 만나도 어떤 스페인 영화를 봐도 그의 뻔데기 발음에서 받은 감흥만큼은 아니었다. 여하간 나의 낭독을 다 듣더니 적어준 글은 그 책과 다른.. 이거였다. 종잡을 수가 없다. 책을 좋아하지만 본인 인생이 어떤 책 보다 흥미진진하다던 그 남자의 이야기는 재미있긴 했다.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그 감정이 전해지면, 나도 내 이야기를 더 쓰고 싶어 진다.
나는 요즘 주변인들에게 당신의 인생의 노래가 무어냐 묻고 다닌다. 그러다 합이 맞으면 상대의 노래도 들어보고 같이 불러보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서툰 사람들에게 어쩌면 더 서툴게 부르는 그 노래가 많은 것들을 대신 들려주기도 한다. 남들을 그렇게 시켜대면서 정작 나는 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지난달부터 나도 틈나는 대로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부른다. 얼마 전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녹음을 한번 해보았는데 이게 요정도 실력인 사람도 그냥 부르니 당신들도 함께 불러보자는 취지였다. 리플로 ㅋㅋㅋㅋㅋㅋ 이런 걸 주로 받을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하게 받은 내 친구의 메시지 하나가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음 그래서 결론은 의미를 그만 찾고 내 이야기를 계속하련다. 의미를 안 찾는다고 하면서 또 찾고 있었나 보다.
그나저나 이 친구는 스위스로 돌아가서 웬일로 잘 있나 했는데 얼마 전 난데없이 그리스라고 했다. 역시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죽이 잘 맞나 보다. 이 시국에 다른 행성에 사는 듯 잘도 다닌다.
다음 노래로 저는 선우정아 님의 고양이를...해볼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존박 님의 그 노래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