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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Jan 29. 2017

산티아고 길 위에서(11)

그 열한 번째 이야기,  '안녕, 엄마'




산티아고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생의 엄청난 법칙이라도 발견하게 될까? 아니면 모든 것에 초연할 수 있는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건 아닐까?

파울로 코엘료처럼 길에서 영감을 받아서 대작이라도 쓸 수 있으려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누구처럼 영혼이 통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 그곳에 정착하게 되려나?


그러나 결론적으로 드라마틱한 뭔가는 없었다. 대신 지겹도록 나 자신을 많이 돌아봤으며 남의 이야기에 평소보다 귀를 많이 기울인 결과로 타인을 통해 인생공부는 많이 한 것 같다.  



산티아고 길의 마침표는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는 대성당 앞이다. 그곳에 도착하면 그 간의 다사다난한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좌르륵 펼쳐지면서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같이 고생한 사람들과 얼싸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그런 장면이 그려지지 않는가.

그런데 생각보다 난 담담했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기에 기쁨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점에 엔딩크레딧이 올라오지 않는다. 삶은 지속되고 있고 당장 그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감동과 환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격한 포옹을 나누며 그간 일들이 다 생각나서 나 역시 뭉클하기도 했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감사할 일이었다. 중간에 아쉽지만 포기하거나 떠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음에도 웬일인지 멀쩡하게 잘 걷는 내 자신을 보면서 가끔 신기하기도 했었다. 이 길을 위해 누구는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했고 또 어떤 이는 주말마다 산에 가서 맹훈련을 하고 왔다 했지만 당시 난 에너지가 바닥을 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구하려는 노력은 뒤로한 채 될 대로 돼라 분위기로 그냥 갔었다. 그래도 이렇게 용케 마무리는 짓는구나 하며 감회에 젖어 공사 중인 성당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같이 도착하여 들뜬 사람들 무리에서 수도 없이 사진을 찍히다 보니 슬픈 감정까지 갈 사이는 없었다. 그저 생각보다 내가 좀 튼튼한가보다 하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다.




공사 중인 산티아고 대성당 전면부



드러누워 있는 순례자들, 저렇게 한동안 혼자만의 감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위)/ 산티아고 순례자를 위한 향로 미사*(아래)


(*산티아고 대성당 순례자를 위한 향로 미사)



산티아고 대성당에는 매일 정오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행해진다. 미사 전 당일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사무실에서 그날 집계한 것을 토대로)의 국적과 인원를 발표하고 미사가 시작되는데 운이 좋으면 사진처럼 향로 미사를 볼 수도 있다. 보통 향로 미사는 금요일에 하는데 단체로 얼마 이상 기부를 할 경우, 특별히 해당일이 아니라도 향로미사를 집전하기도 한다. 엄청난 무게의 향로를 대여섯 분의 수사님이 온 힘을 다해 직접 줄을 당긴다. 거대한 향로가 앞뒤로 진자운동을 시작하면 연기가 제대를 가득 채운다. 채우고 퍼지는향, 빛 그 광경은 실로 장엄하다. 예전에는 오랫동안 걸어 온 순례자들의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이렇게 했다고 하는데... 취지가 어떻든 향이 퍼지며 모두를 축복하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기쁨을 다 나눈 후 다음으로 순례자가 할 일은 완주 증명서를 받으러 사무실로 가는 것이다. 사무실이 성당 안에 있거나 옆에 딱 붙어 있는 건 아니고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따로 건물이 있다. 나는 증명서를 발급받아 나오다가 입구 맞은편 끝에 자그마한 소성당을 우연히 발견했고 일행을 보내고 이끌리듯 그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잔잔하게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오른편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 아래에는 기도하고 싶은 내용을 적어 넣도록 작은 함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종이와 펜을 가져다가 내가 바라는 기도를 찬찬히 적어 보았다. 쓰다 보니 눈물이 났다. 도착해서 성당을 바라보면서도 울지 않았는데 막상 글로 적으니 눈물이 났다. 엄마의 영혼이 아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남은 가족들을 떠올리며 적었다. 다 쓰고 잘 접어서 함에 넣고 보니 십자가 아래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흑백 사진이었다. 그곳에는 고인이 된 사람(강아지도 있었다)을 추억하는 물품이나 사진들이 놓여 있었는데 눈에 띄게 젊은 그 여자의 사진에 계속 시선이 갔다. 고인으로 추정되는 그 여자의 영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다가 그곳을 나왔다.







며칠 후 나는 산티아고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묵시아(Muxia)라는 곳에 갔다. (여기까지 걸어가는 분들도 있으나 난 당당히 버스를 탔다.) 세상의 끝으로 알려진, 산티아고의 피날레를 장식하러 많이들 가는 피니스테레(Finisterre) 대신 좀 더 조용하고 운치 있는 해안 마을인 묵시아를 선택한 건 참 잘 한 것 같았다. 난 이곳에서 여정의 첫날 내가 만났던 인연들도 다시 만났고 우리는 'Il mondo'가 흘러나오던 한 레스토랑에서 감탄을 연발하며 길었던 여정을 함께 돌아보았다.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묵시아(Muxia) 마을 전경




그런데 사실 난 묵시아에서 산티아고 여정을 정리하는 것 말고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여행 내내 들고 다녔던 엄마의 사진을 놓고 오는 일이었다. 여정의 중간이나 마지막에 어딘가에 이 사진을 두고 오는 것으로 뭔가 내 마음에서 확실한 이별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고 묵시아도 그런 장소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내가 엄마를 떠올리며 더 이상 슬퍼하지 않고 엄마를 잘 보내주어야 엄마의 영혼도 행복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바람이 휘몰아치는, 대서양을 마주한 그곳에 엄마를 차마 두고 올 수가 없었다.







다음날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온 나는 불현듯 순례증을 받았던 사무실 앞 소성당을 떠올렸고 동시에 아름답게 보였던 그 젊은 여자의 사진도 함께 생각났다. 엄마를 거기에 모시고 오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음악이 조용히 흘러나오고 평화롭고 고요한 성당 안은 엄마가 제일 좋아할 만한 장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미션을 수행하려고 마음먹은 당일, 공교롭게도 같은 숙소에 아는 동생과 함께 나오게 되었는데 엄마 사진을 놓으러 간다는 소리는 못하고 그냥 사무실 근처 소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싶다고 했다. 그걸 알 턱이 없는 그는 시간이 많다며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가는 길에 난 지인들에게 선물할 산티아고 리쿼를 몇 병 샀는데 고맙게도 그걸 들어주겠다면서. 병이 이뻤는데 사실 어지간히 무겁긴 했다(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일부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난 성당 근처까지 다 와서 말했다.

"뭐 좀 놓고 올 게 있는데 그냥 혼자 갈게"

난 나름 발랄하게 웃고 떠들던 유쾌한 이미지로 남고 싶었지 갑자기 사연 많은 슬픈 누나가 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나의 그 발언은 대체 뭐 길래 그러냐며 한층 더 궁금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유발했고 나중에 혼자 다시 가서 확인해 보겠다는 무서운 농담을 들었다. 나와 같은 동네에 오랫동안 살았던 이 동생은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았고 사무실 앞 바에서 맥주를 함께 마시는 것으로 지연(地緣)의 마지막 정을 나누었다. 당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만우절 뉴스 같은 이야기들이 바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우리는 트럼프를 안주 삼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하나도 생산적이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을 떠들어댔다.


동생이 가고 나는 혼자 성당으로 갔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많은 사람들로 넘쳐 나는데 반해 이곳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지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엄마 사진을 꺼내 그 젊은 여성 옆에 방향만 달리해서 올려놓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늘 소녀같이 고왔던 엄마가 거기에서는 환하게 웃고 있길. 그 영혼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최고로 평안하길. 신이 있다면 우리 엄마를 잘 지켜주시길. 그리고 나와 우리 가족들 걱정하지 말고 좀 이기적으로 행복하길.    




 



엄마 없이 처음 맞이하는 설 연휴다. 지난번 추석부터 명절이 이런 느낌으로 내 인생에 다가올 줄은 몰랐다. 엄마가 당연하게 했던 것들이 너무나 큰 빈자리로 다가온다. 한편으로 난 엄마처럼 그렇게 현명하게 멋지게 다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지기도 한다. 잘할 줄 아는 게 없는데 나이만 먹은 느낌이다. 오늘따라 엄마와의 대화가 참 그립다. 엄마가 일본에서 내게 써줬던 시를 올리는 것으로 오늘의 허전함을 달래 본다.




나를 닮은 딸
- 일본 어느 온천에서  

 
 
뿌옇게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로
생긋 수줍어 웃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워 바라보고 있으면  
그 옛날
어미 모습 되살아납니다

운명으로 만나 끌어안고 있으니  
홀로 있어도 홀로 있는 것이 아니며  
멀리 있어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깊어가는 밤 은은한 별빛처럼     
눈 속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사랑입니다




해가 질 무렵 산티아고




https://www.youtube.com/watch?v=oBKpJiVEcnU

박효신,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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