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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Jan 19. 2017

산티아고 길 위에서(10)

그 열 번째 이야기,  '길 위의 커플들'



혼자 왔니?


산티아고 길에는 혼자 온 사람들이 참 많다. 여행의 특성상 홀로 걷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오기는 하지만 모든 여행이 그렇듯 혼자 가도 정말 혼자인 것은 아니다. 어디 무인도라도 가면 모르겠지만 어딜 가도 사람은 있고 그 안에서 유독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들을 찾기도 한다. 800km 내내 혼자 걷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묵언 수행을 한다던가 개인적인 이유들로 작정하고 혼자 걸을 수는 있다) 누군가 외롭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이 길을 걸을지 말지 망설인다면 그냥 가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프랑스 길에는 사람들이 늘 있다.  



반면 같이 온 커플들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은퇴 후 함께 여행 삼아 이 길을 걷는 부모님 나이 때의 어르신 분들도 많았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부부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갓 결혼한 커플이 신혼여행으로 이 길을 걸었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는데.. 그들의 용기가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귀국해서 따로 들어오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물론 그랬다면 기사도 안 났겠지만) 사실 그냥 편하게 하는 여행에도 돌발 변수가 많고 정말 배려를 했지만 사소한 타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왕왕 생기기 마련인데.. 많은 체력적 부담을 안고 가는 이 여행은 오죽하겠나 싶어서다. 그러나 그건 나의 기우일 뿐 뉴스 기사로 보기엔 그들의 사랑과 신뢰는 한층 더 굳건해진 듯했다.


나는 이 길에서 다양한 커플들을 보았는데.. 때로는 '그래 혼자 온 게 나았어'라고 생각할 만큼 '처절하게, 아주 다시는 안 볼 듯' 싸우는 사람들도 보았고 정말 이렇게만 평생 산다면 저들은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가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이상적인 커플도 보았다.



그중 결혼 8년 차가 된 한국인 언니 오빠 부부는 꽤 오랜 시간 나와 함께 걸으며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했다. 언니 오빠는 결혼한 지 꽤 되었는데 아직 아이가 없어서 고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없기에 이런 여행들을 계획해서 같이 다닐 수도 있는 거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지치고 짜증 나서 싸울 법도 한데 이들이 싸우는 모습은 적어도 내가 본 적은 없었고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다. 이 길에서 정말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냐고. 그런데 놀랍게도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나에게 그들은 서로 더 노력한다는.. 그런 뻔한 답을 들려줬다. 나는 혼자 걷다가 힘이 들면 심지어 나 스스로에게도 짜증이 올라오던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그런 비법이 있다면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 길에서도 맨날 아름다운 나날들이 펼쳐지는 건 아니어서 화가 날 만한 상황은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시로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둘은 굉장히 노력하고 있었다. 서로의 단점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기에 웬만하면 마음이 상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으려 했다. 다소 성격이 급하고 약간의 시니컬함이 있는 오빠를 언니는 매번 나긋나긋한 말투로 잘 설득하고 달랬고 (-나는 가끔 그들이 위기의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아 그랬어요- 저랬어요-' 하며 존댓말을 쓰는 걸 보고 놀랐다-) 언니의 감정적인 부분이 터질 때는 오빠가 듬직하게 잘 리드했다.



함께 걷는 것이 참 보기 좋았던 커플




한 번은 산티아고의 여러 가지 길들(-산티아고에 도달하는 길은 출발지에 따라 여러 루트가 있다-)을 다 섭렵하신 아버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길에서 별 부부가 다 있다며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님은 어느 날 길에서 참혹하게 싸우는 젊은 부부를 만났는데 다툼 끝에 분을 삭이지 못한 여자가 가시덤불에 가서 혼자 뒹굴었다고 했다. 가시가 온몸에 박히고 긁히는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시는데 나는 웃을 일은 아니지만 자꾸 웃겨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남자가 그런 와이프를 그냥 두고 홀연히 가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아버님이 그 여자분을 도와주셨다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였다. 정말 별 일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나이의 어르신 내외가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걷고 있는 참 보기 좋은 그런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 싸우시고 얼마나 억울하셨는지 나에게 답답함을 토로하는 어머니도 계셨다.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감동을 느낀 적도 있지만 여기까지 와서도 매번 저녁식사를 차려달라는 아버님 때문에(주방을 쓸 수 있는 알베르게가 많아서 장을 봐서 직접 요리를 해 먹을 수도 있다) 외식?을 좀처럼 못하고 계신 어머니도 계셨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나는 한 알베르게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식사 후 그런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고 돌아가며 자국의 노래를 하나씩 했는데... 난 너무 부르기 싫어서 어디 아픈 척이라도 하고 들어가 쉴까 싶었다. 거기다 한국인은 나 밖에 없었는데... 앤소니홉킨스를 약간 닮은, 기침을 너무 하시던 한 아저씨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한국 노래'라고 티테일한 요청까지 해서 더 들어가 쉬고 싶어졌다. 그리고 누군가는 웃으며 '아리랑'은 금지라고 했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이 길에 있었으며 그중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리랑을 불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엄습해 오는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그 당시 듣고 있던 노래 리스트를 빠른 속도로 훑어보았으나 내가 소화할 만한 곡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로이킴의 '어쩌면 나'가 눈에 들어왔고 뭔가 편하게 들렸던 느낌이 나서 나도 모르게 그걸 부르겠다고 하고 일어섰다. 약하게 자체 반주를 틀어놓고 부르는데 부르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내 앞에는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영국 할머니가 계셨고 그녀의 말 없는 응원에 힘을 내어 어찌어찌 한 소절을 불렀으나... 다들 무슨 장송곡이나 들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영국 할머니는 다정하게 웃으며 'lovely'라는 말을 건네셨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셨다.

     

나의 애절한 퍼포먼스 이후에 할머니의 옆 자리에 할아버지가 일어나셔서 'Quando, quando, quando'를 열창하셨다. 나이가 드시니 이곳저곳 아픈데도 많아서 하루에 많이 걷지 못한다는 할아버지는 노래를 부르시는 순간만큼은 청년처럼 멋져 보였다. 비록 바이브레이션이 과도하게 들어간 노래였지만 가사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어인 꽌도꽌도꽌도가 너무나 멋있게 들렸다. 잘 불러서가 아니라 진심이 담겨 있기에 아름답다는 느낌이었다. 이 이야기를 적는데 얼마 전 갔던 내 친구 K의 결혼식이 떠오른다. 그 결혼식에는 지인의 축가에 이어 신랑이 축가를 한 곡 더 불렀다. 차-암 열심히 불렀다. 친구가 지 욕심을 채우려고 억지로 신랑한테 부탁한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원래 잘 부르는 사람이 결코 아닌 듯했다. 그러나 내가 들은 어떤 축가보다 감동적이었고 진심이 전해졌다. 무엇보다 친구가 행복하게 장단까지 맞추고 있어서 그 모습이 참 신선하게 사랑스러웠다. 




내가 노래를 부른 알베르게는 아니고, 티타임과 음악이 있던 라바날델까미노(Rabanal del Camino)의 어느 알베르게


El brougo 알베르게 앞, 노부부/ 인생의 내 편을 가진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https://youtu.be/HmxGxzY-iqg

Quando, quando, quando, 'Michael bu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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