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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두려워진 걸까

by Iris K HYUN




며칠 전 나는 파쿠르(Parkour)*를 접했다. 이 명칭을 처음 본 건 내게 다양한 자각을 주신 한 선생님의 블로그를 통해서다. 프랑스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어라 이게 프랑스어야 하는 생각에 더해 지형, 지물을 아무렇지 않게 휙휙 뛰어넘고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위험한 스포츠 정도로 인식되었다. 선생님은 그 정도의 신체가 되시니 하셨을 거야 하면서. 그런데 얼마 전 선생님을 통해 파쿠르 장인이신 김지호 코치님이 제주에 오실 일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고! 아 드디어 배워 볼 기회가 생겼어하며 너무 설레었다.


* 파쿠르는 1980년대 말, 프랑스 파리 인근 외곽도시에 거주하는 소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민자들이 대거 모여사는 이곳에서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다양한 실험들을 하며 훈련해 보던 소년들에게서 여러 가지 움직임들이 탄생했고 레이몽 벨에 의해 수련체계, 명칭(Parcours; 길, 코스, 여정)이 갖추어졌다고 한다. 이후 아들 데이비드 벨이 자신만의 고유한 움직임과 철학을 더욱 드러내고자 하면서 명칭이 Parkour로 변경되었다고.(K로 바꾸고 s를 떼어버린 의도는 뭘까?) 당시 9명의 청소년들이 결성한 야마카시(Yamakasi) 팀은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으며 우리나라 파쿠르 1세대 장인인 코치님의 시작도 이 영화에서 출발했다고 함. 파쿠르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은 이쪽으로 @jiho | Linktree



https://youtu.be/DrWHaFy5IiA

장애물이 곧 길입니다.



예전에 프랑스에서 지형, 지물을 막 타 넘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순식간에 이동하는 사람들을 본 기억이 있다. 내가 본 그것이 파쿠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가볍게 슝슝 움직이지 하면서 감탄했었다. 그리고 저러다 잘못해서 다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거의 동시적으로 들었다. 별안간 그대로 맨땅에 떨어지거나 다리가 휙 꺾이는 상상이 되면서 내 몸도 아니지만 찌릿한 것이 공포스러웠다.



왜 두려울까?


코치님께 수업을 받으면서 드는 질문이었다. 나는 초초초보자이니 어려운 걸 하는 것도 아닌데 요기서 저기 건너는 것도, 그리 높지 않은 데서 뛰어서 착지하는 것도 순간이지만 올라오는 두려움이 있었다. 사실 두려움의 사인이 있기에 우리가 그에 따라 판단 사고를 교정해 나가는 것이겠지만 뭉게구름처럼 뭉글뭉글 솟아나는 그 두려움에는 실체가 없는 그런 막연한 거품도 있는 것 같다. 마치 손님 온다고 대접 차원에서 짜이를 끓였는데 젓지 않고 냅둬서 부글부글한 거품이 생겼고 그걸 다 걷어내고 컵에 부어보니 정작 반 컵 정도 차는.. 그런 상황. (그 손님은 많이 주는지 알았는데 겨우 이거 만든 거냐고 뭐라 그랬다ㅡ.ㅡ;)

어릴 때 사촌들이랑 동생이랑 놀이터에 가서 단계를 높여가며 높은 데서 뛰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가장 높은 곳은 어린이 수준에서 진짜 높았고 거기서 뛰어내리면 발바닥과 발목을 통해 전해지는 찌릿한 고통이 있었다. 그럼에도 무슨 정신인지 계속 올라가서 뛰었다.ㅎ 뛰기 바로 직전까지는 두려운데 자꾸 뛸수록 마치 내가 고양이가 돼서 발목이 덜 아픈 지점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양이가 되고 싶은 거였나;;) 당시 죽어도 뛰기 싫다는 사촌에게까지 우린 이런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며.. 뛰라고 했던 것 같은데...ㅎ 거기에 반도 안 되는 높이에서도 지금은 왜 두려운가 말이다. 몸은 커졌는데 두려움은 그 몸보다 더 커졌다.




그라나다에서 줄 타던 남자, 계속 넘어지면서도 일어나 줄에 올라갔다. 알함브라 궁이 멋지게 조망되는 곳인데 궁보다 이 사람을 더 쳐다봤다. 그 반복되는 행위에 경외감이 느껴졌다랄까




나는 심각하다.


어른이 되면서 심각해졌다. 게임 같던 놀이 같던 세상은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끝장나는 살벌한 판이 되었다. 오징어 게임처럼.(-아직 안 봤다. 예고편만 봤다-)

괜찮아. 해봐도 돼.라는 것보다 하면 안 돼.라는 것이 더 많아지면서 내가 뛸 수 있는 판의 크기도 점점 줄었다. 너는 딱 요 구역 안에서만 예쁘게 잘 움직이렴.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모든 사람이 평온할 거야. 하는 암묵적 기원이 체화되었다.

다시 어린 시절 에피다. 한 번은 주차하지 말라고 세워놓은 구조물 위에 올라가서 놀다가 바닥에 뚝 떨어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얼굴로 냅다 땅을 들이박았다. (-나는 머리가 무거운지 철봉에서 떨어져도 얼굴로 떨어졌다-) 엄마는 어디 가시고 당시 우리 집에 놀러 오신 외할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쏜살같이 뛰어 오셔서 내 머리를 잡고 눈 위쪽을 손으로 꽉 누르셨다. 병원을 가는 동안 어찌나 쌔게 누르시는지.. 피가 안 통해서 지혈은 잘 되겠다 싶었다. 할머니가 계속 큰일 났다 여자애 얼굴이 이래 가지고 어쩌냐.. 진짜 큰일이네.. 하시길래 나는 그 부위가 찢어졌나 보다... 내 얼굴이고 할머니 손이고 완전히 피떡이겠네... 하는 생각에 두려워져서 멀쩡히 앞을 볼 수 있는 눈까지 감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 욱신욱신 아주 아팠다. 병원에 도착했고 엄마까지 온 후 의사가 할머니 제발 손 좀 떼보시라 해서 손을 떼셨는데... 거기엔... 민망할 정도로 참으로 미약한 상처가 있었다. 꼬메고 뭘 할 필요도 없는 찰과상. -.- 아 이 어찌 희극이 아니리오..... 부끄러움도 잠시.. 언제 아팠냐 싶게 아프지 않았다.


두렵다고 설레발치고 도망가려는 마음이 언제나 두려움을 더 크게 만들었다. 실체를 보지 못한 무언가는 항상 더 두려웠다. 나에게는 외로움도 그런 것 중 하나였는데 그것을 덮으려고 했던 수많은 것들이 항상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외부적으로 내가 가장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난 더 허하고 외로운 걸 보니 그걸 다룰 나만의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는 절실함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난 어릴 때 내가 가지고 놀던 놀이 중 하나, 글쓰기, 그걸 꺼냈고, 그게 내 인생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었다.


김지호 코치님은 두려움은 한 번에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두려움은 언제나 있다고 했다. 그토록 오랜 수련을 하고 같은 동작을 셀 수 없이 하셨을 분이 이런 말을 하시니 어쩌면 그건 없애는 게 아니라 바로 보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힘, 그건 하루아침에 뚝딱 생겨나는 것이 아닌 건만은 확실하다. 덮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집요하게 보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파쿠르는 두려움을 없애는 운동이 아니라 그것과 마주하여 다음으로 가게 하는 힘을 주는 것 같다. 가보면 또 있겠지? 두려움. 그래도 앞으로 가는 거니까.



그러면 왜 우리는 그토록 심각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잃을 게 많다고 생각해서? 그렇담 나는 무얼 잃는 걸 두려워하지?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 이후로 내가 움켜쥐고 있던 것들이 뭐 그리 대단한 거도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부터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진 것 같다. 그것들이 소중하지 않아서는 아니고 새로 경험할 것들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라는 거다. 여기서 삶이 끝난다고 할 때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이 모든 것에 미소가 지어지고 흐뭇해진다면 그건 반드시 지켜야 할, 내가 걸어야 할 길이 아닐까 혹 그게 아니라면 다른 길을 탐색해 보는 것에 인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제고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파쿠르를 하고 떠오르는 이런 단상들은 일대일 수업 후 코치님이 아이들과 하시는 수업을 보면서 정리가 된 것 같다.


저 나이 때 세상은 그렇게 두렵지 않았던 거 같아. 왜 그런 거지? 쟤네들은 운동한다기보다 재밌게 참 잘 놀고 있잖아.


놀고 있는 아이들이 참 귀여웠다. 나도 오랜만에 아이처럼 놀았던 느낌을 가질 수 있어서 기뻤다.

월런(wall run)을 하면서 아이들이 서로 도와서 당겨주고 밀어주고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나를 믿고 타인을 믿을 때 다음으로 갈 수 있어.라는 주제의 작은 연극을 본 것 같았다.





다음 날, 예상대로 삭신이 쑤시는데.. 기분이 좋다. 나는 많이 움직이고 싶었나 봐.



커버 사진: Arles, 2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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