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린 춤을 추었다
광야에서
누군가 물었다
누군가는 땅을 파았고
누군가는 흙을 쌓았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누군가는 돌이 되었고
누군가는 풀이 되었으며
누군가는 누군가가 되었다
광야에
누군가를 묻는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 묻는다
요즘 나는 한 모임에서 주역을 함께 들여다보고 있는데 참으로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세상의 흐름 속에 내 꼴을 돌아보게 할 뿐만 아니라 내가 가야 하는 방향도 스스로 짚어볼 수 있게 이끈다. 오늘 선생님은 이해와 공감의 차이가 뭐냐고 물으셨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나도 그 상황이라면 그럴 법하지.라고 나를 대입해 상대를 읽는 것이 공감이라면, 이해는 그 사람의 텍스트 자체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을 열어 들여다 본대도 그 사람의 사고 체계나 삶의 방식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그 사람을 그의 텍스트에서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어쩌면 공감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비록 우리가 공감을 못하더라도 이해를 한다면 어떤 작용이 일어날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어떤 행동을 내가 규정하고 교정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 교양 있는 척, 짐짓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지언정. 내가 편견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하고 상대와 환경을 평가하는데 에너지를 쏟는다.
와 여자가 아깝네. 남자가 저런 꼴인데 왜 사귀냐. 참 불쌍하네.
난 착하고 여리고 상처 받기 쉬운데 저들은 나에게 아무렇게나 막 말해. 사람은 당연히 예의가 있어야지. 참 못 됐어.
저 사람은 말을 잘하는 거 보니까 사기꾼 같아.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조심해야 돼.
요건 지난주에 타인의 이야기에서 내가 들은 것이다.
자신의 텍스트에서는 무진장 거슬리는 것이지만 상대의 텍스트에서 그건 그냥 그런 것이다. 내 시야가 넓어지면 그걸 그대로 볼 수 있는 이해의 범위가 조금씩 넓어진다. 이런 말을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어렵지만 그의 텍스트에서 그걸 인정하고 갈 수 있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착함을 강함의 반대로 자꾸만 읽는 경우 좀 안타깝다. (-나도 예전에는 그러하였기에 그게 더 잘 보이기도 하나보다-) 이럴 경우 자신의 약함을 착함으로 정당화하느라 정작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뒷전일 수 있다고요.. 누가 그랬다. 강한 사람은 착하기도 쉽다고. 내공이 쌓여 내면이 강한 사람은 뭔들 어려우리. 내 이상적 모습은 내면은 단단한데 겉은 젤리처럼 말랑말랑, 초콜릿처럼 사르르한 그런 것이다. 요렇게 되고 싶다!
요즘 나는 작사 작곡을 해보고 있다. 제주에 감사하게도 좋은 문화 프로그램이 참 많다. 작사를 예전에 해본 적이 있는데 신났던 기억이 있다. 그 느낌을 되살려 볼까 해서 갔는데 선생님의 따뜻한 지도에도 불구하고 작곡은 참으로 어렵다. 가사를 살리기는커녕 어찌 된 것이 자주 초라해지고 만다. 0.0 베토벤이나 되는 거 같은 얼굴로 한동안 인상을 쓰며 고뇌했건만 코드 반주로 입히니 어라 이게 뭐람. 이런 느낌이 아닌데. 한다. 불후의 명곡을 남긴 사람들이 더욱 존경스럽다. 그래도 내 글에 음이 하나씩 얹어져 흘러간다 상상하며 쓰니 매번 더 즐겁다. 끝나는 날까지 최선은 다해볼 것이다!
아래의 가사는 얼마 전 쓴 거다.
바람 불어와 얼굴을 스치면
하지 못한 말에 길을 멈춰서
고개 들어 가만히 그 소리 들으면
문득 익숙한 향이 지난날을 데려와
우리는 어디쯤 있니. 나무는 홀로 춤을 추는데.
니가 거칠게 나를 휩쓸어
내 안에 모든 걸 쓸어간대도
그때도 난 널 반겨 안았을 거야
우리는 어디쯤 있니. 나무는 홀로 춤을 추는데.
보고 싶을 거야 대신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너를 만나 기뻤어. 아주
나는 왜 말하지 못했나
우리는 어디쯤 있니. 나무는 홀로 춤을 추는데.
돌고 돌아 우연히 다시 스치면
그땐 말할게. 너를 만나 기뻤어.
우리는 어디쯤 있니. 난 여기서 춤을 출래
때가 되면 찾아와 날 더 멀리 날려줘
https://youtu.be/XV0U3_h4k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