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나의 순수한 욕망이 무엇인지 알고 제대로 쓰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라캉님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하였지만 이 말을 처음 들었던 이십 대에 난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고 생각했다. 그 수많은 버킷리스트와 다짐들이 타인의 욕망의 반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어쩌면 이렇게도 세련되게 타인의 욕망을 내 것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인지, 나 스스로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것인지. 그래서 과거 한동안은 타인의 인정이 없는 기쁨은 결코 불가능한 것인가, 나란 인간은 그것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나. 생각해 보았더랬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정말 제대로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개인적으로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자체도 일단 대단한 통찰 같다. 어쩌면 그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모든 것은 순수하게 내 욕망에서 오롯이 비롯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하니. 정말 그러할까. 일례로 명품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 역시 이것의 대표적 전형이 아닌가 싶다. 루이뷔통이 정말 내 스타일이라서 사는 것인가? 루이뷔통이 뭐지 하는 동네에서 그걸 들고 다니면서 그만큼 만족감이 들 수 있을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사람이 없다면 브랜드는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에 대한 비난의 글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그것은 누구의 욕망인가 하는 거다. 그 브랜드의 뮤즈는 누구인가.
이십 대 때 난 파리 뒷골목에 어느 편집샵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가방을 샀다. 생각보다 가격이 있었으나 안 사면 후회할 것 같은 생각에 이틀을 그 근처를 배회하고 서성이다가 결국 샀다. 내가 가방 때문에 이렇게 설레는 경우는 잘 없으므로 그 가방은 꼭 사야 하는 운명이었다(고 합리화를 하였다). 한국에 돌아와 아는 언니를 만났는데 언니는 가방 얼마 주고 샀냐고 물어봤다. 가격을 이야기해줬는데 브랜드도 아닌데 뭘 그렇게 주고 샀냐며 니가 잘 몰라서 완전 호구짓했네 그랬다. 나는 그 가방이 디자인, 색상 다 너무 맘에 드는 데다가 내가 들었을 때 아 내꺼네 하는 느낌이 솟아올랐다. 이미 마음으론 그 가방을 메고 파리 시내를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은 별로 없는데 이 브랜드 없는 가방에 대한 충성도는 남달랐다. 줄이 낡아헤질때까지 어지간히도 오래 썼다. 쓸 때마다 몸이 가볍고 기분이 늘 좋았다.
엄마와 명품관에 가서 가방을 산 적이 딱 한번 있다. 그냥 구경하러 갔는데 한 가방이 가격이 심하게 다운되어 있었다. 이건 왜 이러냐고 물어보니 가방 귀퉁이에 아주아주 미세하게 스크래치가 있다고 보여줬다. 갓난아기 다루듯 세심하게. 아 그렇구나 하고 들여다보니 그게 보이지 대충 보면 티도 안 나겠네 싶었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인데 이렇게나 가치가 팍 떨어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니 웬 떡이야 싶어서 엄마 사자사자 해서 구입했다. 아주 맘에 들어서는 아니지만 명품을 이 가격에 하는 심리였는지, 하나쯤 이 브랜드를 사두는 거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거야 하는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헌데 그 가방은 친구들 결혼식 할 때 몇 번 들고 가고 거의 안 들었다. 나는 그 가방을 들면 어쩐지 곱게 늙은, 보톡스 맞은 중년 부인이 된 느낌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명품을 사는 것이 나쁘다 좋다를 이야기하고자 쓴 글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예로 물건 구매에서도 내 욕망이 정말 내 욕망인 것인지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람들은 춤을 추는 사람을 바라보고, 춤을 추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을 바라본다. 여기에서 자신의 욕망대로 존재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춤을 추는 사람일까? 춤을 추는 사람 역시 자신을 보는 사람의 욕망과 시선을 알고 춤을 춘다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혼자 추는 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분리해서 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의 욕망이 보이지 않는 실타래처럼 오고 가는 사회에서 내 줄을 명확히 아는 사람은 지금 추는 춤에 나의 충만함을 찾을 수 있다.
당신은 타인의 욕망을 흉내 내고 있나.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는가.
당신은 진짜 그걸 원하는가. 아니면 그걸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원하는가.
내 생일이 다가왔다. 매번 받고 싶은 거 없어요. 됐어요. 뭐 중요하지 않아요. 그날이 그날이죠.라는 말만 하다가 나는 뭘 받고 싶을까 생각해 봤다.
나는 뭐가되었든 상대의 감정이 담긴 것을 받고 싶다. 밥을 사줘도 술을 사줘도 가방이나 옷을 사줘도 물론 기분이 좋을 것이다. 어찌 기분이 안 좋을까. (주는 대로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 그러나 상대의 감정이 담긴 편지 한 장, 그림, 노래 등에 난 뜬금없이 잘 흔들려왔다. 종이 쪼가리 하나라도 뭔가 나에게만 특별한 오리지날리티가 느껴지면 더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그런 선물의 여운은 지독히도 오래간다. 이건 과거에도 미래에도 별 차이가 없는, 없을 나의 취향일 것 같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찬 바람이 삭 부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보름달에서 약간 찌그러진 달이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스물다섯에 나를 나으셨을 엄마를 떠올렸다. 불안하면서 설레면서 그렇게 나를 기다리고 계셨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가지고 있는 올케 생각도 난다. 내게 생명을 준 이날이 어찌 별날이 아니리 하며, 새 생명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곳에서 축복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