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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인 내 이름 현! 빛날 현을 쓴다. 불화 변에 검을 현, 그 둘이 합쳐져서 밝게 빛을 낸다는 뜻의 글자가 된다. 나는 어릴 때 이 한자를 보면서 빛난다는 뜻인데 왜 검을 현이 들어있지?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주역을 보다가 문득 여기에도 음양의 조화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깊은 어둠을 제대로 다 쓸 수 있다는 건 불의 속성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지 않을까 하면서. 어둠을 외면하면 쉽게 꺼져버릴 불이지만 그걸 품으면 세상 끝날 때까지 제멋대로 아주 활활 무섭게 탈 것 같다. 그래서 거기서 나오는 빛은 단순히 따사롭고 화사한 것이 아니라 처연하도록 찬란했으면 좋겠다. 눈부시게. 눈이 머는 것도 두렵지 않을 에너지를 가질 정도로.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보다 어쩌면 나 스스로 이렇게나 더 큰 의미를 갖다 붙여본다. 여자 이름에 흔히 쓰는 어질 현이 아닌 이 글자를 택해주신 부모님께 새삼 감사하다. 부모님도 은연중에 내가 어질게만 살진 않을 것임을 직감하셨나 보다. 살면 살수록 내 이름이 점점 좋아진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이 가진 깊이를 알게 된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자신의 어두운 부분, 그 심연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를 만나면 와. 세상에 너무 매력적이다. 한다. 생각이 미쳐 들기도 전에 이미 느껴져서 자꾸 이야기하고 싶다. 까면 깔수록 겹겹의 층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은 사람들, 나는 여정 중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신난다. 너무 좋다. 더 파보고 싶은 사람들, 그들은 보이는 것 이면에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좋은 점을 애써 내세우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모든 부분이 매력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가장 다크한 지점마저도.
얼마 전 오랜만에 들른 저지리에서 김흥수 화백님의 작품을 보는데 그분이 말하는 음양의 메시지가 찌릿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환의 지점을 넘어 다른 판으로 옮겨갈 수 있는 사람의 에너지가 느껴져서 가슴이 쿵쾅 뛰면서 존경스러웠다. 다른 판이라 하면 물리적으로 다른 나라를 가고 그런 판이 아니다. 세계의 열림과 닫힘이다.
파리에서 추상회화가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에 우리도 추상을 시작해야지라고 동료가 말했을 때 그는 왜 우리는 밤낮 잠의 뒤꽁무니만을 쫓아다녀야 하는가라고 말했고 그걸 들은 다른 동료가 우린 추상 다음에 오는 것을 시작해야지 하며 맞장구를 친 것이 하모니즘의 동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 예전에 한 달이나 걸려 배를 타고 파리로 갔고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하모니즘을 풀어낼 구체적인 착상을 얻었다.
음과 양은 서로 상반된 극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세계로 어울리게 될 때 비로소 완전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의 세계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극에 이른 추상의 우연의 요소들이 사실 표현의 필연성과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은 더욱 넓고 깊은 예술의 창조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하모니즘의 창시자 김흥수 화백, '나는 자유로소이다'
모임을 통해 개성 가득한 분들과 함께 주역을 들여다 본지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꼬꼬마 시절, 외국인 친구에게 태극기에 그려진 건곤감리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우리 국기엔 아주 깊은 철학이 담겨 있어. 이게 말이지 자연의 형상이고 음과 양의 엄청난 조화란다..라고 말을 얼버무리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그 막연한 엄청남을 누군가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낄 수는 있게 되었다. 지금 여기서 64괘를 하나하나 흥미롭게 들여다보다 보니 만나고 흩어지는 자연의 순환처럼 우리 삶의 어느 순간도 그것 그대로 의미를 지님을 다시 느낀다. 그래서 양도 음도 내 삶에 의미 있게 존재함을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나아갈 때만큼 고여 있는 시기의 의미, 이제 그건 내게 조급함이 아닌 충만함으로 읽힌다.
모임에서 군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각자 정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가 다른 가치를 가지고 다른 정의를 내리는 것이 흥미롭다. 거기엔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움직이는 욕망이 잘 담겨있다. 참 다 달라서 참 멋지다. 그러고 보면 이다지도 개성 있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고정된 컨셉이란 얼마나 힘이 없는 공염불일까. 모임을 이끄는 선생님은 이건 삶에서 자신이 바라는 인간상일 것이라고 하셨다. 그 옛날 선조들의 지혜를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이토록 속속들이 뽑아내서 맛있게 요리하는 선생님 역시 내가 생각하는 섹시한 군자다.
나의 군자란 이러하다.
- 자신답게 탁월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 타인의 삶을 그대로 존중하며 자신의 기쁨으로 세상을 살 수 있는 사람
- 그 삶의 솔직한 표현을 두고 갈 수 있는 사람
나의 존재의 의미는 '경계 없이 경험하고 전달하는 삶'에 있다고 느낀다. 기존의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의식의 작용을 따르는 여정을 살 수 있는 지금의 삶을 사랑한다. 이김에 모임에서 나의 캐릭터도 만들었다. 양자 고양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예측 불가능한 차원의 경험을 thing으로 가져오는 고양이로서 살 것이다. 양자 세상을 노는 고양이,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막 타 넘고 잘 뛰어다니는 이 고양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다양성. 제대로 된 그 한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언제고 막 떠들어댈 수 있다면 좋겠다. 재미난 무용담이 많은 고양이가 되어야지.
2022년 나의 여정이 어디로 갈지 몰라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