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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Mar 07. 2017

산티아고 길 위에서(17)

그 열일곱 번째 이야기, '위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위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진심을 담아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너무나 깊은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서 무슨 말을 건넨 들 큰 위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늠하기도 어려울 만큼 큰 절망에 놓인 사람에게 "힘내세요. 잘 될 거예요."라고 한들 그게 그렇게 와 닿는 말이 될 리 만무하다.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on)에 위치한 순례자를 의미하는 철의 기념비




나도 지난해 엄마를 떠나보낸  후 한동안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엄마를 돌아오게 할 수 없다면 어떤 좋은 말도 그만해 주실래요 하는 심정이었다. "힘들지?" 혹은 "힘을 내야지" 이 말도 너무 싫었다. 당연히 힘들지 뭐하러 물어봐. 그리고 힘이 안 나는데 왜 자꾸 힘내라고 하는 거야. 이런 배배 꼬인 마음만 들고 인사에 일일이 대답하는 과정 자체도 기운 좀 내라는 그들의 바람과 반대로 날 더 지치게 했다. 물론 나 같아도 그렇게 안부를 물었을 테고 걱정되니 어떤 위로라도 건네고 싶었을 것이다.

 


지난해 5월이 지나고 여름이 오는데 모든 것이 너무 평화로워서 슬펐다. 날씨가 너무 좋아도 억울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왔는데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거리에 엄마와 딸을 보면서 어제까지 나에게도 당연했던 저 그림이 이제는 추억으로만 존재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엄마가 스치고 갔던 모든 곳에 추억이 있고, 엄마의 흔적이 남아 멀쩡한 척 있다가도 수시로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런데 내 앞에서 나를 위로한다는 누군가가 '나만큼 슬프다'라고 말할 때면... 별 일 아닌 이 말에 울컥했고 차라리 내게 아무 말도 하지 마셨으면 했다.



무언의 존재 자체가 때로는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반면 이런 시기 내게 힘이 된 건, "나도 겪어 봐서 알아"라고 말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그 힘든 시기를 지나왔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어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진심으로 같이 아파해 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괜찮은 척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대놓고 '안 괜찮음'을 주구장창 떠들어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도 잘 이겨내고 지금의 삶을 멋지게 살아내고 있는데... 나도 힘을 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아프고 다시 일어나자" 누군가 이런 말을 해주었는데 어서 기운 내 하는 말보다 훨씬 위안이 되었다.



 

자신이 직접 겪어봐야 그제야 타인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이런 시간을 겪은 후 산티아고 길에 갔기에 사별의 고통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아픔이 세상에서 제일 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나만큼 슬픈 사람도 많고 신이 대체 무얼 하고 계시는 걸까 의문이 들만큼 정말 기구한 사연을 가진 사람도 많다. 나는 엄마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지만 어떤 이는 부모, 자식을 연달아 떠나보낸 이도 있고, 대체 어떻게 다시 일어나란 말이야 싶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든 면에서 힘든 고난의 시간을 계속 겪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이기적이게도 남의 불행 속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을 새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어쩐지 좀 씁쓸했다.   


'용서의 언덕'의 푸드 트럭



산티아고 길을 걷는 미국인들의 상당수는 'The way'라는 영화를 보았다고 했는데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이 영화가 이곳에 온 동기가 되었다고 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을 하지 않아서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오히려 지난해 '나의 산티아고'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는 꽤 알려진 편이다) 영화는 산티아고 길을 걷다 사망한 아들을 찾으러 간 아버지가 아들의 유해를 들고 자신도 그 길을 걷는다는 내용의 실화를 담고 있다. 상당한 부분을 직접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촬영했기에 이미 길을 걷고 온 사람들의 경우 실제적 장소가 주는 추억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보기에도 참 좋다. 실제로 난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이 영화 속 아버지처럼 가족을 잃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는데... 같은 아픔을 겪었다는 사실 하나로 서로에게 깊은 위안이 되곤 했다. 역시 '내가 겪어 봐서 알아'라는 위로의 힘은 생각보다 매우 큰 것이다.




산티아고 길에는 세월호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누군가 길을 걸으며 놓고 간 모양이었다. 나도 엄마를 보내고 이렇게 억울한 심정이 드는데 한창 살아나가야 하는 꽃다운 청춘들을 말도 안 되는 사고로 잃어야 한 부모의 심정은 과연 어떤 것일까.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간혹 이들에게 그만하면 됐지 왜 이렇게 오래 징징대시냐 하는 류의 황당한 반응들을 볼 때마다 본인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정도의 공감 능력도 잃고 살만큼 세상이 각박해진 것인가 하는 씁쓸함이 들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 붙여놓은 글과 그림, 우리는 같은 운명을 지닌 보트를 타고 가면서도 당장 내가 물을 퍼내는 저 사람들과 다른 사이드에 위치했다고 안도하고 살아가지 않



내가 자주 만났던 탐 아저씨도 마음 아픈 사연을 가지고 계셨다. 남동생이 암에 걸려서 시한부 판정을 받았는데 몸의 이곳저곳에 이미 전이가 된 터라 예후가 그리 좋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기적이 일어나서 꼭 나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길을 걷고 계셨다. 난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위로의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정말 기적이 일어나서 동생이 싹 나을 거라는.. 그런 헛되고도 뻔한 말들을 내뱉고 싶지 않았다. 물론 간절한 그의 눈빛을 보면 그렇게라도 말해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건 잠시 동안의 안도감을 줄 쉬운 위로란 생각에서였다.   


대신 나도 그런 기적을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다며 내 이야기를 꺼냈다. 내 모든 것을 다 줄 테니 엄마만 살려달라고. 그렇게 빌고 빌었고 잠시라도 기도를 안 하면 엄마가 어떻게 될 것 같아서 틈만 나면 살려달라고 그렇게 기도에 매달렸었다고. 그런데 잔인하게도 안 들어주셨다. 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해도 안 들어주셨다. 나는 신의 은총과 기적을 바라는 사람 앞에서 위로의 말을 하겠다면서 나의 분노가 서린 이런 모진 소리만 늘어놓았다. 열심히 떠들다가 갑자기 미안해져서 이건 내 케이스고 신이 당신 동생에게는 특별히 은총을 베푸실 거라고 급하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마음 넓은 아저씨는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며... 신이 있다면 우리에게 주는 고통에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했다. 물론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면 상상할 수 없이 괴롭고 겪어 본 당사자가 아니라면 헤아릴 수도 없을 테지만 언젠가는 내가 그 의미를 깨닫게 될 거라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줄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리오하(Rioja)지역에 생명력 넘치는 포도밭/ 다시 힘을 내자고 내게 기운을 주는 듯했다.




또 다른 위로의 방식을 볼 수 있는 영화가 하나 있다. 만약 상대가 겪은 일에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없다면 이런 방식은 어떨까.


영화 '러스트 앤 본(Rust and Bone)'에서 여자 주인공은 사고로 두 다리를 잃는다. 당장은 걸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테고 단순히 기능적인 다리의 역할 외에도 여성으로서 나의 삶이 끝났다는 절망, 이젠 누구에게도 매력 없는 사람이 되어 암흑 속에 갇혀 버린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조차도 내가 안 겪어보았으니 어찌 다 알겠는가마는.   

그런 그녀에게 아주 단순하고 좀 무식하기까지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호들갑을 떨지 않고 그녀를 대한다. 두 다리를 잃어서 어쩌냐 하는 식의 동정이 아닌, 오히려 너무 아무렇지 않게 대해서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빛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집에 스스로 갇혀 있는 여자를 밖으로 무턱대고 데리고 나가고 다리 없는 여자에게 자신은 수영할 건데 너는 안 할래 하고 물어본다. 여자는 내 꼴을 보고도 니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하는 반응이었지만 이내 두 다리 없는 몸으로 수영을 하며 온전한 몸으로 존재했던 자신을 느끼고 자유를 만끽한다. 밖으로 나왔을 때 여자의 얼굴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데 그녀는 내면의 어둠을 밝히는 빛을 그때 스스로 다시 발견한 것이다. 때로는 같이 펑펑 울어주고 슬픔을 공감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찌 보면 아무렇지 않게 '나와' 하고 손을 끌어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 때도 있다. 아무리 공감하려 노력해도 어차피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내 친구 하나는 일주일에 시간을 정해 놓고 한동안 너를 만나기로 했다며 애 키우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나를 픽업하여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밥을 '먹이고' 보통 때처럼 수다를 떨곤 했다. 나는 에너지 없이 그녀의 차에 올라타곤 했지만 항상 내릴 땐 기운이 조금은 더 생겨서 돌아갔다. 그냥 먼저 밖으로 끌어내 주고 가만히 들어주는 것, 작은 일에 평소처럼 함께 웃을 수 있는 것.. 이것이 나에게는 좋은 위로였던 것 같다.



나도 그 누군가가 아플 때 그런 좋은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이 글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 준 지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고마웠어요. 위로가 되어 주어서.



인생이란 가장 슬픈 날 가장 행복하게 웃는 용기를 배우는 것이다.

- 팀 보울러, 리버보이(River Boy) 中-    



https://www.youtube.com/watch?v=RDivFMuC_aI

슬플 때 길에서 들었던 노래, 슬플 때는 미치도록 슬픈 음악이 위안이 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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