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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Mar 04. 2017

산티아고 길 위에서(16)

그 열여섯 번째 이야기,  '자연이 주는 기쁨, 그 속에서 멍 때리기'




나는 바다에서 자라 가난이 내게는 호사스러웠는데, 그 후 바다를 잃어버리자 모든 사치는 잿빛으로 가난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알베르 까뮈 '결혼, 여름' 中 -



까뮈는 그의 저서 '결혼, 여름'에서 바다가 자신의 인생에 몹시도 중요하고 소중한 것임을.. 이렇게 낭만적이고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자연이 한 인간에게 주는 의미가 이다지도 큰 것이라면 난 산티아고에서 매일을 자연과 교감할 수 있었으니 정말 행복한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난 그전까지 걷는 즐거움을 잘 알지 못했다. 가까운 거리도 차로 이동하는데 익숙했고 무엇보다 나이 들수록 사람에 치이며 북적이는 길을 걷는 것이 결코 달갑지 않았고 금세 피로해졌다. 얼마 전 친구와 차를 주차하고 잠깐 걸어가는 거리에도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느껴져서 우린 그랬다. 대체 팔백(미터 아니고 킬로미터이다)은 어찌 걸은 걸까라고. 나도 모르겠다. 거기에서는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걸었던 거리가 여기서는 왜 이렇게 피곤하고 싫은지는. 산티아고 길에서 누가 농담 삼아 이런 페이스로 걷는 훈련이 되면 서울 가면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 다닐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분은 과연 잘 걸어 다니고 계신지 모르겠다. 산티아고가 아니라 서울이라 안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난 원래 이렇게 살던 사람이야 라는 자신의 환경에 맞는 습성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작동을 하는 걸까.



피레네 산맥, 탐 아저씨





총거리가 800km 정도 되는 이 길(일명 프랑스 길)은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하여 스페인의 서북부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하는 제법 긴 길이기에 당연히 다양한 지역적 특색을 골고루 경험하게 된다. 고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가파른 산길을 만나기도 하고, 반대로 하염없이 내려만 가는 돌길을 만나기도 하며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메세타 평원을 지나기도 한다. 목축업을 생업으로 하는 지역에서는 지천에 널린 소똥을 피해가야 하고 밤이 눈비처럼 실시간으로 내리는 숲 속에서는 수북이 쌓인 밤송이를 자근자근 밟으며 걷기도 한다.





가끔은 차가 쌩쌩 지나가는 도로 옆을 걸어야 하기도 하고 규모가 제법 있는 큰 도시를 통과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타임슬립으로 갑자기 과거에서 현대로 순간 이동한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자연 속에서 말, 소떼를 보며 숲길을 걷다가 난데없이 포장된 도로에 버거킹이라니. 분명 내가 평생을 살아온 곳이 대도시 이건만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 어색한 느낌은 무엇인지... 그래도 대도시를 찍을 때면 여기까지 왔는데 구경은 하고 가야 한다는 본능적 호기심으로 어느덧 순례자에서 관광객으로 변신한다. (여기서 변신은 철저하게 마음만!) 가벼운 가방을 만들기 위해 애쓴 까닭으로 변신할 도구도 어차피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당당히 쌩얼로 슬리퍼를 질질 끌고 맨날 입는 추리닝 바람으로 어슬렁거리며 다니다 보면 현지인보다도 더 과도한 내추럴함에 누가 날 관광객으로 보겠나 싶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하고 집 밖으로는 안 나갈 것 같았다. 내가 떠나기 전 이런 상황을 우려한 내 절친은 언제나 여성임을 포기하지 말라며 발색력이 좋은 립스틱을 전해주었지만.. 난 유일하게 생기를 줄 수 있는 그 아이템조차 뭐가 그리 무겁다고 트렁크에 실어 마지막 장소로 보냈던 것이다.





(위 사진) 부르고스 대성당, (아래 사진) 레온(Leon)




길의 풍경이 비슷해 지루할 때도 있지만 지나고 사진으로 보면 그런대로 각기 특징을 가지고 있어 흥미롭기도 하다. 구름의 모양도, 나무 종류도 다 다르고, 같은 종의 동물도 지역마다 또 특색이 있다. 무엇보다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감탄할 만큼 멋있다. 안개가 짙게 낀 피레네 산맥 길에서는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난 한 무리의 말들이 옆을 스쳐 지나갔는데 안개 때문인지 그 광경 자체가 꿈을 꾸고 있는 듯.. 마치 신화 속 한 장면처럼 신비로웠다. 그리고 길에서는 소, 말, 닭, 양, 고양이, 개, 당나귀, 곤충, 새 등 온갖 동물 친구들, 그리고 그들이 배설한 결과물을 수시로 만나게 된다. 가끔 동물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동물도 그런 사람들을 알아보는지 그들의 손길에는 유독 얌전했다.      






동물들은 순간을 산다. 풀을 먹는 동안은 열심히 풀만 먹는다. 쉬는 동안은 그저 쉰다.

멍 때리기도 참 잘한다.   



 

탐 아저씨는 가끔 길을 지나다 본 하늘의 구름을 찍어 내게 메시지로 보내 주면서 매번 뭐 같이 보이냐고 물었는데.. 난 늘 아저씨가 기대하는 답과 다른 걸 말하곤 했다. 아저씨가 '천사'라고 소개한 구름도 그렇게 생각하고 보아야 그런가 보다 싶었다. 자연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해석하고 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능력은 과히 대단한 것이다. 그래도 아저씨 덕분에 나도 하늘을 많이 올려다보았고 어떨 때는 별생각 없이 구름 흘러가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가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가만히 있는 시간을 굉장히 불안해한다. 시간을 이렇게 헛되이 흘려보내서 되겠나 하는 생각에 때로는 죄책감마저 든다.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늘 무언가로 채우려고 한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아니면 책이라도 읽던가... 어쩔 때 보면 무슨 활자 중독처럼 자꾸 무언가라도 읽고 있어야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아니면 뭘 배워서 '생산적인 것'으로 아웃풋을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멍 때리기 대회도 있는 거 보면 진정으로 오랜 시간 멍을 때리는 것이 현대인에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그저 묵묵히 길을 걷는다? 아마 미쳐 팔짝 뛸 노릇일지도 모른다. 순간순간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라고 하며.


나이가 지긋한 한 브라질 아저씨는 이 길에서도 핸드폰에서 눈을 못 떼는 젊은이들이 좀 안타깝다고 했다. 그렇게 정보를 끌어모아서 뭐 하냐는 거다. 가다 보면 화살표도 나오고, 모르겠으면 현지인이라도 잡고 물어보면 될 것을 그렇게 온갖 정보를 머리에 넣고 다니면 완벽한 상황이 연출되냐며.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알고 있는 정보를 다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상황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하기도 했고, 그렇게 믿었던 정보가 틀릴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저씨 말마따나 그 시간에 하늘이라도 한 번 더 올려다보고 나무라도 한번 더 쓸어보라는 것이 이 길에서는 더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온전히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기회도 인생에 얼마나 되겠는가. 더군다나 자연은 내가 멍 때린다고 재촉하지도 뭘 더 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으니까.       

 


인간의 행동의 동기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의 하루는 매우 평온한 것이며 인간의 게으름을 꾸짖지 않는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中-



부르고스(Burgos) 성당 안 조형물





산티아고 길을 걷다 보면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제법 만나게 된다. 근 몇 년 간 모든 것에 '창조'를 같다 붙이는 통에 과연 뭐가 창조일까 싶기도 하지만 난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동경해 왔다. 아마도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하고 살았기에.. 대리만족으로나마 그랬던 것 같다. 쥐뿔도 없지만 나는 이리 살 테니 신경 쓰지 말아라 라는 식의 자신감과 베짱이 느껴지는 예술가를 보면 멋지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하거나 작곡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연기를 하는 사람 등 모두 창의적인 직업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로 이 길에서 내가 마주친 사람들이다. 짊어지고 있는 배낭도 무거워서 던져버리고 싶은데 기타를 그 위에 더 얹어 다닐 용기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들이 길에서 자연을 벗 삼아 제대로 멍 때리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자연에서 멍 때리기는 굉장히 열정적인 생산 활동의 일부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관의 힘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분석해서 답을 찾는 것에 길들여져 있기에 이런 직관이나 영감을 애써 무시하고 살기도 한다. 그러나 멍 때리기의 진수는 이런 힘을 스스로 필요로 할 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역시 길에서 종종 멍 때리다가 문득 깨닫게 되는 것들도 있었기에. 그리고 그곳에서 충분히 멍을 때린 결과 부족하나마 이런 글들을 남길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레온(Leon)의 한 카페, 그녀의 창작 활동.





https://www.youtube.com/watch?v=DV-V-ftDN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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