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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Aug 18. 2016

나도 그 길 위에 서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의 여정을 준비하며. 




대략 800km 정도,

도보로 하루 평균 20-30km씩 걸으면 최소 30일 이상은 소요되는 산티아고 순례길*


어떤 이는 이 길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위로받았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신을 만났다고도 한다.

이 길을 걷고 영감을 받아 자신의 대표작인 '연금술사'를 집필한 파울로 코엘료도 있지만,

이런 거창한 무언가를 기대해서도 아니고

나에게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길이, 이 시간이.



*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인 성 야고보(스페인명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의 길로 해마다 전 세계에서 종교적 목적이나 기타 개인적 동기로 이 길을 걷기 위해 모여든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순례길은 여러 루트가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길이 일명 '프랑스 길'로 프랑스 남부 국경에 위치한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끝나는 약 800km의 길이다. 파울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걷고 영감을 얻어 연금술사를 집필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 올레길이 이 길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졌다.




걷는다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비드 르 브루통의 '걷기 예찬'에서처럼 걷는 것의 의미가 이렇게도 철학적인 것인지, 마치 수도자의 기도와 같이 경건한 행위가 될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한 십 년 전쯤인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라는 프랑스의 한 은퇴한 기자가 쓴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한 권도 아니고 세 권 씩이나 쓴 걸 보니 걷는 여정에 대해 할 이야기가 어지간히도 많은가 보다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예순이 넘는 나이에 산티아고 길을 완주한 것은 물론, 이스탄불부터 중국 시안까지 1만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직접 걸었다.

은퇴했으니 좀 여유 있게 좋은 곳들 다니며 편하게 지내시지.. 이 할아버지는 왜 이런 무모한 일에 도전한 걸까. 그 도전 정신은 충분히 존경스럽고 기자의 눈으로 바라본 여정 속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웠지만 그래도 마냥 걷는 행위 자체는 나에게 여전히 '꼭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 당시 아직 어렸던 나에겐 그렇게 와 닿지 않았었나 보다.  




그런 내가 지금 산티아고 길 종주를 하려고 한다.


산티아고 길 종주는

걷는 길에 대해 전혀 매력을 못 느끼는 나에게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왜?

글쎄... 산티아고 길이라고 다른 길들과 다른 것이 있을까마는...

하나의 이유로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다.

유럽에서 만났던, 그 길을 걸었다 하던, 자신보다 큰 배낭을 메고 환하게 웃던 사람들의 영향이었을 수도 있고, 영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인생작 집필도 가능하게 했던 길이라 하니... 파울로 코엘료의 영향이었을 수도 있고, 수 세기에 걸쳐 종교적인 의미로 이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고...


여하간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일 것만 같았다. 사실 종교적으로 이 길에 부여하는 의미보다 내 인생에 뭔가 큰 전환점이 필요할 때 걸으면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30일이 넘는 기간 동안 하루 평균 20-30km의 길을 꾸준히 걸어 낸다는 것이,

체력적인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결정적으로 꼭 걸어야 하는 내 내면의 동기를 만들어 가지 않는다면 끝까지 완주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 지금이야.


내가 걸어야 할 내면적 동기가 어느 때보다 강할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의 강한 챌린지가 아니고는 다시 건강하게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큼은 정신적인 '깡다구'가 발휘될 때도 있었지만, 육체적으로 내 한계에 도전해 본 일은 이제껏 없었다.

정신적으로 나 자신을 지독히 괴롭힌 일은 있어도 육체적으로 이렇게까지 괴로움을 자처할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런 사서 하는 중노동이 나에게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 어떤 위로보다 그 길 위에 시간이 더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 길의 끝에

설령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내가 품은 질문에 대답을 얻을 수 없을지라도,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단단해져 돌아올 것이므로.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그냥 어디라도 가서 마음 편하게 쉬다 와."


내 계획을 듣던 지인들 중 몇은 꼭 이렇게 말한다.

나를 응원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한편으로는 니 체력에 큰일이나 날까 걱정된다며... 정말 큰일이나 날 것 같은 얼굴로 말한다. 그래도 그렇게 굳은 결심을 했으니 다녀오라고 하면서도,

몇몇은 말미에 끝내 이런 말을 덧붙인다.

 

"800km 꼭 다 걸을 필요가 뭐 있어. 중간에 힘들면 언제든 그냥 와"


다 걷겠다고 저렇게 호기롭게 이야기하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이 혹 자존심 상하거나 속상한 일이 될까 봐 부담을 줄여주려는 고마운 염려다. 그럴수록 나는 더더 잘 걸어보고 싶다. 적어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그 길에서 내가 그토록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진정 바뀌길 원하고 있었던가?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산티아고 순례길은 궁극적으로 나를 변화시켰다. 나는 세상의 신비를 발견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길은 세상에는 신비란 없다는 것, '감춰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일깨워주었다. 결국 내가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로 모든 것이 흘러갔다.


-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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