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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Dec 02. 2016

사서 하는 '죽'노동 끝에 내게 남은 것(1)

산티아고 길을 걷고 온 후,  그 첫 번째 이야기.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향해 걷는 약 800km의 여정.

까미노(Camino)*라 통칭하는 산티아고를 향하는 여러 길 중, 나는 가장 대중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프랑스 길(Camino Francés)'**을 걸었다.



9월 26일,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 Pied de Port)에 도착하여 27일부터 걷기 시작했고, 11월 6일 산티아고에 도착하였으니 총 41일 정도 걸렸다. 중간에 수도원에서 이틀을 머물기 위해 감행한 사십여 킬로미터 구간의 버스 이동을 제외하고는 전 구간을 두 발로 걸어냈고, 배낭은 내 분신처럼 끝까지 둘러매고 다녔으니, 적어도 나와의 약속은 지켜낸 셈이다. 보통 하루에 30km 이상 걷는 사람들은 30일 안에 완주하기도 하나, 애초에 그럴 생각은 없었기에 나의 페이스대로 적절하게 즐기고 적절하게 힘들며 잘 걸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심지어 11월 7일 도착이 목표였으나 무려 하루를 단축하였다.^^  



까미노 '프랑스 길' 완주 증명서/알베르게와 성당, 바에서 받은 도장들을 확인한 후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  800km를 완주하면 775km로 표시되어 다음과 같이 발급된다.  







산티아고를 향한 길 위의 시간들이 꿈처럼 지나갔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여

시간은 잔인하게 빠르고,

늘 그렇듯 무심하게 흐르고 있다.

과연 내가 저기에 있었던가.... 사진을 들여다보아도 허탈하리만큼 오래전처럼 느껴진다.




길에서 늘 마주친다. 까미노 길을 안내하는 가리비 모양의 표식




까미노 길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나 가리비 모양의 이정표가 계속 등장한다.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를 나타내는 표식도 가끔 나오는데, 갈리시아 지방부터는 이 표시가 잠시라도 안 보이면 섭섭할 정도로 자주 나온다.)


오랜만에 마음이 참 편했다.

나에게 갈 길을 제시해 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에.

적어도 산티아고 길을 걷는 동안은 이 화살표가 내게 정답을 제시하고 있으니...

믿음직스러웠다.

여기로 가면 네가 원하는 그곳에 도달한다고 정확하게 알려주는데... 결코 불안할 이유가 없는 거다.

 

엄마가 투병을 하셨던 기간 동안은 나에 대해 거의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리석은 소리라 할 수도 있지만 내 커리어 따위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엄마가 살았으면 했고, 다시 행복해졌으면 했다. 그런 후에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난번에도 그랬으니 내가 더 최선을 다하면 엄마가 다시 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삼십 대...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하는 이 시기를 나는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으로 방황했다. 내 길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따라가야 하는 화살표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한다한들 만족스러울 것 같지가 않았다. 설령 남들이 멋지게 봐줄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까미노 길에서 저 화살표는, 적어도 길 위에서는 내게 정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든 다시 걸어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일단 걸어 봐' 


얼굴이 아플 정도로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에도, 무자비하게 쏟아붓는 장대비 속에서도 노란 이정표가 한결같이 일정한 거리마다 서서 나를 응원해주었다.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걸은 것 같다.


특별히 어디 탈이 나서 못 걸을 정도가 된 적도 없었고, 남들 그렇게 흔히 잡히는 물집도 초반에 생기는 듯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자체적으로 해결이 되었다.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괴로운 적도 없었고, 소매치기를 당한다던가 안 좋은 일을 당해 사기가 꺾이는 일도 없었다. 까미노의 사기를 꺾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인 베드버그도 구경은 가끔 했으나, 그리고 실제 몇 군데 물려보기도 했으나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기 민망할 정도로 가려운 증상조차 없이 순식간에 자연 치유가 되었다.

 

심지어 까미노가 끝나고 쉬러 간 포르투갈에서도 가리비 달린 배낭만 없으면, 그리고 내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까미노 길을 걷고 온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생각보다 육신이 멀쩡했고 몰골도 생각만큼은? 망가지지 않은 듯했다.




까미노 길의 내 모습,  누군가 찍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진짜 수월하게 걸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힘들었다.

죽자 사자 걸어도 줄어들지 않는 거리, 나타나지 않는 마을...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도대체 사람 사는 곳은 보일 기미도 없는 끝없는 길 위에서 좌절했던 적이 한 두 번인가...

앞 뒤로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무섭기까지 했던 숲길에선 급기야 혼잣말까지 하며 가기도 했고,

난방이 안 되는 곳에서는 밖에서 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한기를 느끼며 자기도 했고, 같이 자는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와 뒤척임으로 제대로 못 잔 적도 많았고, 비가 심하게 오는 날은 중간에 쉴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오버페이스로 몇 킬로씩 더 걸어가기도 했다. 사람으로 인해 엄청난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또 사람으로 마음이 상하는 적도 있었고,

몸이 겨우 들어가는 좁은 샤워실 덕분에 옷을 걸어놓으면 입어야 하는 새 옷이 홀딱 젖는 경우도 있었고,

오리손 산장에서는 코인을 넣어서 5분 샤워를 하는데 그걸 못 맞춰 스웨덴 어머님이 구해준 적도 있었다. -.-

5분이 그렇게 짧은 시간인지 몰랐다;;

그리하여 가끔 싱글룸을 쓰는 대안을 선택하기도 했는데.. 개인 공간이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렇게 절실히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인간이 간사하게도 부족한 것들을 꼭 경험한 후에야 당연한 듯 주어졌던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나 보다.


 

이것저것 힘들었던 순간을 이야기하자면 수십 가지 에피소드는 무용담처럼 금방 쏟아낼 자신이 있지만...

까미노를 마칠 때쯤, 그리고 마친 후에는

이런 종류의 '육체적 고통들'은 신기할 정도로 생각이 잘 안 난다.

마치 산모가 아이 낳을 때 그렇게 죽을 만큼 아팠으면서 금세 또 둘째를 출산하는 것... 에 비유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육체적으로 괴로웠던 순간들은 쉽게 잊혔다.


심지어 남은 거리를 나타내는 표식에 숫자들이 점점 줄어 '두 자릿수'로 보이던 날부터는 지금까지 힘들던 것들은 생각이 나지 않고 오히려 그 거리를 걸어버린다는 것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천천히 걷고자 했는데 막판에 의도치 않게 속도가 나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가 그친 뒤, 순례자들

 



지인들은 800km라는 거리를 걸어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도 많은 격려와 감탄을 보내주셨다. 딴에는 해보겠다고 갔지만 진짜로 팔백을 다 걷겠어하며 반신반의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많이 걷고 적게 걷고는 나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길 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 내겐 더 적절할 것 같다.


늘 끝은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 시점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나도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에 합당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충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행복했고, 많이 느꼈고, 많이 배웠다. 앞으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까미노 이야기를 쓰겠지만 우선 여기에서는 내가 길 위에서 느낀 것들 중 일부를 적어보려 한다. 나도 부족한 형편인지라 40여 일을 걷는다고 해서 엄청난 것을 깨달았을 리는 만무하지만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누구라도 함께 나누고 싶고, 지친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의 글이 된다면 좋겠다.



지금 살아 있잖아. 너도 나도 의미가 있어. 살아 있는 그 자체로.

 




'결국 인생은 순간의 합'



산티아고 길에서 끄적인 글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아마 '순간'일 것 같다. 누구나 순간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 오죽하면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정도로 번역되는 '카르페디엠'(Carpe diem) 같은 우리말도 아닌 라틴어를 남녀노소가 다 알고 자주 인용해가며 맘을 다잡겠는가. 이 말을 자칫 오해해서 ‘까짓것 오늘만 살고 죽자’식의 쾌락주의나 허무주의로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겠지만 사실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오해보다도 다른 측면에서 그 원래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이 말이 '순간이 이렇게까지 중요하니 제발 매 순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거라'로 결론짓기 위한 용도로 주로 쓰이는 것 같다 라고 할까.



순간을 제대로 즐기던 동네 개, 주변의 온갖 소란함과 일부 순례객의 뜨거운 관심에도 ‘나는 자련다’는 소신이 있었다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입시나 취업처럼 학생에게 부과된 미래의 짐이 자칫 학창 시절의 낭만이나 즐거움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을 경계하면서 현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고자 쓴 말일 진대... 우리나라에서는 입시학원 이름으로도 활용되고 있으니 뭔가 아이러니하다. 정말 순간의 중요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느끼거나 체험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 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미래를 위해' '열심히' '최선' 이런 류의 사족이 굳이 붙지 않아도.

사실 'Carpe diem'이라는 말은 로마 시대 시인,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구절에 유래한 말이라고 하는데 입시 학원장이 예상치 못한 카르페디엠 바로 뒤에 연달아 나오는 구절은 '미래에 대한 믿음은 최소한으로 해두고'(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라고 한다.




난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서두가 이렇게나 길었을까...^^;;

다시 까미노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까미노 길... 평소에는 경험하기 어려운, 정말 흔하지 않은 세팅이다. 이곳에서는 '매 순간'을 강하게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감각이 살아나 주변 환경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평소보다 훨씬 느리게 천천히 주변을 보고, 나를 볼 여유가 생기면서, 뻔한 것들이 더 이상 뻔하지 않게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하던 것들을 흔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가슴으로 느끼는 체험을 했다.

 

아마도 생활이 워낙 단순(걷고, 먹고, 빨래하고, 자고... 의 무한반복) 하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까미노 길에서는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채워지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내가 이렇게까지 단순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기뻐했던 것 같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인간 욕구의 기본 서클이 극대화되어 오늘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되는 길이기에 이런 과제들의 해결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하루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성취감을 잘 못 느끼는, 목표를 이루어도 쉽게 허탈해지거나, 생각이 많은 나 같은 타입의 사람에게 까미노 길은 작은 것에도 큰 기쁨을 체험하게 하는 아주 좋은 훈련의 장소다. 심지어 스스로가 자주 대견하게 생각되기까지 한다.



가끔 그림 같은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기도 했다.



이런 단순함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잊고 지냈던 '순간', '찰나'의 절대적 가치가 진정으로 다가왔다. 결국 이런 순간순간이 모여 내 인생이 되는 것인데... 지금 이 순간을 누리지도 못하면서 내일의 계획에 안달하고 있다면 정작 내일이 되어도 난 또 비슷한 감정을 경험하겠지...


사실 이 길에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고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을 보면 한결같이 순간의 감사함에 대해 절실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내일이 내게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수많은 계획을 만들고 자신을 그 틀에서 엄격하게 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계획이 물론 필요한지만(-무계획으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조금은 여유를 갖고 순간의 감사함,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치 까미노 길도 인생길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내가 30km를 걷기로 목표했다고 하자. 나에게 벅찬 목표라는 걸 분명 알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걸 완수해야 한다. 왜냐... 내 목표니까! 이걸 정당화하기 위해서 여러 개의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원래 하루 평균 20km는 걸어줘야 하는데, 어제 꼴랑 12km밖에 못 걸었으니까... 그러니 난 오늘 30km를 걸어야 해'


'주변 사람들이 오늘 30km를 걸었네, 40km를 걸었네 자랑하는데... 그래 나도 분발해야지... 그렇다면 난 오늘 30km를 걸어야 해'


'나랑 같이 출발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려면... 그래 난 반드시 오늘 30km를 걸어야 해'


'내가 그 지점쯤에서 꼭 머물고 싶은 알베르게가 있거든... 그래서 난 오늘 30km를 걸어야 해'

   

그게 안 되면 큰일이나 날 것처럼 '30km'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결국 30km 자체의 의미가 너무 커서 실제로 목표의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난 그 길에서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무리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 자신을 무시한 대가로 온 몸이 아프다고 난리다. 그보다 더 슬픈 건, 지나가는 사람과의 대화를 놓치고, 자세히 보면 너무나 조화롭게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몽땅 놓치고 갔다는 거다. 부족한 대로 그냥 그 순간을 즐겼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와인이나 맥주 한두 잔 하며 같이 걸어온 사람들과 보내는 달콤한 저녁시간도, 살갗이 아프도록 내리쬐는 태양빛을 받으며 죽을 판 살판으로 걸어가는 까미노 길의 인내의 시간도, 모두 다 똑같다.

매 순간을 즐기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해가 지는 산티아고 길





해가 뜨고 지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이런 자연현상이 이토록 위대하고 감사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을까.

아마 까미노 길이 아니었다면 난 평생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한밤 중에도 어디에나 불이 훤히 밝혀져 있는 도시에서는 감히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매 순간 길에서 체험했다.


한 번은 일행 없이 혼자 이른 아침에 출발했다. 서머타임 해제가 거의 되려는 무렵이라 오전에 해 뜨는 시간의 체감은 9월 대비 아-주 느렸다. 특히 가스등 하나 제대로 없는 시골길은 무서울 정도로 너-무 컴컴했다. 컴컴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암흑 천지다. 다시 돌아가 누구라도 일어날까 기다려볼 생각도 했지만 무슨 용기에서인지 그날은 그냥 출발했다.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해서 걷는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불이 있는 곳에 비추는 것과 암흑 천지에 비추는 건 정말이지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다. 빛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참으로 미약하다... 겨우 내 발과 바로 앞 걸을 길이 보일 뿐 주변은 암흑이니 화살표도 잘 못 찾겠다. 한국 아버님들께서 새벽같이 나가시며 왜 헤드등을 착용하는지 그제사 알 것 같았다.


삼십 분 여를 걸어가면서 온갖 무서운 생각이 다 들었다. 잘 못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한 동물 울음소리도 났고, 바람이 불어서인지 나무에서 뭐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들고 있는 등산용 스틱으로 내 다리를 건드리고는 혼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고요한 거 보니 앞 뒤로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이 상황에 누구라도 나타나면 더 무서울 것 같기도 했다. 안 되겠다 생각하고 다시 돌아가려고 보니 꽤 걸어왔는지 마을로 어떻게 다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주 미쳤구나... 왜 혼자 나와 가지고... 미쳤지... 미쳤지...' 혼자 중얼거렸다.

후회해서 뭐하겠나 하는 심정으로 기도하며 덜덜 떨며 한동안을 그렇게 걸었다.

제대로 방향을 잡은 지 조차 의심스러운 그때, 해가 점점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한 치 앞도 분간이 안될 정도의 암흑이 마법처럼 서서히 걷히고 사물의 형체가 점점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게 이렇게 울컥할 일인지... 감사의 기도가 콸콸 쏟아졌다.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주변의 나무들, 발에 차이는 돌멩이, 새, 벌레들까지... 밝아진 후 제 모습을 드러내니 아무것도 아닌 것들인 거다. 허탈할 정도로.


뒤를 돌아보니 붉은 기운이 하늘과 주변 나무들을 물들이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광경은 장엄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다. 한참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던 것 같다.

이 순간을 감사하면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하고 두려운 길에도 언젠가 해는 뜬답니다. 그렇더라구요.




*까미노, 스페인어로 Camino는 '길'이라는 뜻임

**프랑스 길(Camino Francés)은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에 근접한 마을인 '생장 피에드포르'(Saint-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하여,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이르는 800km의 순례길을 말한다.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을 통칭하여 까미노 길이라 하는데 출발 장소에 따라 다양한 길이 있으나 프랑스 길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중적인 길이라 할 수 있고 순례를 위한 시설 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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